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見性)
견성(見性)
  • 법보신문
  • 승인 2004.06.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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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됨을 따르면 모두가 헛될 뿐
진실에 머물면 진실 아닌 것 없어
조사선의 공부를 한 마디로 요약할 때, 흔히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키면 성품을 보아 깨달음을 이룬다는 뜻이다. 깨달음을 이루는 열쇠는 곧 성품을 보는 견성이다. 견성이란 무엇일까? 견성을 아무 흠 없이 드러내면, 바로 견성이다. 다만 견성일 뿐이다. 다만 견성일 뿐인 여기에는, 아무런 뜻도 소리도 경계도 머무름도 분별도 대상도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손을 대거나 생각을 움직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여기에서 바로 알아차려야 진실한 견성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시험삼아 견성에 관한 탐구를 시도해 보자. 견성에는 우선 ‘성품을 본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뜻으로 나아가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긴다. 견성이란 하나의 문제에서, ‘성품이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두 개의 문제가 나오고, 다시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 본다는 것인가 하고 더욱 많은 문제가 파생해 나온다. 결국 견성을 뜻으로 풀려고 한다면, 더욱 많은 문제만 낳을 뿐이다. 두 번째로 견성에는 ‘견- 성- ’이라는 소리가 있다. ‘견- 성- ’이라는 소리는 순간 생겼다가 사라지는 무상하고 허망한 경계이다. 이처럼 견성이라고 할 때, 그 뜻을 따라가거나 소리를 따라가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분별망상에 휘말려 들거나, 무상하고 허망한 경계에 머물려고 하는 헛된 짓을 하게 된다. 분별망상과 무상한 경계는 생멸법이므로, 이렇게 해서는 불생불멸(不生不滅) 여여부동(如如不動)이라고 하는 견성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진실한 견성인가? 진실한 견성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은 곧 조작하여 만드는 것이다. 조작하여 만드는 것은 모두가 생멸법이다. 견성은 마치 고온의 불덩어리와 같아서 어떤 생각이나 손길의 접근도 용납하지 않는다. 견성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생각과 감각과 행동으로 밝혀낼 수 있지만, 견성은 생각이나 감각이나 행동에 의하여 규정되지 않는다. 견성이란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니다. 아느냐 모르느냐와 견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무엇을 알고 있다면 그 무엇에 사로잡혀 속고 있는 것이고, 아무것도 모른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다고 하니 거짓말이다.

어떻게도 하지 않을 때, 다만 견성만이 분명하다. 뜻을 따라가지 않고 소리에 머물지 않을 때, 다만 견성만이 진실하다. 견성에는 이러이러 하니까 견성이라는 그런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내용이 없다. 조건이 원인이 되어 이루어지는 것은 인과법이므로, 허망한 생멸법이지 진실한 진여법은 아니다. 어떤 내용이 있다면, 견성은 내용으로 구성된 허망한 구성물일 뿐이다.

물결 있는 그 곳에 반드시 물이 있듯이, 모든 인과법(因果法)과 생멸법(生滅法)이 뚜렷하고 분명한 바로 여기에 반드시 무인무과(無因無果)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인 진여법(眞如法)도 뚜렷하고 분명하다. 헛됨을 따르면 모두가 헛될 뿐이요, 진실에 머물면 진실 아닌 것이 없다.

견성이 무엇인가? 견성이 바로 견성이다.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살며시 들어 보라.

김태완 박사
무심선원 원장 www.mindfre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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