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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라즈기르 Ⅱ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04.08.17 13:00
  • 댓글 0

위대한 스승 앞에 1250대중 모여들다

“우리가 이땅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서로에게 의존해서 만들어진다”



<사진설명>벱바라산에서 바라본 라즈기르(왕사성) 전경

보드가야(Bodhgaya)에서 깨달음을 이룬 붓다는 사르나트로 이동해 이른바 다섯 비구를 교화한 후 제자들을 향해 전도명령을 내리고는, 자신도 출가 직후 6년 고행을 했던 우루벨라로 향했다. 우루벨라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카사파 형제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교화에 나선 붓다는 카사파 형제와 제자 1000명의 귀의를 받았다. 그런데 이 카사파 형제 무리의 개종 사건은 마가다 국 사람들의 정신적 귀의처였던 바라문교의 거대한 댐에 구멍이 생기는 것과 같은 당시로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마가다 국 사람들에게 카사파 형제들과 같은 대단한 바라문이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개종 소식은 이윽고 빔비사라 왕에게도 전해졌다. 이전 붓다가 우루벨라에서 고행을 마치고 잠시 라즈기르에 머물고 있을 때, 도를 깨달으면 자신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겠다고 약속했던 젊은 크샤트리아가 마침내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는 소식은 왕에게는 일면 반가운 것이기도 했다. 빔비사라 왕은 신하들과 함께 서둘러 우루벨라로 향했다. 황색 가사를 입은 수많은 수행자들이 만들어내는 우루벨라의 광경은 참으로 신성하고 감동적인 것이었다. 왕은 붓다에게 다가가 예를 올리고 말했다.

“붓다여,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당신께 깨달음을 이루면 라즈기르로 돌아와 그 가르침을 줄 것을 청한 바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온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곧 라즈기르로 오시어 우리가 준비한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붓다는 미소와 침묵으로 빔비사라 왕의 공양초청을 수락했다.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뿐 만이 아니라 내심으로는 빔비사라 왕의 귀의를 받는다면 그의 도움을 받는 수많은 바라문들과 백성들이 자신의 바른 진리와 인연을 맺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한 날이 되어 붓다는 라즈기르의 동쪽 바이바라(Vaibhara) 언덕과 소나(Sona) 언덕 사이에 위치한 제티안(Jetian·아직 이곳의 위치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빔비사라 왕과 12만 명의 바라문들이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붓다를 위해 특별히 지어놓은 정자에 자리 잡은 붓다와 그 제자들 앞으로 빔비사라 왕이 나아가 예를 올리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말했다.

“붓다여, 무엇이 우리같은 크샤트리아를 이상적인 통치자로 만드는지 설명해주십시오.”
“왕이시여, 이상적인 통치자는 진심으로 백성의 복지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무력이 아닌 정의로써 통치합니다.”

“그러나 바라문들은 정의는 칼에 의해 지켜지며, 그런 까닭에 크샤트리아를 칼잡이라고 부른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왕이시여, 그들은 정의가 지고(至高)의 존재, 창조신 브라흐마가 제정한 법칙이라고 가정합니다. 또 그 법칙이 진리이며 인간은 성스러운 신의 명령과 법칙에 반대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반대하는 자들은 진리가 아니라 악이며, 마땅히 칼에 의해 처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발견한 진리는 연기(緣起), 즉 의존적 발생의 진리입니다.

정의 역시 이 의존적 발생의 진리에 의해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조물주 혹은 자기 자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복잡한 조건들의 조합의 결과로 생성된 것입니다. 인간은 탐욕과 증오, 미혹에 의해 악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의 악의 근원은 뿌리째 제거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경지를 얻었고 나와 함께 있는 대부분의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나는 일단 태어난 생명을 파괴하는 것을 옹호할 수 없습니다.

윤회를 끝내는 것과 존재하고 있는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일단 존재하게 된 생명은 설령 자기 자신일지라도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악행이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자신을 행복으로 이끄는 행위가 선(善)입니다. 이것이 내가 발견한 진리이고 정의입니다. 이 진리는 신의 계시도 천상의 명령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우리가 이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의존적으로 발생한다는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적인 통치자란 세계의 본성을 의존적 발생이라고 이해하고, 선의 증장을 도모하며, 피지배자인 백성은 물론 자신 속의 악업을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적법하게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들을 통치할 권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상적인 통치자란 다수의 타인은 물론 자신의 행복을 위해 통치하는 사람입니다.”

