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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법 수려한 몸짓에 녹여 희망 전하며 무주상보시 실천”

  • 무진등
  • 입력 2024.03.04 13:51
  • 수정 2024.03.04 17:53
  • 호수 1719
  • 댓글 1

‘불교무용대전’ 10년간 이끈 이철진 구슬주머니 대표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한 불교 인연
부모님과 종교 마찰에 상처 받기도

지인 무용학원 찾다 ‘승무’ 빠져들고
널리 알리고자 ‘불교무용대전’ 개최

코로나 손해 막심해도 사비로 열어
“아시아 똘똘 뭉치는 중심체” 발원

춤으로 부처님 법을 전하는 ‘불교무용대전’이 올해 10회째를 맞아 베트남을 주빈국으로 열린다. 주 극장인 대학로 ‘스튜디오 SK’ 앞에서 만난 이철진 구슬주머니 대표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부처님 법을 수려한 몸짓에 녹여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기쁨”이라고 말했다.
춤으로 부처님 법을 전하는 ‘불교무용대전’이 올해 10회째를 맞아 베트남을 주빈국으로 열린다. 주 극장인 대학로 ‘스튜디오 SK’ 앞에서 만난 이철진 구슬주머니 대표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부처님 법을 수려한 몸짓에 녹여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기쁨”이라고 말했다.

긴 소매가 펄럭인다. 한 손에서 시작된 춤사위가 서서히 몸 전체로 흘러내린다. 유연하면서도 힘차게, 공간을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 그의 몸짓은 노래하는 파도처럼 우아하게 변화한다. 

하늘거리는 흰 천과 장삼 속에는 이철진(57·수성) 구슬주머니 대표의 부처님을 찬탄하는 마음이 소복이 쌓여있다. 승무·살풀이춤·태평무 등 중요무형문화재이자 불교예술의 정수인 승무를 구사하는 유일한 남성 춤꾼 이철진 대표. “춤을 배우지 않았다면 출가해 깊은 산속 바위 밑에서 참선에 빠진 도인이 됐을 것”이라는 그의 삶에는 부처님과 함께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철진’이라는 이름은 제 첫 이름이 아니에요. 태어난 지 삼칠일이 지나기 전, 한 스님이 찾아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해요. ‘이 아이는 장차 큰스님이 될 것’이라며 벽에다 크게 써놓고 가셨다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어요. 그 때문인지 부모님은 아들이 어딜 가든 속옷 하나만 갖고 있으면 집안이 잘될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어요.” 

이 대표는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신심 깊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부처님오신날이나 불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울 도선사를 찾았다. 특히 할머니는 길가에서나 사찰에서 스님을 보면 꼭 앞으로 달려가 합장 인사를 올렸다. 이 모습은 어린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모님이 개신교 장로, 권사가 되며 종교 문제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억은 흔들리지 않는 불심의 원동력이 됐다. 

1985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출가할 생각으로 합천 해인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망설임이 컸고, 부모님의 반대가 겹쳐 짧은 절 생활은 4개월 만에 끝났다. 진로에 대한 걱정은 점점 커졌고, 2년 동안 방황의 시간을 가졌다. 호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또다시 진로 고민에 빠져들었을 때, 지인의 동생에게 무용학원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곳저곳 알아보다 서울 동대문의 한 전통무용학원을 추천해줬다. 한국 유일 남성 승무 계승자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강당에서 춤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뭐랄까, 그냥 그저 좋아 보였어요. 마음에 쏙쏙 와닿았어요. 출가하고 싶다는 생각처럼 저절로 이끌렸습니다. 그래서 친구 동생이랑 같이 다니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턴 저 혼자 다니고 있더라고요.” 

인도 벵갈루에서 개최한 ‘붓다 사라남 가차미’ 공연
인도 벵갈루에서 개최한 ‘붓다 사라남 가차미’ 공연

학원장의 소개로 당시 제자를 구하고 있던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 이애주(1947~2021)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다. 무용가 한영숙(1920~1989)의 계보를 잇던 이애주 선생은 한영숙류 전통춤의 백미인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전판을 그에게 전수했다. 무용에 눈을 뜬 그는 서울예술대 무용과 90학번으로 입학했다.

이애주 선생은 그에게 “우리나라 춤의 핵심은 승무”라며 “승무만 열심히 배우면 살풀이 등 전통춤은 자연스레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진 대표는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승무에는 우리나라 기본 장단 중 가장 느린 것부터 빠른 것까지 전부 편성돼 있다”며 “이게 알파와 오메가이자 시작이면서 정점이란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했다.

자연스레 대중에게 ‘불교무용’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그러나 방법은 막연했고  당시에는 불교 무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에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또 종교를 접목한 순간 순수예술을 펼치고 싶은 본연의 마음이 오해와 편견 속에 퇴색될까 두려웠다. 그때 은사로 오랜 인연을 이어온 속초 보광사 회주 석문 스님이 일갈했다. 

