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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코끼리유치원 이사장 계성 스님

 평생 ‘반 사람’ 제도해도 성공한 출가…전법에 온 정성 다해야

‘반야심경’에 매료·충격
서운 스님 은사로 출가

사립 유치원 문 닫지만
코끼리유치원만은 건재

시설·교육시스템 ‘정평’
추첨 통해야 입학 가능

상대에 이익 보려 말라
실망 안 하면 후회 안 해

간절함 없는 현대인 
‘인과법’ 알아야 행복

월 3회 보현행원품 독송
소망·소원도 원력이 품어

‘업장 참회·회향 발원’
10종 대원 절실한 시대 

강화 코끼리유치원 이사장 계성 스님은 “나보다 선(善) 의지가 강하거나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나보다 선 의지가 약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보살”이라고 강조했다. [우제광 사진작가]
강화 코끼리유치원 이사장 계성 스님은 “나보다 선(善) 의지가 강하거나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나보다 선 의지가 약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보살”이라고 강조했다. [우제광 사진작가]

코끼리유치원!

불교 정서가 물씬 난다. 부처님 태몽에 출현했던 지혜의 상징 코끼리 아닌가. 1991년 2월 반지하에 1층으로 문을 연 코끼리유치원은 6년 후인 1997년 4월 건면적 1322㎡(400평) 규모로 성장했다. 3·4·5세 각 2학급씩 총 6학급으로 인가받은 총인원은 123명이다. 

유치원 곁에는 건면적 396㎡(120평) 규모의 코끼리어린이집(2004년 개원)이 자리하고 있다. 영아 전담 어린이집으로 2·3·4세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두 기관 모두 서울·경기권 어린이집 운영 관계자들이 견학 올 정도로 시설과 교육, 돌봄 시스템이 정평 나 있다.

출산율 급감에 사립 유치원이 속속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코끼리유치원은 원생 모집을 걱정하지 않는다. 1년 전에 대기 번호를 올려놓아야 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호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독보적이다. 창립자이자 이사장인 계성(鷄成) 스님의 원력이 빚어낸 쾌거다. 

할머니의 ‘천수경’·‘반야심경’ 독경 소리는 청아했다. 어렸을 적부터 그 소리에 잠들고, 그 소리에 깨었다. 할머니는 동네 밖에서 일어날 일을 내다볼 정도의 신통력도 보였다. 누군가 “절을 지으면 큰 돈을 벌겠다”고 하자 “수행을 돈벌이 삼으면 큰 악업을 짓는 것”이라며 호되게 내쳤다.

고등학교 3학년 말 즈음이었다. 대전 구암사에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가 해설을 곁들인 ‘반야심경’ 한 권을 건네주었다. 겉장 몇 장이 뜯겨 있어 볼품이 없었으나 책장을 넘겼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色卽是空)’

가슴 한복판에 그 무엇이 꽂혔다. 온몸이 흔들렸다. 한 달 내내 ‘반야심경’에 파묻혔다. 이후 학교는 물론 세상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그때 책을 건넸던 친구가 출가하자고 했다. 그 권유에 이렇게 답했다.

“공자가 말했지.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난 ‘반야심경’을 보았어. 오늘 죽어도 괜찮아!”

대학 시절 동국대로 편입한 후 동화사 주지 서운(瑞雲·1903∼1995. 조계종 22대 총무원장)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했다.(1977)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한 문장에 삶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중학교 3학년 과학 수업 때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이 1년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1년은 365일 열두 달. 하루는 24시간. 100년을 살아도 87만 6000시간밖에 못 씁니다. ‘회심곡’에도 나와 있지요, ‘인간 100년 다 살아도 병든 날과 잠든 날과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 사나니.’ 40년 살면 35만 400시간을 씁니다. 이렇게 짧은 인생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내가 할 일이 없구나 싶었지요. 그래서 농업고등학교를 선택 했습니다. 평생 자연과 노닐며 살고 싶었어요.”

허무와 무상의 경계 선상에 서 있던 것이다. 그러다 ‘반야심경’을 통해 나름 ‘공(空)’ 도리를 이해 내지 체득하며 무상의 세계를 스스로 열었던 건 아닐까?

