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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고려 철불이 많은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철의 강한 이미지로 힘 과시 선종과 연계 속 호족들 모습 담아


철의 생산이 국력을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쟁패를 거듭하던 고대 한반도. 철의 생산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철의 대량 보유는 강력한 무기의 대량 생산을 의미했고, 지배자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이기도 했다. 한반도 남부의 조금만 소국이었던 가야가 백제와 신라라는 강력한 국가 사이에서 수백 년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철의 대량 생산으로 강력한 철갑 기마병을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철은 더 이상 힘을 나타내는 상징이 될 수 없었다. 평화의 시대에 걸맞게, 철은 그저 농기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될 뿐 더 이상 강력한 힘의 상징이 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자리는 차지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금·은 같은 귀금속이었다. 화려한 금동불과 정교한 사리함 등 훌륭한 문화재들이 이 시기에 쏟아졌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철이 힘으로써의 효용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근 100년 평화의 시기를 거치고 다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자 철은 새로운 모습으로 또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바로 철불의 등장이다.

신라가 말기로 접어들고, 각 지역에서 호족들이 무력을 갖추며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구축하던 후삼국 시절, 한반도에는 금불상이나 목불상에 반란이라도 일으키듯 철불이 유행했다. ‘무쇠’라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재료가 불상을 만드는데 이용된 것은 당시로는 파격이라 할 수 있다. 국보 63호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98호 충주철불좌상, 보물 332호 광주출토철불, 보물41호 실상사 철제여래좌상 등 수 많은 철불들이 이 시기에 조성됐다.

철불 제작을 주도했던 세력은 당시 지방에서 새롭게 일어난 호족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중앙정부나 주변에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을 상징하는 표상이 필요했고, 철은 차갑고 강인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때 부드럽고 온화한 정형화된 부처님보다는 무인풍의 기상과 패기, 자신감 넘치는 철불이 대량으로 조성됐다.

간송미술관 최완수씨는 “당시 철불의 조성은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다량의 철을 확보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철불의 모습은 바로 불상을 조성한 호족,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밝히고 있다. 호족들이 불상을 조성한 장소는 교종과 대립해 새롭게 일어난 선종 사찰이었다. “무지렁이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의 사상은 곧 호족들도 힘을 기르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신라말부터 조성된 철불은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에서 점차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불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철불이 일체 중생의 구원불인 법신불에서 악을 정복하는 항마촉지인으로 바뀌는 것은 남정서벌의 싸움터의 한 복판에 있던 자신의 모습을 불상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현재 철불은 멀리 북쪽 철원의 도피안사에서 한반도 끝 전남 장흥 보림사까지 전국에 걸쳐 남아있다. 어쩌면 우리는 철불을 통해 후삼국의 통일을 놓고 칼을 맞댔던 궁예, 견훤, 왕건의 얼굴을 지금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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