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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이한상 거사 (1917년∼1984년)

기자명 권오영

불교 현대화 주도한 유마


1984년 8월 23일 입적
삼보회 설립 인재양성
64년「대한불교」인수



덕산 이한상 거사는 60∼70년대를 거치는 동안 재가불자로서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견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64년 삼보회와 삼보장학회를 설립해 한국불교를 이끌 인재 양성에 누구보다 앞장섰으며 재가불자들의 올바른 신행 활동 정립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또 자금난에 어려움을 겪던 「대한불교신문」을 인수해 불교언론 발전의 초석을 다졌으며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상임부회장으로 선출돼 한국불교의 세계화에도 앞장섰다.


덕산 이한상 거사가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괄목할 만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였던 풍전산업주식회사와 대한전척공사의 설립해 기업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덕사 거사는 재가불교 운동을 강조하던 숭산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다.

숭산 스님의 지도로 참선 수행에 전념하던 덕산 거사는 63년 숭산 스님이 선을 이념으로 ‘직지인심 견성성불’하고 완전 무후한 인격을 구현한다는 이념으로 설립한 달마회 초대회장을 맡게된다. 덕산 거사는 이 때부터 침체된 한국불교를 재건하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당시 이렇다할 재가자들의 신행활동이 없던 시절 덕산 거사는 재가자로서 불교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했다. 64년 청담, 성철 스님과 백성욱, 김동화, 이종익 등 석학들의 공동 발원으로 삼보장학회를 설립한 이후 그는 재가불자들이 불교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삼보학회, 삼보불교대학, 삼보선원 등을 잇따라 설립했다.

그가 더욱 불교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64년 현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를 인수하면서부터다. 「대한불교」가 조계종 기관지임에도 재정난에 부딪쳐 종단이 발행하지 못하자 종단은 덕산 거사에게 인수해줄 것을 요청했다. 숭산 스님의 거듭된 권유로 할 수 없이 신문을 맡게 된 그러나 덕산 거사는 신문에 대한 편집권과 인사권의 보장을 인수 조건으로 종단에 요구했다. 대중매체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덕산 거사는 「대한불교」가 종단의 기관지 역할보다는 불자 대중매체로서 포교와 불교문화를 알리는데 큰 중점을 두기 위해서였다.

이후 66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재, 광동학원 이사장, 68년 동국학원 감사, 69년 대한불교삼보법회 초대 회장 등 불교계 곳곳에서 명성을 떨치던 덕사 거사는 70년대 들면서 갑작스런 사업의 부진과 당시 정치권력과의 갈등으로 72년 국내의 모든 활동을 접고 돌연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 있으면서도 덕산 거사는 캘로포니아 삼보사를 낙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했다. 자신의 믿고 실천하는 불교를 미국 교포들에게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업인으로서 재자불교운동에 새로운 축을 그었던 덕산 거사는 1984년 8월 23일 향년 68세로 타향인 미국에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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