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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행복

기자명 선우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4.02.26 17:46
  • 수정 2024.02.26 17:47
  • 호수 1718
  • 댓글 0

약동하는 에너지 가득한 봄
여린새싹 움트는 신비 가득
내가 숨 쉬는 건 그들 때문
눈앞서 펼쳐진 연기적 세상

나무들이 제법 물오르기 시작한다.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환한 봄이 오고 있다. 올해는 남해 쪽에 있다 보니 어느 때보다 빨리 봄기운을 맞이한다.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여리디여린 새싹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얼었던 땅과 마른 나무껍질을 뚫고 나오는지 필시 뭔가가 돕고 있음이다. 봄에 춘곤증이 오는 이유는 우주의 기운이 새싹들이 움트는데 동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에너지도 새싹들에게 기운을 나눠주었는지 괜스레 봄빛 햇살에 나른해진다.

모든 새싹은 싱그럽고 사랑스럽다. 근원에서 바로 출품된 것이기 때문일까? ‘나 여기 살아있었어요.’ 작은 생명이 겨우내 잘 견디고 살아내서 올 한 해도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듯한 모습이 어여쁘다. 봄의 전령들 산수유, 생강나무, 매화, 돌단풍, 천리향 등 주재자도 없이 순서대로 나올 시기를 알아서 피어나는 봄의 잔치는 그야말로 무위의 현장이다. 그 속에 있다 보면 기분이 막 좋아진다. 생명이 생명에게 말없이 주고받으며 약동하는 에너지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어릴 땐 식목일에 심은 벚나무가 빠른 속도로 자라나는 걸 보면서 궁금하였다. 과연 저 나무는 무얼 먹고 나보다 빨리 저렇게 쑥쑥 자라는 걸까? 이번 봄에 그 의문이 자연스레 풀렸다.

식물은 광합성을 위해 뿌리에서 얻은 물을 한 방울 한 방울씩 연결한다. 뿌리에서 잎끝까지, 잎끝에 있는 기공을 통해 들어온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만나기 위해 밤새 쉬지 않고 이동한다. 그들을 연결하는 빛과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방울 방울을 이어가면서 멀고 먼 길을 달리는 것이다. 이것이 수소결합이고 식물의 신성한 생명현상이다. 이 광합성으로 모든 곡식과 꽃봉오리들이 생겨나고 영양소의 기본인 포도당이 형성된다. 식물은 태양이라는 중매쟁이를 통해 빛을 합성하고(광합성) 이 과정에서 산소를 배출한다. 대기 중에 쌓인 산소를 통해 인간은 호흡할 수 있고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최종적으로 인간은 물을 배출해 내고 소변은 질소와 인이 풍부해서 식물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비료가 된다. 

식목일에 심었던 벚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건 낮동안 태양을 만나기 위해 밤새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이고 이산화탄소를 만나 글루코스(포도당)를 만들어냈기 때문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내가 숨 쉬고 보고 듣고 말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벚나무와 나는 따로 분리될 수 없는 다정하고 친밀한 사이다. 자연의 푸릇푸릇한 잎들은 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거대한 우주적 파노라마 속에 펼쳐지는 연기적 현상이 눈앞에서 나와 더불어 생생히 펼쳐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수행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도 광합성일 것이다. 최초로 산소를 배출한 광합성은 시아노박테리아에 의해서다. 시아노박테리아가 20억년 동안 열심히 쉬지 않고 광합성을 해서 대기 중에 겨우 1%의 산소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경건해지는 순간이다. 새싹이 움트는 3월이 되면 시아노박테리아에게 삼배를 올리고 싶다. 이들이 만든 산소는 지구에 공생과 진화를 추동하며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 진핵생물에서 다세포 생물, 다세포 생물인 식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다세포 생물이 거대 생명체가 되기 위해선 산소호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산소호흡을 하지 않고 에너지를 얻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꽃피는 봄날 엄청난 생명현상에 환희심으로 가득해진다. 의식과 상관없이 세포가 좋아서 진동의 춤을 추는 듯하다. 그야말로 전체가 한 덩어리 세상이다. 

비바람에 매화나무가 자신의 존재를 옹골찬 꽃 몽우리로 드러내고 깊이 간직했던 향을 일주문 밖까지 내뿜는다. 스스로 깊어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무심하게 깊어지는 탓으로 아름답다. 나는 무엇으로 깊어질까? 새벽기도를 마치면서 내쉬는 긴 호흡으로 나와 전체와 현상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그 힘으로 오늘의 일상을 잘 살아내기를!

선우 스님 부산 여래사불교대학 학장 bababy2004@naver.com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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