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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질 수 있으나 만지지는 말라” : 승단의 재무관리 

‘내 것’이지만 ‘내 맘대로’ 쓸 수는 없다

스투파 건립에 유산 받거나 많은 기부 받은 스님들도 참여
수행·교단 운영에 도움이 되면 사유재산 소유도 문제 없어 
재가 대리인으로 사용 통제하는 안전장치 두어 욕망 근절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에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은화 까르샤빠나의 앞면(왼쪽)과 뒷면.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에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은화 까르샤빠나의 앞면(왼쪽)과 뒷면.

우리는 부처님 시절 승려들이 단지 발우와 가사, 물병, 지팡이 등 생활과 수행에 필요한 필수품만 소유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율장인 ‘설일체유부비나야’ 등을 살펴보면 사실상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설일체유부비나야’는 부처님 입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시점의 교단 상황을 반영한 것이므로, 부처님 당시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기본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누군가 승려에게 많은 것을 기부할 때 그것이 너무 많다고 굳이 거절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으셨다. 받아온 다음에 동료 스님들과 나눠 쓰면 되니까 그러셨을까 싶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개인의 물품으로 인정하셨다. 때로는 승려의 부모 등이 세상을 떠나며 유산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도 부처님은 받아서 승단에 기부하라는 등의 강제조항을 두지 않으셨다. 그런 경우도 개인이 소유해도 된다고 하셨다. 이런 뜻밖의 상황은 율장에 보이는 승려들의 재산관리 조항을 면밀히 분석한 그레고리 쇼펜의 ‘대승불교의 흥기시대 인도의 사원생활’(운주사, 202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스투파를 세우거나 할 때 승려가 기부자 명단에 들어 있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무소유의 승려가 어떻게 기부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마 이렇게 유산을 받거나 많은 기부를 받은 승려가 이를 다시 불사에 내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부가 강제조항이 아니었음이 주목된다. 그래서 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승려도 있었던 모양인데, 평소에는 이것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승려가 입적하면 그 승려가 가지고 있던 재산의 분배를 두고 여러 일들이 일어났던 것을 율장을 통해 알 수 있다. 결국 승려들도 사유재산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성직자가 재산을 많이 가지게 되면 그만큼 타락하기도 쉽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원천적으로 가난하게 살면서 재산을 가지지 못하게 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부처님은 많은 기부가 수행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승려가 수행을 게을리하고 행동이 바르지 않다면 어차피 사람들이 공양이나 시주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량의 공양이나 시주를 받는 승려가 있다면 그는 그만큼 존경받을 만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므로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고 보셨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돈맛을 보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바로 출가자는 “재산을 가질 수는 있지만, 만지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언뜻 모순된 것 같지만, 상당히 날카로운 법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만지지는 말라는 것은 그 돈을 쓸 때는 본인이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집행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재산이 들어오게 하는 것은 자유지만, 나가는 것은 통제한 것이다. 혼자 쓴다면 뭐든 다 하겠지만, 그래도 체면이 있는데 술을 마시고 재가자에게 술값으로 얼마를 주막에 지불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술을 못 사 먹게 하거나, 사치를 못하게 하거나, 유흥비로 쓸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통제한다면 타락할 일도 차단된다. 지금도 나라에서 연구비를 받으면 개인이 받아서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산학협력단 같은 곳을 통해서 대금을 지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비로 받은 돈은 내가 쓸 수 있는 돈이지만, 내가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요청에 의해 산학협력단이 돈을 지출하게 되는 구조다. 때문에 원래의 용도와 맞지 않는 곳에는 원칙적으로 한 푼도 쓸 수 없다.

승려들에게 산학협력단 역할을 하는 것이 재가의 승려 재산 관리자들이었다. 심지어 기부받은 물건 중에 관리가 어려운 항목은 팔아서 현금으로 바꿔도 되었다. 다만 이 경우도 관리는 재가 관리자가 맡았다. 부처님 당시 사용되었던 현금 화폐는 까르샤빠나라고 불리는 망치로 두들겨 만든 은화였는데, 이런 은화가 일상적인 거래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시 인도가 얼마나 상업이 발달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율장은 이러한 자산관리를 해줄 관리자가 없을 때에는 부득이 사미에게 맡길 것을 지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미는 승려(비구)와는 반대로 “돈을 만질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다”. 참으로 완벽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사미는 정식 비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단계이므로 이때에는 철저하게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종 불교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공동으로 자산을 관리하는 것 때문에 불교의 경제관이 공산주의 경제관과 유사하다고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는 사유재산이라는 수입을 막은 것이 아니라, 그 수입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통제했다. 그 용도가 바람직하다면, 그리고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고, 교단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사유재산을 가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해서 모든 불교수행자들이 넉넉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관광지처럼 인기가 많은 특수한 사찰들만을 보고 사람들은 모든 절과 스님들이 돈이 많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절은 살림이 녹록지 않다. 부처님 당시의 스님들 중에 사유재산이 많았고, 스투파 건립에 큰돈을 낸 몇몇 스님들이 계셨다고 해서 “아, 당시 스님들은 부자였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지나친 비약이다. 대부분의 사유재산은 급할 때 약을 살 정도의 현금, 여러 승려가 단체로 기부를 받았을 경우 그것을 나누기 곤란한 물건일 때 팔아서 현금으로 나누는 정도의 사소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수완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indijoo@hanmail.net

[1721호 / 2024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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