“지금 돌이켜보면 무아·무상에 사무쳤습니다. ‘내 공부는 그때 마쳤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반야심경’은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출가 전 은사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계룡산에서 8개월 머물 때 알게 된 스님의 소개로 동화사를 찾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칠곡 천재’로 불렸던 은사 스님이십니다. 출가 직후 전국의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셨고, ‘선문염송’에도 정통해 누가 물어도 막힘이 없으셨습니다. 동화사 주지, 동국대 이사장, 전등사 조실 등을 맡으며 가람 수호는 물론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동화사에서 사제 인연을 맺을 당시 계성 스님의 세납은 21세였고, 서운 스님의 세납은 75세였다. 첫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여느 절에서는 새벽 예불을 올리기 위해 3시경에 기상하는데 은사 스님의 명으로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 이유를 여쭌 적이 있습니다. ‘달라야 해. 남과 같아서는 안 돼.’” 

한때 교계 저변에 “상좌를 동국대나 군법사로 보내면 위험하다”는 말이 회자한 적이 있다. 환속하는 스님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계성 스님이 군법사로 임관할 때도 그러했다.(1983∼1988)

“단 한 번도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꿈속에서도 저는 법복을 입은 스님이었습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출가할 겁니다.”

속퇴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상좌를 지켜본 은사 서운 스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월산, 석주 스님이 계시던 원로회의에 가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상좌가 있다.’ 원로회의 스님들에게 두 번이나 공양을 올리셨습니다.”
 

코끼리유치원 전경.
코끼리유치원 전경.

제대 후 강화 전등사에서 재무 소임을 볼 때 유치원 설립 원력을 세웠다.

“전법 차원에서 ‘강화 거사림’ 교육을 진행할 때입니다. 한 거사님이 저에게 ‘강화에 교회 유치원은 있는데 왜 불교 유치원은 없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불교는 뭘 하고 있느냐?’는 핀잔이었던 겁니다. 교실 두어 칸 지어서 시작하면 된다고 보고 운영할 스님들을 찾았는데 모두 사양했습니다. 하여 제가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군법사 임관 전까지 강화에 머물 때 부처님 법을 전하려 무척이나 애썼다. 이를 지켜본 강화읍 노보살님 몇 분이 불사에 쓰라며 땅을 내놓았다. 그곳에 유치원을 지으면 되겠다 싶어 평소 친분 있던 법왕자(法王子) 보살을 찾아갔다. 

“그 무렵 유치원 건립불사는 진척이 더뎠습니다. 땅을 내놓으셨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부도로 부득이 약속을 지킬 수 없는 분도 있었습니다. 훗날을 기약해야 하나 싶었는데 ‘땅이 왜 필요하신가?’라고 물어왔습니다. 유치원을 지으려 한다고 하니 ‘그럼 내 땅에 지으시라’며 지금의 코끼리유치원 부지를 선뜻 내주셨습니다.”
 

코끼리유치원 제1회 졸업식. [우제광 사진작가]
코끼리유치원 제1회 졸업식. [우제광 사진작가]

유치원과 인연 깊은 법왕자 보살이다. 개성의 최초 기숙 여학교는 개성여학당(1899년 설립)인데 호수돈 여학교로 교명을 바꿨다.(1938) 이 학교를 졸업한 법왕자 보살은 서울대 전신인 경성대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개성 호수돈여고는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전에서 다시 개교했다.(1953) 법왕자 보살은 이 학교 인근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바 있다.

“법왕(法王)은 부처님을 상징합니다. ‘초발심자경문’에서도 언급합니다. ‘물건에 인색하고 탐하는 것은 마구니의 권속이요, 자비로써 보시하는 것은 법왕(法王)의 제자다.’ 사찰명으로도 손색없다고 생각했는데 은사스님께서도 흔쾌히 ‘법왕사(法王寺)’로 이름하라 하셨습니다. 법왕자 보살님을 비롯한 강화도 불자님과 전등사, 은사스님의 관심과 지원에 힘입어 코끼리유치원을 개원했습니다.”

