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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팔보다 고향가족 먼저 떠올라”

  • 상생
  • 입력 2024.03.03 23:14
  • 호수 1719
  • 댓글 0

스리랑카 드라하 씨, 골절·근육파열 부상
어깨뼈 고정·봉합수술로 병원비 ‘눈덩이’
치료비·고향 부모님 생계 걱정에 눈물만

돈을 벌어 고향에서 택시운전하는 게 꿈이었던 드라하 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꿈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돈을 벌어 고향에서 택시운전하는 게 꿈이었던 드라하 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꿈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세요. 눈도 안보이고 무릎도 아프고 숨쉴 때마다 가슴이 아프세요. 저의 고향 스리랑카 상황이 좋지 않아요. 병원치료도 못 받고 비싼 약으로 겨우 통증만 줄이고 있어요.”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드라하(49) 씨는 2006년 한국에 들어왔다.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 택시를 몰며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꿈을 품고 한국에 왔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도 낳고 화목하게 살고 싶었어요.” 기대를 가득 안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무릎이 불편해 거동이 힘든 부모님을 두고 외국에 오래 나와 있을 수 없었다. 1년 동안 어렵게 모은 돈으로 스리랑카에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그 돈으로는 고향에서 부모님 약값과 동생들의 공부를 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계속되는 내전으로 국가경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 뒤, 드라하 씨는 2012년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 쳇바퀴처럼 반복된 고단한 일과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서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 생각이었다.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하곤 모두 고향으로 보냈다.

하루하루 고단함의 연속이었지만 부모님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에 보람도 가졌다. 생활도 조금 나아졌다. 한국생활이 익숙해지자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렵고 딱한 사정을 가진 이주민들까지 챙겼다. 언어, 문화 모든 것이 낯선 외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병원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워지고 임금을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르는 일도 잦았다. 겨우 월세를 내며 시간을 보냈다. 설상가상 스리랑카 현지 상황도 급격히 악화됐다. 2022년 4월 스리랑카 정부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해 병원의 응급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설이 마비됐다. 물가가 폭등해 드라하 씨의 단순 아르바이트로는 부모님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부모님은 여든을 넘겼고, 이젠 시력까지 나빠져 누군가의 도움 없이 끼니조차 챙기기 어렵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택시운전, 결혼,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위해 20여 년 간 공장노동과 아르바이트까지 쉴 새 없이 일해왔지만 그의 꿈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무릎과 어깨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 여겨 파스만으로 통증을 견뎌왔다. 그의 걸음걸이를 이상하게 본 주위 사람들이 서둘러 병원에 가보라며 권유했지만 공장 특근을 미룰 수 없었다. 그날은 유독 퇴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길은 어두웠다.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미처보지 못한 문앞 빙판에 미끄러졌다. 정신이 아득했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검사결과, 넘어지면서 어깨에 복합골절이 생겼고, 신경과 혈관도 큰 손상을 입었다. 무릎엔 이미 물이 차있었다. 특히 어깨뼈는 심하게 벌어져 금속나사를 박고 찢어진 근육들은 봉합수술을 해야했다. 무릎은 더 심각해 염증으로 물이 차 관절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응급수술이 끝난 후 정신을 차렸을 땐 오른쪽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었다. “내가 돈을 못 벌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아파요.” 그에게 청구된 병원비는 1000여 만원이다. 당장 모으기 힘든 금액일 뿐더러 최소 생활비만 제외하고 모든 월급을 고향에 보낸 탓에 수중엔 남은 돈이 없다. 고향 가족들에겐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걸 마음 아파했는데, 다쳤다는 걸 알면 어머니, 아버지가 충격 받을거에요.”

소식을 접한 동료 노동자들과 다문화불교연합회장 담마끼띠 스님의 도움으로 일부 병원비를 납부했지만, 이젠 남은 돈이 없어 3개월의 월세, 휴대폰 요금도 밀려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값싼 식재료만 사서 직접 밥을 해먹던 그는 이젠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남은 식재료가 떨어지면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어깨는 의료장비의 도움으로 30도가 겨우 올라간다. 병원에선 팔이 완전히 올라갈 때까지 치료를 받야아한다고 당부했다. 통원치료를 받는 지금, 병원에 갈때마다 약값조차 부담스럽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경제위기에 처해있는 스리랑카에서 드라하 씨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국에 남아 치료를 받고 일을 해야 생계와 가족을 보살필 수 있는 처지다. 불자들의 자비 온정이 간절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유화석 기자 fossil@beopbo.com

[1719호 / 2024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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