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희인(청량심·68) 간화선수행 - 하

기자명 법보

자원봉사로 자비 실천하다
참선강의 접하고 정진 시작
화두 잡으며 마음 안정 취해
부처님 닮은 수행자 삶 서원

기초부터 시작해 불교대학, 불교대학원 전 과정을 밟으며, 초기경전 공부와 위빠사나 수행을 빠뜨리지 않고 지속해 나갔다. 평생을 ‘All or Nothing’의 사유 프레임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과거의 시간은 부처님의 자상한 가르침으로 ‘지금 여기’서 ‘나와 타인이 둘이 아님’을 관조하는 현재의 시간으로 대체됐다. 그 시간영역은 무한 확장돼 ‘부처님 닮아가기’로 변화하는 노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자비와 사랑, 이타심의 실천행을 위해 사찰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도 이어가며 신행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부처님처럼 생각하기’ ‘부처님처럼 행동하기’라는 스스로의 다짐 속에서 생활하던 중, BTN불교TV에서 비구니스님의 참선 강의를 접했다. 참선이라 하면 노보살님들이 선방에서 빳빳하게 풀 먹인 옷을 입고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연상됐다. 절에서 봉사할 때 바라봤던 선방 모습이었다. 참선에 대한 나의 사전 지식은 거기까지였다. 궁금했다. ‘참선’이 뭘까? 

영상 하단 ‘불교인재원’이라는 다섯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50대 시절 우연히 봉은사의 기초학당 공부모집 배너를 보고 불교를 공부해야겠다 발심한 기억이 소환됐다. 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는데 불교공부가 시작된 경우처럼 평소 그 채널은 보지 않았는데 왜 하필 그 시간에 관심 없었던 참선강의를 보게 되었는지, 그 당시는 별 생각이 없었다. 

‘불교인재원’에 바로 전화를 하고 공부안내를 받았다. 오랜 수행경험이 있음에도 참선이 뭔지, 생활참선은 또 무엇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공부를 시작하며 ‘간화선’이란 단어도 처음 접했다. 여태껏 초기경전을 공부했고, 위빠사나 수행을 했기에 선은 지극히 낯설게 다가왔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란 누구인가’ ‘무엇을 깨달았는가’ 등으로 시작되는 입문공부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는 아상이 컸던 내게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본격적인 화두참선법을 배우고 익히며, 중간에 멈추지 않길 너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비롯해 조사들의 다양한 어록들을 접하며 얻은 소중한 내적 경험들로 인생 후반부는 행복 그 자체가 됐다. 

그럼에도 선지식으로부터 받은 화두를 단 5분 동안 들고 앉아 있는 나의 내면에는 온갖 번뇌 망상이 쓰나미처럼 몰려 들어왔고, 그때마다 화두는 뚝 뚝 끊어져 버렸다. 화두를 놓치는 괴로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버릴 수도 없고 취해지지도 않는 화두. 계속되는 수행 속에 조금씩 화두가 성성해지기 시작하면서 5분, 10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앉기만 하면 쓰나미 같이 몰려왔던 온갖 망념들은 이제는 잠시 왔다 사라지는 포말로, 30분 동안 스무번, 서른번 넘게 끊겼던 화두는 10분 이상의 화두일념으로 수행에 진전을 보이게 되었다. 

간화선 수행이 조금씩 익어가며 내 삶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매사 분별하고 따져 묻던 오래된 습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고, 스트레스 상황에선 불편한 감정들이 바로 화두로 전환돼 마음의 안정을 취하게 됐다. 이 세상만물이 둘이 아님을, 나와 남의 존재원리가 중도연기임을, 나 이대로가 본래 부처임을 말과 글이 아니라 화두일념으로 그대로 체화했다.

10대 시절 엄마한테 투정 부리며 다시 태어나도 ‘나’일 거라는 말, 20대 해인사 일주문을 넘지 못했지만 50세가 넘어 다시 찾은 해인사를 두근거림과 걱정 반으로 마주했던 일,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후 무난히 일주문을 넘은 일, 간화선으로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경험하기까지. 문자로, 언어로, 분별로 이해한 지난한 삶의 세월 속에서 이제는 말의 길, 언어의 길이 끊어진 바로 그 길을 가고 있다. 화두일념 속에서도, 화두에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도 무량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남은 생 동안 부처님이 펼쳐 놓으신 자비와 사랑의 그 길을 뒤따르며, 이웃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하며 화두일념으로 새벽을 연다. 

금생에서 내생에서 부처님 닮은 수행자의 삶을 살기를 서원한다.

[1721호 / 2024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