법당은 3층에 조성돼 있다. 그러고 보면 ‘법왕사’ 안에 ‘코끼리유치원’이 존재하고, ‘코끼리유치원’ 안에 법왕사가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불교 색채를 노골적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은 간접적으로 불교를 접합니다. 유치원 교육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법당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불보살님을 친견하는 셈입니다. 저를 찾아온 청년의 이야기인데 코끼리유치원을 졸업한 청년 대부분이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면 법당을 찾는다고 합니다.”

강화에서는 한 해 600여 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제 230여 명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코끼리유치원은 추첨을 통해야만 입학할 수 있다. 

“상좌 일곱 명이 있는데 이런 당부를 하곤 합니다. ‘상대로부터 이익을 보려 하지 말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실망감이 너무 커 상대를 욕하고 심지어 무너뜨리려고도 합니다. 반면 실망하지 않으면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코끼리유치원을 통해 이익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이익을 볼 수도 없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시도해서는 안 됩니다. 코끼리유치원에서 나온 그 모든 이익은 코끼리유치원으로 환원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랍니다.”

2022년 9월부터 매월 1·2·3일 저녁 6시 30분 불자들과 함께 ‘보현행원품’을 독송한다. 평균 20여 명이 참석한다. 

“군법사 임관 직후부터 법문을 했으니 40여 년 동안 설법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불자님 스스로 원력을 세우는 게 중요하고 공덕도 더 크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업장을 참회하고 모든 것을 회향하겠다는 보현보살 10종대원(普賢菩薩十種大願)을 보세요. 작은 소원이나 소망도 큰 원력이 품어 버립니다. ‘보현행원품’ 독송만큼은 이생을 마칠 때까지 하려 합니다. 보현행자로 나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아하 그렇구나’하고 ‘나도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하자’ 하는 순간 보현행자가 되는 겁니다.”

일선의 포교사 대부분이 전법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평생 전법에 매진한 계성 스님은 조계종 포교원 포교부장 소임도 보았다. 묘책이 있을까? 

“간절할 때 종교는 힘을 발휘합니다. 현대는 물질이 풍족한 시대이기에 간절함이 없습니다. 탈종교화가 시작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불교가 제 역할을 합니다.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 즐겁고 행복 하려면 올바르고 착한 일을 해야지요. ‘인과법’을 전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
 

코끼리어린이집 전경.
코끼리어린이집 전경.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청했다.

“동화사에서 은사스님을 처음 친견했을 때 출가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그때 ‘반야심경’의 말씀을 전하며 포교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은사스님께서는 평생에 걸쳐 ‘반 사람’만 제도해도 성공한 출가라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 포교’에도 온 정성을 다해야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사홍서원의 첫 번째가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일체 중생을 구제한다)’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사람은 이익 있는 곳에 모입니다. 요익중생(饒益衆生)에 방점을 찍고 법을 펴면 더디어도 포교는 이뤄집니다. 그러니 누구, 어디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만나서 법을 전해야 합니다. 묵묵히, 꿋꿋하게 걸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상·무아의 뜻을 명확히 새겼거나 체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욕심이 앞서고, 결국에는 사익을 탐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부처님 법이 전해질 리 없습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의미도 명료하게 설파했다.

“포교사로의 해석입니다. 나보다 선(善) 의지가 강하거나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나보다 선 의지가 약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보살입니다. ‘세상은 부처가 아니라 보살이 구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이 길을 걷고자 합니다.”계성 스님의 발길이 닿은 강화는 지금 ‘보현보살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계성 스님은
1956년 공주 출생. 1977년 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3년 군법사 임관. 군종교구부위원장, 군불교위원회부위원장(군종교구 전신) 역임. 대구 유가사·강화 전등사 주지. 조계종 포교부장(2008∼2011)과 교육부장(1999. 1∼2001.2), 교육원장 대행(2001. 1∼9.) 소임을 보았다. 강화 불은면의 불은어린이집도 수탁한 계성 스님은 강화군 장애인복지관과 강화군 장애인 바우처 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1720호 / 2024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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