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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마조계 선의 축생이야기 - 말‧고양이‧지렁이  

기자명 정운 스님

축생 통해 선의 본질 언급

혜능, 말 비유 마조 등장예고
‘마전작경’ 문답은 전법 상징 
‘남전참묘’ ‘단구인’ 공안은
모든 중생에 불성 있음 강조

불교는 인권 존중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축생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생명차원에서 인간과 동등하다고 본다. 경전이나 어록에서 축생은 그 축생의 특징을 통해 수행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이다. 이번 주는 마조 문하의 축생에 대한 마지막으로 말‧고양이‧지렁이 등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말[馬]에 대해 보자.

초기불교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태어나실 그 해에 상서로운 일이 여섯 가지가 있었다. 야쇼다라 공주‧아난존자 등 그리고 ‘깐타까’라 불리는 말이 포함된다. 깐타까는 부처님의 왕자 시절 명마[白馬]다. 부처님께서 출가할 때, 이 깐타까를 타고서 아노마 강변에 도착했다. 깐타까를 카필라궁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말은 울부짖으며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깐타까는 궁전으로 돌아와 식음을 전폐한 뒤에 삶을 마감한다. 부처님의 세간과 출세간 기로에서 함께 했던 동물이 말이다.

말은 초기불교 경전에 정진‧게으름‧분노 등 여러 비유로 나타나 있다. 두 비구가 함께 수행했는데, 한 비구는 열심히 정진하고 한 비구는 게으름을 피웠다. 결제가 끝나고, 부처님께서 게으른 비구를 꾸짖으며 “게으른 비구는 둔마(鈍馬)와 같고, 부지런한 비구는 준마(駿馬)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마조계 선에 나타난 말을 보자. ‘보림전’에서는 마조의 스승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과 마조의 사자(師資) 인연에 대한 반야다라 존자[달마의 스승, 서천 27조]의 예언이 나타나 있다. “6조 혜능(638∼713)이 제자 회양에게 말했다. ‘인도의 반야다라 존자가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밑에서 말 한 마리가 나와서 세상 사람들을 발길질로 차 죽일 것이다.’”

여기서 말 한 마리란 마조를 가리키며, ‘발길질로 죽인다’는 것은 걸출한 제자의 출현을 예언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마조의 성은 ‘마(馬)’씨이다. 마조라는 이름은 ‘마씨 집안에서 나온 조사(祖師)’라는 뜻을 갖고 있다. 더 나아가 혜능과 회양과의 문답에 나타난 ‘설사이물즉부중(說似一物卽不中)’, 회양과 마조와의 ‘마전작경(磨塼作鏡)’ 선문답은 스승에서 제자로 전법이 이어진다는 법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후대에 과장된 면이 있다. 이 또한 선의 역사라고 본다.

다음은 선문답에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남전참묘(南泉斬猫)다. 남전보원(748∼834)은 제자들이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으로 편이 나뉘어 고양이를 두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남전이 이를 보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말하면 고양이를 살려줄 것이고, 말하지 못하면 베어버리겠다.” 대중이 대답하지 못하자, 남전은 고양이 목을 베어버렸다. 밤늦게 조주(778~897)가 돌아왔다. 남전은 조주에게 낮에 있었던 고양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 조주는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전이 말했다. “만약 자네가 있었다면 그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이 공안에 대해서는 훗날 여러 이견이 나오고 있다. 과연 남전이 고양이 목을 베었을 것인가? 남전이 함부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은 조주를 추켜세우기 위해 극단의 상황을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남전이 제자들의 무명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지, 고양이를 죽였다고 보지 않는다. 조주가 신발을 머리에 이고 갔다는 것은 발[足]은 하늘이 되고, 하늘은 발밑이 되니, 근원에서는 모두가 하나인 원리라고 본다.  

다음, 지렁이가 등장하는 선문답이 있다. 운거도응(846∼902)이 귀종지상(?∼?)과 함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지렁이를 삽으로 두 토막 내고, 지상에게 물었다. “지렁이를 두 토막 내면, 두 토막 모두 움직이는데 불성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동(動)과 부동(不動)이 어떤 경계인가?”/ “화상의 말은 어느 경전에 나옵니까?”/ “경전에 없는 말은 지혜로운 말이 아니다. ‘수능엄경’에 6대(識‧地‧水‧火‧風‧空)의 성품이 참되고 원융해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생멸이 없느니라.” 

이를 단구인(斷蚯蚓) 공안이라고 한다. 이 공안은 남전의 제자인 장사경잠(?~868)에게도 나타나 있다. 불성이란 모든 중생이 다 갖고 있는 깨달음의 본성으로, 선의 중추역할을 한다.

정운 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saribull@hanmail.net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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