“일단 해. 못해도 3년은 죽기 살기로 해봐라.”

실패를 두려워하며 모든 고민을 털어놓는 그에게 스님의 거침없는 조언은 용기로 이어졌다.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벤치마킹한 ‘승무’ 장기공연을 시작했다. 처음엔 흥미를 끌지 못하던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객석을 가득 메웠고,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 첫 공연 후 10년 가까이 단 하루도 연습을 빼먹지 않았다. 공연에 목말랐고, 대중과 자주 만나고 싶었다. 전통예술과 무용을 전문으로 공연할 ‘성균소극장’과 ‘스튜디오 SK’ 소극장 두 곳을 매입하고 ‘100일간의 승무 이야기’ ‘천년 승무 이야기’ ‘108일 승무 이야기’ ‘이철진의 오직 승무’ ‘화요 승무 이야기’ ‘50일간의 승무 이야기’ ‘이철진의 월요 승무 이야기’ 등 매년 ‘승무’를 주제로 1년에 100회 이상 공연을 열었다. 

이에 기반해 2015년 ‘제1회 불교무용대전’도 개최했다. ‘종교’라는 색안경을 벗겨내고자 불교무용을 ‘불법승 삼보를 주제로 하되, 불교를 폄훼하지 않는 모든 춤’으로 정의내렸다. 나비·법고·바라 등 불교 작법뿐 아니라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 등 불법승 삼보를 주제로 했다면 불교무용으로 받아들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2015년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의 후원을 받아 대학로 ‘스튜디오 SK’에서 개최한 ‘제1회 불교무용대전’은 군데군데 숨어 있던 무용인들이 찾아와 장사진을 이뤘다. 공연계에서는 “무용계와 불교계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의 원력은 조계종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대회를 주최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부터는 외국 무용단을 초청한 국제 행사로 저변을 확대했다. 당시 홍콩댄스 컴퍼니(HKDC)가 출품한 ‘위파사나(Vipasana)’와 싱가포르의 대표적 개인무용단 ODT(Odyssey Dance Theatre)의 공연은 불교무용의 세계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2020년에도 공연은 이어갔다. 그러나 규모는 기존 4주에서 2주로 축소됐고, 지원금도 줄어들었다. 10회째를 맞은 올해는 베트남을 주빈국으로 이철진 대표가 사비를 투자해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규모와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불교무용대전을 20회, 30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열어갈 계획입니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부처님 법을 수려한 몸짓에 녹여내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무주상보시의 실천인 셈이죠.”

공연을 마치면 항상 많은 관객이 무대를 찾는다.
공연을 마치면 항상 많은 관객이 무대를 찾는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이철진 대표.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이철진 대표.

구슬주머니의 대표 페스티벌인 ‘제10회 불교무용대전’은 올해 6월 한 달간 대학로에서 진행된다. 각국에서 온 춤꾼들의 쇼케이스와 예선, 본선과 더불어 ‘불교무용’ 주제 컨퍼런스가 펼쳐진다. 이 대표는 “아시아는 불교가 가장 널리 전래됐으나 각 국이 연합해 불교를 연구하려는 움직임은 많지 않다”며 “불교무용대전이 아시아를 불교로 똘똘 뭉치게 하는 중심체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에게 ‘승무’는 불교와의 인연을 이어가는 돌다리이자 수행의 일환이기도 하다. 매일 새벽 6시에 집에 모신 불상에 삼배를 올리고, ‘반야심경’을 반복해 외운다. 정진을 마친 뒤에는 승무를 추는 자신의 비디오를 돌려보며 느낀점을 일기로 기록한다. 이를 토대로 ‘전통춤 체험에 관한 연구’ 논문을 내고, 몸으로나 정신적으로 하나의 행위에 전일하게 빠져드는 ‘완전한 몰입’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관무량수경’에서 부처님은 아들의 쿠데타로 남편을 잃은 왕비가 ‘극락에 나고 싶다’고 방법을 물으니 ‘주야로 부처님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을 내렸습니다. 이게 모든 명상과 기도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하며 염불하듯, 무대 위에서도 관객보다는 제 춤사위에 먼저 집중합니다. 손짓, 발짓, 털구멍, 땀구멍 하나하나에 집중하다보면 관객들도 절로 몸짓에 빠져듭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이 삼매에 들자 사부대중도 삼매에 들듯 이런 절실한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절로 신심이 나게 합니다.”

불교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각 대학에 ‘불교무용학과’를 개설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웃종교는 전공을 만들어 대학에서 ‘선교무용학’을 찾아볼 수 있지만, 불교종립학교인 동국대를 비롯해 ‘불교무용학과’가 있는 학교는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지적이다. 이 대표는 “불교무용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개념을 세세하고 다양하게 정립해 전문 불교무용인을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무용 보존·계승을 위해 스스로 갈고 닦음을 주저하지 않는 이철진 대표. 옛 선사들이 화두를 깨치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겹친다. 승무다.

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719호 / 2024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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