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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위와 무위

중생 분별이 모든 것을 만든다

無二·不二는 차별 없다는 것
중생의 마음은 분별로 발생
‘법이 하나’란 이해는 잘못
불교 하나의 원리 주장 안해

대승 경전들의 서두는 먼저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문을 듣는 제자 중에 으뜸 되는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위엄과 덕망을 찬탄하고 공경 예배한다.
초기 경전에서도 부처님을 공경 찬탄하지만 대승과 비교할 때 그 강도가 현저히 약하다. 대승에서는 부처님의 몸을 육신만이 아닌 법신, 즉 진리의 몸으로 보고 우주 법계에 두루하다고 여긴다. 멸하는 법이 없이 영원하며 지혜, 자비, 원력, 청정, 신통으로 모든 중생을 항상 교화·제도하신다는 것이다. 부처님을 인간세계에 나타난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여기는 초기불교와는 불신관(佛身觀)부터 다르다. 이렇게 지극한 찬탄과 공경으로 대승 경전은 시작한다.

요즘 불교 위세가 약해진 원인 가운데 하나가 부처님의 존재를 세상에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이 어떠한 분인지 대승적으로 알게 된다면 신심은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해심밀경’의 본격적인 가르침은 제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부터 시작된다. 여러 보살 가운데에 여리청문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여쭙지 않고 함께 법회에 참여한 해심심의밀의보살에게 묻는다.

“최승자(最勝子)여! 일체는 둘이 없다고 하는데 일체란 무엇이며, 둘이 없다는 것 또한 무슨 뜻입니까?”

최승자는 부처님이나 부처님 지위에 오른 권화보살에게 부여하는 호칭이다. 먼저 여리청문보살이 질문한 일체법부터 살펴보자. 교리적으로 일체란 십이처(十二處)이다. 십이처는 중생의 여섯 가지 인식 기관인 눈·귀·코·혀·몸·뜻으로서의 육근(六根)의 영역들과 이와 마주하는 여섯 가지 인식 대상인 형상·소리·냄새·맛·접촉·대상인 육경(六境)의 영역들을 가리킨다. 십이처는 단순히 육근과 육경이 아닌 무명과 욕탐에 의해 오염된 주관과 객관으로 중생들이 만든 인식 영역들이다.

따라서 십이처는 차별계이다. 무이(無二)는 이것들과 저것들 사이에는 본래 아무런 차별이나 대립이 없다는 뜻이다. 무이를 다른 표현으로 불이(不二) 즉, ‘둘이 아니다’라고도 한다. ‘유마경’에서는 ‘불이’로 나온다.

여기서 둘이 없다고 할 때 둘은 숫자의 개념이 아니다. 서로 마주하여 대립하는 상대적 차별을 의미한다. 있음과 마주하는 없음, 나와 마주하는 너, 높음과 마주하는 낮음, 옳음과 마주하는 그름, 성스러움과 마주하는 속됨, 선함과 마주하는 악함 등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들이다. 중생계는 이렇게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것들로 꽉 차 있다.  부처님처럼 분별을 떠난 분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곧 둘이 아닌 둘이 없음이다. 이것을 무이 또는 불이라고 한다. 주의해서 알아야 할 내용은 ‘둘이 없다’ 혹은 ‘둘이 아니다’ 하는 말은 상대적 대립이 없다는 뜻이지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와 나를 예로 든다면 너와 나가 본래 없다는 뜻이지 너와 내가 본래 하나라는 뜻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법이 본래부터 둘이 없다’라고 가르치지 ‘하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둘이 없는 무이의 도리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와 무아, 무자성, 공사상의 다른 명칭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상호 의존적 연기 관계로 보면 모든 상대적 대립은 실체가 없는 무아이며 공이고 무자성인 것이다.

이 둘이 없는 무이나 불이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모든 법이 본래 하나라고 말하는 불자들이 많다. 일체법은 본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불교는 일체를 하나의 원리로 통일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이것을 전제로 저것이 있다면 둘의 관계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의 분별이 모든 것을 만든다고 하셨다. 이는 ‘해심밀경’의 주된 종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불이의 미묘한 도리를 여리청문보살이 몰라서 해심심의밀의보살에게 물었을까? 여리청문보살은 자신이 몰라서가 아니라 미혹한 중생들과 소승의 수행자들을 위해 일부러 묻는 형식을 취했을 뿐이다. 이에 대한 해심심의밀의보살의 답변을 들어보자.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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