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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죽어가는 사람의 첫 번째 반응, 절망

기자명 법보신문

사후세계를 과학으로 증명?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첫 번째 반응은 바로 절망과 두려움이다. 먼저 절망의 경우, 말기암 환자 박씨는 어느 날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가 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호스피스 봉사자가 물어 보았다. 그가 한숨을 푸욱 쉬면서 말했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죽음은 곧 절망을 뜻하지 않는가.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모든 게 정지하고 끝나는 것인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로부터 며칠 지나서 그는 죽었다. 박씨처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해 죽고 싶지 않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례가 적지 않다.

유방암 말기인 여성이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소리쳤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데 난 이제 어쩌면 좋아? 정말 죽기 싫다.” 그녀 역시 죽으면 끝이고 절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녀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을 연장해보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 생각했고 살 수 있는 방법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갔고 물도 잘 넘어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임종하던 날도 그녀는 결코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안돼” 하고 소리치다가 숨이 멎어버렸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삶의 시간만 연장하려고만 한다. 결국 두 눈을 부릅 뜬 채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진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가족에게 안타까움만 남길 뿐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삶을 전부로 여길 만큼 영혼이 메말라 있다. 삶 이후의 삶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또는 근거 있는 신념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극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죽은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런 희망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지 않다. 삶과 죽음의 의미, 죽은 뒤 자신의 삶에 열쇠를 쥐고 있는, 반드시 필요한 단 한 가지만을 제외하고, 그렇게 많은 교과목이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너무나 안타깝다.

‘카르마의 비전’이란 말이 있다. 비슷한 카르마를 지닌 존재가 주변 세계에 대해 공유하는 일련의 지각방식이 바로 카르마의 비전이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 바로 카르마의 비전의 실례이다. 그러나 똑같은 인간이라 해도 사람마다 각자 고유한 카르마 역시 지니고 있으므로,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죽음을 볼 적에 사람들이 절망 혹은 희망 서로 크게 다르게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죽음을 절망으로 이해하는 것은 ‘각자에게 고유한 카르마의 비전’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는 점, 죽음을 밝은 희망의 근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만능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 죽음에 대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믿는다’ 고 말한다면, 너무 교만한 태도가 아닐까. 카르마의 비전에 의해 보여지는 것만 볼 뿐인 우리가 어떻게 감히 죽으면 끝이라고 단정해 말할 수 있겠는가. 손가락 하나를 세상 전체라고 보는 벌레의 소견머리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자비, 사랑, 영혼, 진리, 생명, 의미 등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 고귀한 현상이 얼마나 많은가. 붓다도 “형상이나 소리에서 나를 찾지 말라”고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바 있지 않은가.

죽으면 끝이다, 아무것도 없다,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라고 요구한다. 인간의 영혼같은 보이지 않고 측정하기 힘든 영역에 대한 접근과 이해에 있어서 과학적 연구방법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현대 과학과 의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하다. 죽으면 끝인지 혹은 끝이 아닌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하고 죽은 뒤 갑자기 새로운 현상을 겪게 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음을 절망이라고 보는 사람에게 희망이 보일 수 있겠는가. 거꾸로 죽음을 희망의 근원으로 보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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