“붓다이시여, 저는 태자였을 때, 다섯 가지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 관정을 받아 국왕이 되는 것, 둘째 나의 영토에 성자인 정등각자(正等覺者)가 오는 것, 셋째 그 스승을 내가 보시하는 것, 넷째 스승으로부터 진리의 가르침을 듣는 것, 다섯째 스승이 설한 가르침을 깨닫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제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과 비구들에게 귀의합니다. 저를 재가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부디 훌륭한 제자 몇 분을 여기 남게 하시어 마가다 사람들과 제가 항상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제가 대나무 동산을 승가에 헌정하겠습니다.”

이날 붓다와 빔비사라 왕의 대화를 지켜본 12만 명의 대중들 가운데 1만여 명이 붓다에 귀의했다. 이날의 광경은 황색 가사를 걸친 수행자와 흰 옷을 입은 라즈기르의 백성들이 묘한 대조를 이뤘는데, 이에 빗대어 ‘마치 새하얀 천에 맑고 깨끗한 (황색) 물감이 번져 물들 듯 진리에 물이 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런 만남이 있은 후 붓다는 마가다 국의 수도 라즈기르에서 빔비사라 왕과 그의 아들 아자타샤트루(아사세 왕)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연을 맺었다. 훗날 두 왕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붓다와 붓다를 따르는 비구들은 불편없이 수행에 몰두할 수 있었고, 불교가 적극적으로 보호 육성되었다.

제티안 만남 이후 고정적인 수행처, 즉 베누바나 비하르(Venubana Vihar)가 빔비사라 왕의 지원과 제티안 법석에 참석했던 카란다라는 부호의 베누바나 동산 기증으로 지어졌으니 다름 아닌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죽림정사는 불교 최초의 사원으로 도시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오고 가는 데에 편리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가기 쉽되, 사람이 몰리지 않아 낮은 조용하고 밤은 소음이 없으며, 인적이 끊어지고 사람을 떠나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곳이 좋다는 붓다의 말에 따라 그 조건에 가장 적합한 곳, 베누 숲에 세워졌다. 붓다는 이곳에서 머물며 여러 차례 안거를 했고 많은 경전을 설했다.

나란다 대학을 돌아본 우리 순례 일행이 라즈기르의 죽림정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 경. 절터에 들어서자 대나무 숲이 일행을 도열하듯 반기고 있다. 한국의 대나무와는 다르게 수십 개의 대나무가 한 곳에 뭉쳐서 군데군데 포기 형태로 서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대나무 숲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이곳의 이름을 죽림정사로 정한 이유를 알려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승원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이렇다할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고 모슬렘의 무덤들이 남아 있다. 초입의 대나무 숲을 지나 조금 걸어들어 가면 꽤 커다란 카란다 연못이 나오는데, 지금은 일본이 공사비를 지원해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일본식 불상이 서 있는 것도 일본이 이곳을 개발하는데 역할을 한 징표인 셈이다. 일본인들의 불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이곳에서도 절감하게 된다.

죽림정사는 붓다가 그의 수제자였던 사리풋트라와 목갈라야나를 만난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라즈기르에서 250명의 제자를 이끌고 있던, 6사외도 중의 한 사람인 산자야의 제자였다. 어느 날 사리풋트라는 붓다의 제자 아쉬바짓(사르나트에서 귀의한 최초 5비구 중의 하나)이 단정하고 위의 있게 탁발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가 속한 곳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아쉬바짓에게 다가가 그의 스승이 누구이며 그 가르침은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이미 아라한의 지위에 올랐던 아쉬바짓은 자신의 스승이 붓다이고 아직 붓다의 제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가르침을 요령있게 전할 수 없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사리풋트라는 설사 불완전하더라도 그 내용을 듣고 싶다며 계속해서 졸랐다. 이에 아쉬바짓은 다음의 게송으로 사리풋트라의 질문에 답했다.

모든 법은 인연 따라 생기고
모든 법은 인연 따라 사라진다.
만일 누가 있어 이 법을 깨달으면
그는 곧 참된 도를 얻은 사람이라 말하리라.

게송을 들은 사리풋트라는 곧 혜안을 얻었다. 그는 그 기쁨을 동료이자 도반이었던 목갈라야나에게 설명해 감복을 시키고는 250명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붓다를 찾아가 귀의했다. 이 광경을 본 산자야는 분을 참지 못해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들 250 비구의 귀의는 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로 인하여 우루벨라에서 귀의한 카샤파 형제들의 무리 1000명과 합해 1250 대중이라는 승가의 기본적 숫자가 완결됐기 때문이다. 훗날 코살라국 쉬라바스티(사위성)에 기원정사를 지어 붓다에게 헌납한 수닷타 장자를 만난 곳도 이곳으로 죽림정사는 붓다의 일생에서 많은 부분을 함께 한 성지 중의 성지인 것이다.

<사진설명>죽림정사 터에 남아 있는 카란다 호수. 일본에서 재원을 대 정비했다.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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