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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근심과 즐거움이 선거에 있다

기자명 원상 스님

속리산 토굴에서 지내고 있다. 집 뒤로 냉골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올라가면 속리산에서 제일 높은 천황봉에 다다를 수 있다. 냉골이라는 말처럼 계곡에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돌고 아직도 응달에는 잔설과 얼음이 골짜기마다 남아 겨울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양지바른 곳에는 애기냉이들이 듬성듬성 있어 지난주에는 여린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어려서인지 향은 그리 나지는 않았다. 동장군이 쎄다 해도 봄날 훈풍을 어찌해보겠는가.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보은 읍내에 나가 장도 보고 목욕도 하는데 새로 잘 지은 건물이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이었다. 간판석 같은 큰 화강암에 세로로 적혀있는 글귀가 ‘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다. 천하의 근심과 즐거움이 선거에 있다는 이야기인데, 보는 순간 공감 백프로다. 

직원이나 일꾼을 뽑을 때 일 할 만한 사람을 뽑아야 그 집단이 흥성할 수 있지 사기 치고 도둑질하는 사람을 뽑으면 뻔할 뻔 자 아니겠는가. 살면서 좋든 싫든 선거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옛날부터 정치인들은 민중들의 바른 선택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눈요기할 것을 만들고 선거 때만 등장하는 ‘빌 공’자 공약들이 무지갯빛으로 난무했다. 그러나 선출되면 공약은  그야말로 신기루가 되고 말았다.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축원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악인원리 귀인상봉’이다. 나쁜 인연은 피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라는 의미다. 선거 역시 악인원리 귀인상봉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지역의 일꾼을 뽑는 일이고 나라의 일꾼을 뽑는 중차대한 일이다. 보통 정치 경제가 불안정한 나라들이 걸러내야 할 사람들을 다시 뽑는다. 이 사람들은 ‘달인스럽게’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이렇게 모은 돈이나 권력을 기반으로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연관된 사람들만 배를 불리고 그들만의 특권층을 만드는 악의 순환이 거듭된다. 대다수 사람들이 하층민으로 살게 되고 그래서 가난과 실직으로 사회는 항상 불안하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깨어나지 못한 시민들,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선원에서는 결제 들어가기 전 용상방을 짜는데 각자 한 철 사는 동안에 책임져야 하는 소임을 정한다. 첫 번째로 뽑는 소임이 입승이라는 소임인데, 입승은 한 철 동안 리더 역할을 한다. 선출되면 죽비 전달식을 하는데 작은 경상에 죽비를 올려놓고 그 경상을 입승스님 앞에 내려놓으면 전 대중을 대신해서 삼배를 한다. 그만큼 권위를 인정하고 실권을 위임하는 것이다.

그렇게 권위가 막강하기에 입승을 잘못 뽑으면 한 철 동안 대중은 피곤하다. 반대로 잘 뽑으면 대중이 화합하고 공부 분위기도 좋아 무탈하게 한 철을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딜레마가 있다. 입승을 잘 살아줄 만한 스님들은 이 소임을 안 보려 하고 저 스님은 아닌데 하는 사람은 또 그 소임을 살려 하니 이럴 때 참 난감하다. 그래서 대중이 많은 선원에서는 ‘가방’을 짠다. 상판 스님들 칠팔 명이 모여서 입승으로 모실 스님을 중론으로 모으고 그 스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허락을 받은 후에 전체 용상방을 짠다. 두 번에 걸쳐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려울 때가 왕왕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진실은 어는 사회나,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 같다.

‘천하의 근심과 즐거움이 선거에 있다’는 글귀가 절실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다. 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좋은 인생의 지름길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을 경(經)이라 하는데 이 경의 뜻이 지름길이라는 의미이다. 중생들이 다른 곳으로 돌아 가지 않고 경에 담긴 말씀을 따라가면 지름길로 가듯이 쉽게 구경안락에 닿을 수 있다. 선거에서의 바른 선택이 바른 미래를 가져오는 지름길이다.

원상 스님 복지법인 연꽃마을 전 이사장 bu7654@naver.com

[1721호 / 2024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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