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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서광사 주지 지환 스님

“분별심을 버리면 여러분 앞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분별심서 비롯…분별심 커지면 불행
‘불만족이 불행, 만족이 행복'인 가르침 알면 그 자리가 극락
지혜로 어리석음 다스리고 이웃에 감사하며 보살행 실천할 때

지환 스님은 “부처님 행복론의 요지는 ‘불만족이 불행이며 만족이 행복’이라는 것”이라며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환 스님은 “부처님 행복론의 요지는 ‘불만족이 불행이며 만족이 행복’이라는 것”이라며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사랑하는 사람도 두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운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분별에 의한 사랑과 미움은 그 자체로 괴로움을 만듭니다. 

좋으면 가까이 두고 싶고, 자꾸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반대로 싫으면 멀리하고 안 만나려 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마음입니다. 이런 분별심은 업을 짓는 근거가 되고, 이것으로 인해 생사윤회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꽃씨는 땅이 있어서 땅 위에 갖가지 꽃을 피우지만, 꽃씨에는 꽃 피는 성질이 없고 땅에도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이 없다”라는 게송은 ‘육조단경’ 끝부분에 나오는 승찬 스님의 전법게입니다. 승찬 스님은 초조 달마 스님에게서 법을 전해 받은 혜가 스님의 뒤를 이어 중국 선종의 3조가 된 분입니다. 

꽃씨를 땅에 심으면 당연히 꽃이 피어나는 것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면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닌가요? 꽃씨만으로는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꽃은 땅에서 저절로 피지도 않으며 공중에서 피어나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꽃씨와 땅과 공기와 물과 온도가 조화롭게 맞아야 마침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 요소라도 빠지면 결코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꽃씨 자체에 꽃을 피우는 능력이나 성품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꽃은 이런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일체 분별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만듭니다. 좋으면 가까이하려 하고 싫으면 멀리하려 하는 이런 분별심이 생사윤회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법구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마음이 둘이 아니고, 둘 아닌 경지가 신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와 마음이 둘이 아니고 나와 부처가 둘이 아님을 믿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그저 “부처님요”라고 막연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대승기신론’에서는 믿음의 대상을 4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진여자성(眞如佛性)’입니다. 

진여자성은 우리의 근본 자리가 본래 청정해 부처님의 그것과 같음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불‧법‧승 삼보를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진여자성을 깨친 분입니다. 법은 그대로가 진여자성이요, 스님들은 진여자성을 구하는 무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마음이 있는 그대로가 원만한 법계의 성품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에서 온 우주를 다 생성시킬 수도 있고, 멸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포용하고 배척하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분별하지 않고, 여법하게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둘이 아닌 경지이며, 일심과 법계가 하나임을 믿는 ‘참 신심’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을 때는 세 가지 마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직심(直心), 곧은 마음입니다. 곁눈질하지 않고, 부처를 이룰 때까지 올곧게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거기에다 ‘진실하게’라는 말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불자라면 거짓으로 자신과 이웃, 부처님을 속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심심(深心), 깊은 마음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일체의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도 ‘변함없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한번 믿음을 가졌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그 마음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대비심(大悲心), 큰 자비의 마음입니다. 저는 여기에도 ‘한량없는’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자비심은 일체중생의 고통을 다 제거해 주려는 이타의 마음입니다. 어떠한 수행도 중생을 깨닫게 하겠다는 발보리심이 없이는 위없는 바른 불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시니 가섭 존자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법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하는 것입니다. 도나 마음은 언어 문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어서 말로 하게 되면 그르치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나눔도 없습니다. 우리가 시계를 보며 시간과 날짜를 맞추어 사는 듯하지만, 시간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지나가 버려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고, 지금은 그 사이에 있을 뿐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도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한 선사들의 말에 허물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그것은 이치와 실상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연기의 이치로 보면 세상은 공하지만, 현상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듯 불교의 교법을 따르자면 세상이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공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허무주의와 그 뿌리가 다릅니다.

다음은 ‘아함 방등경’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작야몽중두두불(昨夜夢中頭頭佛)
금조개안물물살(今朝開眼物物薩)
원간창외처처주(遠看窓外處處主)
춘래초엽염염일(春來草葉念念一)

어젯밤 꿈속에는 머리 머리마다 부처이더니/오늘 아침 눈을 뜨니 물건 물건마다 보살이로다./ 멀리 창밖을 바라보니 곳곳이 주인인데/ 봄은 풀잎 따라오고 생각 생각은 하나로다.

제가 좋아하는 게송인데,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깊은 맛이 있습니다. 꿈속이 부처의 세계라면 현실에서는 보살행을 해야 합니다. 저는 늘 금생에는 보살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따뜻하게 대하려고 애를 씁니다. 불자라면 남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분노를 줄이고 지혜로 어리석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아 즐겁게 살아가고, 이웃과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날 실천해야 할 보살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조화롭고 평온하면 식구들과 이웃을 배려하고 함께하려는 자비심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중도가 곧 연기이고 공입니다. 우주 만물이 실체가 없지만 서로 기대고 의지한다면 불가사의한 작용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법계입니다. 나에 집착하지 말고 주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멀리 창밖을 보니 곳곳마다 주인이요, 봄이 풀잎에 따라오니 생각 생각이 한가지로구나.” 나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므로 내가 아닌 어느 누구도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 만물이 모두 제자리에서 주인의 모습으로 또렷이 존재합니다. 봄이 오고 새가 울고 꽃이 피고 지는 풍상의 세월에서도 그 맑고 향기로운 청정한 본래심은 한결같은 것입니다.

오늘은 봄을 알리는 입춘입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 삶에서는 현재의 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을 놓치면 내일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면 지옥에 가더라도 행복하고, 지금 불행하면 극락에 가서라도 불행한 것입니다. 인생의 시점은 언제나 현재에 고정되어 있어야 행복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거나 무서워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 일은 나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위로하면 됩니다.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인생은 그 자체로 행복합니다. 주변과 비교하는 분별심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분별심을 버려야 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자체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론의 요지는 “불만족이 불행이며 만족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자리가 극락이고 도솔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존재의 가치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으면서 목말라하듯 행복 속에 있으면서 행복을 따로 구하는 것이 아닌지 모두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올 한 해 여러분들의 가정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성불하세요.

정리=강태희 충청지사장

이 법문은 성남 서광사 주지 지환 스님이 2월 4일 갑진년 입춘기도 입재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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