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클을 거는 사회

기자명 법보신문

남의 한계를 지적하기는 쉬우나
그 부분을 채우기는 어려운 법

나는 박사 논문을 쓰면서 나 자신이 내 논문의 가장 엄격한 비평가가 되어 있음을 경험한다. 대학원에 들어 와서 초창기 3년 동안 공부한 것은 학계 안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들을 읽는 것이었다.

다른 학자들의 논문을 읽어가면서 프린스턴과 하버드 교수님들은 나에게 그 글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가려내는 작업, 그 학자의 글 속에 숨어 있는 가정이나 편견에 관한 분석, 논문이 주장하는 요지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요구했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아무리 훌륭한 논문이라도 그 저자가 주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관한 한계가 보이게 되었고 박사 학위생 3명이 모여 토론하다 보면 아무리 훌륭한 논문이래도 헛점들이 드러나지 않는 글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몇년 동안 남의 글에 대한 비평만 하다가 막상 내가 나의 글을 써야 되는 때가 오니 입장이 정말로 난처해진 것이다. 나의 주제 접근 방식이 예전에 내가 비평했던 글과 별로 차이가 없는 점이 보이고 내 안에 숨어 있는 종교적 세계관적 성향이나 편견 역시 아무리 넣지 않으려 해도 나중에 가서는 다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글에 대해 비평할 때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된 것 마냥 대학자들의 글을 마구 저울질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비평만 했을 뿐 더 나은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에는 너무 인색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몇 년 동안 열심히 연구해서 써 놓은 논문을 나의 어설픈 머리로 잔뜩 상처만 냈을 뿐 그 뒤 수습 방안은 전혀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경우와 비슷한 뉴스를 며칠 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 지원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발표 내용을 보면 그 전 클린턴 행정부가 내 놓았던 대북 지원 계획과 별반 다른 바가 없다고 한다. 지난 4년 동안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한 정책을 줄 곧 비판만 해왔는데 정작에 대안을 제시하려니까 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최근 들어 정부 정책에 있어서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비판만 하는 경향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본인이 그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책임을 지지 않고 대안 없이 비판하는 것은 공허하기 짝이 없으며 그것은 자신의 에고를 강화시키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태클을 걸어 공을 빼앗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공을 빼앗고 나서 어떻게 그 공을 계속 몰고 갈 것인지까지 생각하자.

왜냐하면 우리들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팀에 속해 있어, 공을 빼앗은 후에도 같은 골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