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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세간의 실학

기자명 법보신문

김 형 효(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탐진치 삼독을 모르는 불자는 없으리라. 탐심이 삼독 가운데 으뜸의 위치를 차지한다. 탐심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화가 나서 진심을 일으키고, 계속 탐심의 고집을 피우니 또 어리석은 치심을 낳는다. 저 삼독은 단적으로 이기배타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경제주의는 이기배타적인 경쟁의 원리에서 힘을 얻고 자랐다. 거기에 비하여 도덕주의는 한결 나은 것 같다. 도덕주의는 이기적인 것을 거부하고 사회적인 공동체의 공영을 우선시한다고 말하는 명분에서 경제주의보다 더 고상한 것 같다. 그래서 이른바 유식한 자들이 도덕주의에 대하여 매력을 더 느낀다. 그러나 도덕의식이 경제적 소유욕을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도덕심은 제6식인 의식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반이기적 사회성의 요청인데, 경제적 소유욕은 제6식보다 더 깊은 제7식인 말나식의 자발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상(我相)과 아애(我愛)를 버리지 못하는 중생인 한에서 도덕주의가 이기적 경제주의의 욕망을 지울 수 없다. 즉 무의식의 욕망은 도덕의식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면 경제적 소유욕은 반사회적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기심도 이미 인간의 사회성을 전제로 한 마음의 발로이다. 중생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동시에 사회적이다. 그런데 당위적 도덕주의 의식은 중생이 이기심을 교정하여 오로지 사회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도덕주의는 소유욕과 무관한가? 아닌 것 같다. 그 도덕심은 이기심의 소유욕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길들이려는 명분적이고 당위적인 소유욕에 집착함으로써 이기심에 대하여 화를 낸다. 그 화는 대단히 정의롭고 올바른 것 같다. 그래서 화를 발산하려고 고집한다. 이것이 어리석음이다. 도덕주의적 주장은 늘 스스로 반이기적이기에 옳고 의롭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세상을 도덕주의적 이상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는다. 그러나 세상은 마음의 상분(相分)이기에 마음의 견분(見分)을 바꾸지 않는 한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경제적 소유욕은 무의식적 이기심에 의한 유위적 지배욕이지만, 명분에 의한 이상은 도덕의식에 의한 당위적 지배욕이다. 둘 다 이 세상을 능위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소유욕에서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의 무위법을 다시 생각한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무위법이 게으른 자의 사유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의 현실도피적 구실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불교의 무위법은 이제 이기적 경제주의와 반이기적 도덕주의를 넘어서 세간을 근본적으로 제도하는 사회적 실학사상임을 알아야 하겠다. 무의식의 마음에는 소유의 탐욕과 존재의 요구라는 두개의 욕망이 있다. 즉 이기배타적 소유욕과 자리이타적 원력이 그것이다. 이 원력은 불성의 자발적 요구다.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 아뢰야식에는 이기적인 욕망과 자리이타적인 원력이 공존하고 있다. 이 후자가 곧 불성의 무위적 말이다. 보조국사는 중생이 지니고 있는 각종 재능인 지치(至治)산업과 공교(工巧)기예가 다 불성의 일음(一音)이라고 언명하였다. 각 재능은 동물의 무위적 본능처럼 생존의 타고난 능력이다. 이 능력을 각자가 무심과 무아로 꽃피우고 성숙시키면, 그것이 바로 보살도에 이르는 가장 손쉬운 길이 아니겠는가? 불성의 자발적 요구로서의 자리이타의 원력이 생활화되면, 거기에 경제와 도덕의 갈등이 이미 소멸되어 버린다. 자리이타의 원력은 그동안 궁합이 안 좋았던 경제와 도덕의 두 길을 다 살리는 세간의 구원으로 인식되어야 하겠다. 사람들은 저 자리이타의 자연적 무위법을 출세간적 허학(虛學)이라고 너무 오랫동안 오해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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