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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이야기

기자명 희상 스님

포교당 옆에 교회 입주하며
통성에 스피커 소리로 고통
사경·독송으로 평화 구하니
얽혔던 문제 저절로 해결돼

부처님은 사람들의 신분을 아는 지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기설법, 대기설법이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에 적합한 언어와 방편을 들어 가르침을 설하셨다고 합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도 ‘법화경’의 ‘제2방편품’을 펼칩니다. 이 품에는 틈날 때마다 자주 독송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십력 부분입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생각해 보는 지혜의 힘’ ‘법을 듣는 사람들의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 ‘모든 사람의 현재 상태를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르쳐 인도하는 지혜의 힘’ ‘사람들의 나쁜 버릇을 뿌리째 완전히 뽑아 없애는 지혜의 힘’ 등입니다. 열 가지를 모두 나열할 수 없으나 독송할 때마다 지혜는 사람들과 사물의 참모습을 보는 힘이 있음을 새기게 됩니다.

이곳 포교당 법당의 뒤쪽 벽에는 한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습니다. 길고 하얀 한지 위에는 빽빽하게 연필로 ‘법화경’이 쓰여 있습니다. 엊그제도 82세 노보살님께서 ‘법화경’ 한 권을 모두 사경하셨다며 부처님께 공양 올렸습니다. 저녁이 되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정갈하게 경전을 펼친 뒤 사각사각 부처님 말씀을 옮겨 베끼는 노보살님을 상상만 하여도 흐뭇합니다. 마지막 장의 발원도 감동이었습니다. 자비로운 부처님 품 안에서 생을 편안히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진실한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법화경’ 사경기도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답니다. 몇 년 전 이곳 포교당 바로 옆에 교회가 입주하였습니다. 도심 빌딩 안 옆집은 아주 밀접한 공간이기에 예민한 부분이 많습니다. 왜 하필 절 바로 옆에 교회인지…. 

어느 날 말쑥하게 차려입은 목사 부부가 선물을 들고 옆집에 이사를 왔다며 잘 부탁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주부터 교인들의 공격적인 말투와 전도의 양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관이었지요. 주말 밤샘 통성기도와 거대한 스피커의 함성은 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일요일이면 그들을 피하려고 아침 일찍 포교당을 나서는 산행을 선택했습니다. 산중의 고즈넉하고 평온한 암자에 계신 스님들과 차 한잔 마시고 내려올 때마다 자연과 일상을 함께하는 도반 스님들이 부럽고 유연해 보였습니다.

그런 시간이 어느덧 2년째 접어들 즈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통이 불통인 이웃과 함께한다는 것은 괴로움이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괴로움과 비탄을 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알아차림이라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순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부처님! 모든 사람을 신뢰하게 하소서!”

무언지 모를 ‘내맡김’에 충실하게 된 것은 그 시기부터입니다. ‘법화경’ 사경과 독송 그리고 해설을 불자님들과 함께했습니다. 하루 한 권은 꼭 독송하였습니다. 불자님들은 저마다 신심이 난다며 모두 환희로워했습니다. 저 역시 집중이라는 환희로운 매력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복도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건물 주인과 임대 상황이었던 교회 가족이 옥신각신 언쟁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결국엔 옆집 교회 가족은 이사했고, 그곳은 오히려 법당 공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렇게 ‘법화도량’은 저절로 이루어졌고 ‘법화경’ 독송과 사경기도는 지금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 기도하는 정념의 빛은 경계가 있을까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흥분하거나 겁먹지 않고 현재 상태를 보는 지혜, 오늘도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를 차근차근 읽어 봅니다.

“사람들의 환경과 신분을 잘 아는 지혜의 힘.”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내 마음에 연료를 더 해 봅니다.

희상 스님 부산 유연선원 주지 meine2009@hanmail.net

[1719호 / 2024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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