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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수행, 그리고 깨달음

종교는 신앙의 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가 합리적인 이해만을 인정하는 과학과 그 체계와 의미를 달리하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신앙과 실천의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체제는 모든 종교적 행동의 원천이며, 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체제이다’라는 일본의 종교학자 기시모토 히데오(岸本英夫) 박사의 말은 그 점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불교를 다른 종교와 대비하여 말할 때, 그 중심개념이 깨달음이란 측면을 들고 있다. 실제로 모든 불교사상은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러한 깨달음이 없는 믿음을 맹신이라는 입장에서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인하여 불교에 있어서 믿음의 의미와 기능을 소홀히 하는 경향 또한 없지 않다.

불교에 있어서 믿음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고 이는 육념(六念)설에 잘 나타나 있다. ‘염(念)’의 교설은 믿음과 수행의 개념을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체계로서 불교적 믿음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데, ‘아함경’에서부터 삼보(三寶)보다 훨씬 강조되어 신행의 항목으로 정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등의 초기대승불교의 경전에까지 그 체계가 그대로 계승되며 심화되고 있어, 가히 불교적 신행을 대표하는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근본 교설이라고 할 수 있는 ‘아함경’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에 있어서 믿음은 각 경전이 설하고 있는 교법을 대상으로 삼아 수행과의 연관을 가지고 행하게 되어 있는데, 항상 수행체계의 첫 단계로 시설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궁극점인 깨달음을 결정, 약속해주는 기능을 가진다는 일치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함경’에서의 믿음은 삼보, 사불괴정(四不壞淨), 육념으로 대표 되거니와 특히 사불괴정과 육념이 핵심이다. 사불괴정은 불·법·승·계에 대한 믿음인데, 그 중 ‘법’에 대한 신행이 강조된다. 사불괴정의 성취는 사문사과 중 수다원과 동일시되고, 수다원은 결정정각(決定正覺)의 단계이므로, 믿음의 공능을 깨달음을 보장시켜 주는 것으로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육념은 사불괴정을 수행적 차원에서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서, 사불괴정에 시(施)·천(天)을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육념의 성취는 아나함과 동일시하여 신행의 체계를 엿보게 한다.

‘반야경’에 있어서는 ‘아함경’의 육념설이 채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신행의 대상이 반야바라밀다로 변화된 상태이므로 육념설 또한 그 내용이 반야사상에 의해 변모되어 있다. ‘반야경’에서 믿음의 공능은 보살로 하여금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불퇴전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정각을 결정하는 요소로 인정되고 있다. 특히 반야바라밀다 신행은 그 자체 내에 불·법·승에 대한 신행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는데, 이는 ‘반야경’이 불(佛)의 근원, 즉 불모(佛母)로서의 반야바라밀다의 존재를 중시했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야경’이 ‘법’을 신행의 핵심으로 삼았던 ‘아함경’의 전통을 반야적으로 심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화경’은 일불승에 대한 교법을 신행의 대상으로 삼고, 삼승의 모든 수행자를 ‘불자(佛子)’로 파악하는 불자신행을 확립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불자라는 인식, 즉 믿음을 가진 성문제자에게 성불수기를 주고 있는데, 이는 믿음으로써 성불을 보장해 주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화엄경’에서의 믿음은 육념설을 ‘보살도 신행’으로 변용하고 있다. ‘화엄경’의 보살도 신행은 ‘반야경’의 불모신행과 ‘법화경’의 불자신행을 종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 믿음의 공능으로는 정각을 결정하는 근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믿음은 깨달음을 지향해야 한다는 요청적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불교에 있어서도 종교적 믿음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욱태 (사)한국수소에너지기술연구조합 이사장 satdharma@naver.com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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