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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에 대한 고집도 내려놓자

대부분 결론부터 내리지만 결론 전에 과정 
살피는 것도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연습

근래 일주일에 한 번씩 시니어분들의 글짓기를 도와드리는 수업을 하고 있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 각자의 글들을 취합하여 한 권의 책으로 제작하는 일이었는데 필자는 그 과정 안에 마음챙김 명상 시간을 넣었다.

매 수업 갖은 번뇌와 걱정거리를 내려놓고자 시작한 명상은 글을 쓰기 전, 마인드컨트롤을 위함이었다. 걷기 명상, 눕기 명상, 호흡 명상 등등 정말 많은 종류의 명상을 이끌며 들었던 느낌은 ‘욕심과 집착’이었다. 학생들이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자기만의 안온한 세계로 몰입했을 때 진행자인 본인의 세계가 오히려 깨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명상을 이끄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끄는 사람 또한 집중을 하냐 마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그들이 정말 집중하고 있는지, 명상 끝엔 이 수업을 통해 처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보다 더욱 만족스럽게 보이는지 그 모든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필자는 명상을 주도하며 오히려 조급해져만 갔던 것이다.

 이 현상을 짚어보고 고뇌하며 내린 결론은 내려놓음에 대한 집요함이 문제였다. 불교를 배우고 그 안에서 명상을 접하면서 그 짧은 시간을 통해 언제나 번뇌, 집착, 걱정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이 얼마나 자기자신에게 득이 안 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내려놓음에 대한 집착. 이 한마디로 불교 명상을 향했던 필자의 시선이 그대로 나타난다. 어떻게 해야 내려놓을 수 있지? 어떻게 해야 내 속에 잠식한 불편한 감정들을 떨쳐낼 수 있지? 이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시니어 글쓰기 수업을 한 지 3회차가 다 되어가던 날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떨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걸. 가끔 몇몇의 사람들은 내려놓음을 버리는 것이나 나와 구분하여 떨쳐내는 행위로 인식한다. 하지만 진정한 내려놓음이나 해탈은 그저 이분법적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 불편함을 심신으로 느끼고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에 있다. 해탈로 가는 길은 영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간단하면서도 누군가에겐 평생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 해탈의 경지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내 상태를 파악하고 감정을 올곧이 느끼는 연습은 평생에 걸쳐 필요하다. 이런 필요성에 대해선 한 가지 예시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아주 무거운 상자를 들고 있다고 해 보자. 얼른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내려놓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 전을 떠올려야만 한다. 내려놓기 전, 우리는 지금 들고 있는 짐이 ‘무겁다고’ 먼저 느낀다. 이처럼 나의 상태를 먼저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경험이 있어야 우리는 그 다음으로 짐이 무거우니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 또한 경제적으로 하기 위해 결론부터 도출해내곤 하지만 사실 결론 전의 과정을 살피는 것도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연습이다.
 

그저 내려놓는 행위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나에게 얼마만큼 무거운지 느끼고 그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그 받아들이는 과정이 우리도 모르게 내려놓음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렵지만 단순한 것. 불교에서의 내려놓음이 그러한 것 같다. 내려놓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고집 또한 내려놓자는 메시지. 모두들 자신이 들고 있는 상자의 무게를 느껴보시길 바란다.

한완정 작가  wanjung0419@naver.com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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