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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듯 작업한 영상 통해 성성한 부처님 진리 전합니다

  • 무진등
  • 입력 2024.03.27 14:11
  • 수정 2024.03.27 17:21
  • 호수 1722
  • 댓글 2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장 이창재 교수

모든 것 포기한 순간 찾아온 불연
출가 고민할 만큼 공부하고 정진
불교서 찾은 희망 함께 나누고자
수행 여정 담은 ‘길 위에서’ 제작
죽음 다룬 다큐 찍으며 공부 심화
영상세대 맞춰 포교방법도 변해야

이창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장은 2013년 비구니스님들의 수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제작했다.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진리가 활자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말고 우리 의식과 더 닮아있는 영상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현대 불교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장은 2013년 비구니스님들의 수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제작했다.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진리가 활자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말고 우리 의식과 더 닮아있는 영상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현대 불교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장인 이창재 교수는 2013년 비구니스님들의 수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제작한 감독이다. 일반인들에게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에서 펼쳐진 스님들의 치열한 정진담은 진한 감동과 함께 묵직한 울림을 전한 수작으로 꼽힌다. 

천상 불자일 것 같은 이창재 교수가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 년 전인 대학생 시절.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고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답을 찾고자 삶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교수님을 찾아가기도 했다. 삼시세끼를 먹어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선 무언가를 추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낭떠러지에 뚝 떨어져 버리는 이 세상이 부조리해 보였다. 그저 혼란스럽고 삶 자체에 대한 회의만 깊어졌다. 

문득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났기에 살아간다는 것이 미련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답을 찾고자 했지만 반복되는 실패에 정말 굳이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점차 그를 잠식해갔다.

변화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선배가 책 한 권을 건냈다. ‘불교의 이해’였다. 삶의 방향성, 의미를 송두리째 변화시킬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희망처럼 보인 그 빛을 따라 ‘불교입문’을 탐독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꾸준히 불교공부를 이어갔다. 틈이 날 땐 수행처에서 정진도 했다. 출가를 고민할 만큼 불교에 흠뻑 빠져들었다. 

변화는 시나브로 이어졌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관객이 적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출가라는 가지 못한 길을 걸었다면, 어떤 삶이 펼쳐졌을지 궁금했다. 불교에서 찾은 삶의 희망을 사람들과 나누고도 싶었다.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많은 작품을 찍었지만 ‘길 위에서’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촬영지로 20여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산문을 열어주겠다는 도량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백흥암도 그중 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답사갔을 때 무조건 이곳에서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여기서 찍지 못하면 평생 후회가 남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비구니 스님의 수행 과정을 담은 ‘길 위에서’
비구니 스님의 수행 과정을 담은 ‘길 위에서’

백흥암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했지만 누추하지 않고, 깊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수행도량이었다. 회주 육문 스님의 지도하에 전통을 고수하고 원칙을 지키며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에도 매료됐다. ‘팔공산 호랑이’라 불리는 육문 스님에게 비구니 수행자들의 수행과정을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스님은 오랜 고민 끝에 처음으로 긍정의 뜻을 밝혔다. 스님은 “과거에는 포교를 위해 수행자가 팔도를 돌아다니며 대중과 만났다면, 지금은 미디어라는 것이 발달했으니 그걸 통해 포교를 하는 것도 옳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율이 느껴졌다.

“떨릴 정도로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명이 단번에 느껴지는 포스를 가진 분이었는데 포교를 위해 번거롭더라도 선원을 열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허락은 언덕 하나를 넘은 것에 불과했다. 앵글에 담을 수좌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대중공사에 직접 나서 설명하고 스님들의 동의를 구했다.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가 감소하는 현실 속에 포교는 모든 불교 구성원이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임을 강조했다. 영상 속 메시지를 통해 관객들 마음에 작은 마음의 법당이 세워지면 그 자체로 포교에 기여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간절함이 전해졌던 것일까. 모두의 동의를 얻진 못했지만, 촬영은 시작됐고 시간이 갈수록 단단했던 마음의 빗장이 조금씩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촬영하는 동안 수행자의 내적갈등을 관찰하고 싶었다. 수행자는 견성을 원하고 화두를 붙들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죽을 만큼 노력하는 과정에서 에고(ego)가 불쑥불쑥 올라오면 그것이 회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제목이 ‘길 위에서’인 것도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의미다. 

예상과 달리 수행자의 내면을 담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수행자의 내적갈등은 정진의 과정이며 넘어야 할 벽이기에 타인의 시선으로 이를 간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신 본인이 가지 못했던 출가 수행자의 삶을 날것 그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상상만 해봤던 그 삶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이곳저곳을 헤매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깨달음이라는 하나의 목적지로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담는 과정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동시에 환희로운 수행의 여정이었다.

그에게 수행과도 같았던 또 하나의 작품은 ‘목숨’이다. ‘길 위에서’를 통해 삶의 과정을 바라보았다면 ‘목숨’은 삶의 끝을 다룬 작품이다. 호스피스병동에서 80여 명의 임종을 지켜보며 삶의 또 다른 면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 깨달음을 더 파헤치고자 불교에서 말하는 삶과 죽음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학문적으로도 정리가 됐고 생사학회를 비롯해 죽음에 관한 강연에도 서게 됐다. 최근에는 조계종 교육원으로부터 강의를 요청받았다.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불교와 영화’를 주제로 한다. 경험하기 어려운 죽음과 내세라는 관념적 개념을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통해 쉽게 이해하도록 이끌고 나아가 죽음의 과정과 그 의미를 전할 예정이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 ‘목숨’
호스피스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 ‘목숨’

“죽음을 알면 삶이 훨씬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은 괴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지막을 맞이해주는 대단히 멋진 세계라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교수는 죽음을 직시하면 삶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통찰은 생로병사를 겪는 모든 사부대중과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 주제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나누며 죽음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또 하나의 바람은 영상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많은 대중에게 전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반한 시나리오에 분위기, 배경, 음악 등을 더하면 대중에게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음을 경험했다. 불교계도 영상매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후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지금까지 전승된 것은 대중의 호기심과 공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방식도 훌륭하지만 지금 우리는 완전한 영상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진리가 활자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의식과 더 닮아있는 영상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현대불교에 꼭 필요합니다.”

그는 현재 맡고 있는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장 소임을 2년 후 내려놓고 평교수로 돌아간다. 임기를 마치면 다시 카메라를 들고 부처님 가르침 성성한 현장에 돌아갈 계획이다.

“스님들이 수행과 포교로 세상과 소통하듯 저는 영상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생각입니다. 점 찍듯 정진한 단발성 수행도 꾸준한 수행으로 이어가려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을 맞으려면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캐내야 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되풀이되는 일상을 부처님 법으로 새롭게 심화시키고 있기에 이창재 교수의 오늘은 날마다 좋은 날이다.  

유화석 기자 fossil@beopbo.com

[1722호 / 2024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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