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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먼저 걸어가자

기자명 김예진
  • 청년 칼럼
  • 입력 2024.03.25 15:21
  • 수정 2024.03.25 15:31
  • 호수 1722
  • 댓글 0

회장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학기다. 두 달 간의 방학 동안 나름 회장이란 이름을 달고 실수도 경험도 쌓았으니 어려움이 닥쳐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임원 법우들과 3월 동아리 활동 일정을 짜고, 동아리 가두모집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새 학기는 걱정보다 설렘이 앞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개강 법회가 닥치자, 갈 길이 멀다는 걸 새삼 느꼈다. 목탁은 박자를 맞추기 어려웠고, 법당 안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물품들도 꼭 한두 개씩 없었다. ‘당연히 있겠거니’ ‘당연히 되겠거니’하는 안일함이 얼마나 큰 독인지 알면서도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새 학기를 기다리며 했던 생각처럼 어떻게든 되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오는 개강 법회에서 이런 실수를 했다는 점이 좋지 않았다. 

대학의 3월은 이런 심란함을 오래 품고 갈 만큼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당장 다음주에는 동아리 가두모집이 있었고, 법회와 주말 근교 사찰 탐방할 준비도 해야 했다. 거기다 지난해의 배는 되도록 쏟아지는 과제까지 감당해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저번 법회처럼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늘 있었다. 개강 법회와 가두모집이 끝난 주의 법회는, 개강 법회와 함께 한 학기 법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오는 법회이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면 동아리 방에서 목탁 연습하고, 법회에 필요한 물품 중 빠진 것이 없는지 여러 번 점검했다. 이제 완벽하게 집전을 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정기 법회가 열리는 날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세상은 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못해도 30명은 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람이 적었다. 20명이 적지 않은 숫자긴 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사람이 적은 게 걱정되었다. 거기다 가두모집이 끝난 다음임에도 법회에 처음 참석한 학우가 많지 않았다. 주말에 갈 사찰 탐방 역시 참여율이 저조한 참이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법우들도 많이 참여해주리라 여겼는데, 왜 그렇지 않을까? 법문을 들으면서도 내내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법회를 마친 후, 임원 선배가 한마디 건넸다. “오늘처럼 다음 주도 법회가 생각처럼 안 될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건 그때 잘 해결하면 되니 걱정하지 말자. 일단 우리가 재밌게 해야 다른 법우님들도 많이 참여해주시지 않을까?”

선배의 말을 듣고 그날 일을 되새겨 보았다. 사실 생각보다 참석률이 낮았던 것을 제하면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저번 주엔 제대로 치지 못했던 목탁도 제법 괜찮게 쳤고, 집전도 걸리는 것 없이 했다. 저녁 식사 분위기도 좋았고, 식사가 끝난 후엔 법우들과 차담도 했다. 그런데도 내가 걱정했던 것은, 나 혼자 이상적인 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동아리가 즐겁기보단 일로 느껴졌고, 즐겁고 편안해야 할 동아리가 그런 분위기니, 법우님들의 참석도 예년보다 저조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렇게 보니, 선배님이 해주신 ‘재미있게 하자’는 말이 다르게 와닿았다. 욕심내지 말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렇게 생각하니 막막하게만 보였던 앞이 조금은 개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 다음 주도 해야 할 것이 한가득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보단 ‘어떻게 하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그렇게 즐겁게 먼저 걸어 나갔을 때, 법우들도 함께해주기를 바라며.    

김예진 경북대 불교동아리 회장  yyy7195@naver.com

[1722호 / 2024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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