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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비구의 구도가 사뭇 멀게만 느껴집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내가 곧 법장비구임을 자각하는 게 수행

Q : 지난번에 석가모니불의 구도심을 인격화하여 법장비구라고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구도심은 위대한 분이니까 가능하지, 온갖 모순에 찌들어 사는 일반인들과는 사뭇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언제까지 중생으로 남아 있어야합니까?

A : 전혀 그럴 이유가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본인도 법장(法藏)이라는 자각에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공동이름은 다 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모습으로만 따진다면야 못나거나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 불리는 이름과 나이가 다르다고 해도 법장으로서의 가치만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구원되어 만나게 되니, 언제나 부처와 부처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중생이 아니라 부처님생명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기에, 이제 부처와 나는 이분법적으로 대립된 존재가 아니라, 다만 하나의 생명일 따름입니다.

나를 나무[木]라고 생각했을 때, 불[火]을 만나면 나도 불이 되어 타오릅니다. 너와 나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중생살이를 하며 못난 짓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의 속성은 태우는데 있으니까, 그 사람 또한 저절로 태우게 됩니다. 내가 불이 되고 나니까 태워야 할 중생의 찌꺼기들, 그 가당치도 않은 껍질들을 태워주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하고 있는 내가 부처요, 부처가 나로 살아가는 구도입니다. 부처와 나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법장이 바로 나라는 자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만나는 사람 모두가 법장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만 있으면 이 사람의 삶은 못난 중생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증명되어야 합니다. 나로부터 타올라야 합니다. 오랜 동안 젖어 온 중생심이 발동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냥 내버려두면 그뿐입니다. 법장비구의 원이 이미 성취되었음을,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드러내는 “나무아미타불!”을 멈추지만 않으면 됩니다.

무한 능력자인 법장으로서, 내 능력을 자각하며 “나무아미타불!”하면서 말입니다. 이제 정체가 밝혀지고 나니, 따로 구해야 될 아미타불이나 특별한 존재로서의 법장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설령 못 배웠거나, 가족 간에 문제가 있거나, 살림이 어렵다고 해도 염불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나의 참생명 자체가 법장비구이기에, 아미타불 즉 무한광명 무한생명의 삶을 성취하게 될 뿐입니다.

법우님! 한시도 잊지 맙시다. 당신의 본래 정체는 법장입니다. 그래서 염불하시는 분들의 얼굴을 보면 참으로 환하십니다. 다만 오직 “나무아미타불!” 염불로, 스스로를 태우고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되었기에 말입니다.
문사수법회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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