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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가족 돈오한[br]변산반도의 진주[br]부안 월명암

기자명 법보신문
사랑하는 처자권속 빽빽이 둘러 있고
금은옥백 보배들이 산같이 쌓였어도
죽을 땐 다 버리고 외론 넋만 돌아가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을레라.

날마다 번거로이 세상사에 바쁘고
벼슬이 드높아도 인생 한 번 늙어지면
자금어대 두려찮고 염라왕이 오라시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을레라.
- 부설거사



노령산맥 서쪽 끝 변산반도 봉래산 법왕봉 중턱에 자리 잡은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2년(692) 부설거사에 의해 창건된 수행도량이다.

오늘날 선원이 있는 수많은 사찰 중 차가 다니지 못하는 유일한 도량인 탓에 이 곳을 오르려면 땀이 줄줄 흐르는 노고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호남의 3대 명승지로 손꼽히는 ‘변산반도의 진주’ 월명암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기도 한다.


용성-향봉-서옹 스님 등 주석

1시간 30분가량 걸어 올라와 굽어보는 월명암의 풍경은 가히 장관이다. 근대의 선지식 향봉 스님은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참으로 멀리해서는 안될 것은 명산의 부처님 도량이요,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닦고 정신을 기르는 이 한 가지 일이다”라며 “이곳 월명암에 와서는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와 ‘참으로 천하에 다시 볼 수 없는 진선진미의 땅이로다!’하고 거듭거듭 찬탄을 마지않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육당 최남선도 “변산은 흙으로 만든 나한 좌상의 모임”이라며 특히 해 질 무렵의 월명암을 ‘극락세계’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월명암이 그저 풍광만 좋은 곳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곳으로 여기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로 불린다.

이곳 월명암의 창건과 관련해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와 더불어 세계 3대 거사 중 한 분인 부설거사는 원래 스님이었다. 경주 불국사에서 출가한 그는 영희, 영조 두 도반과 더불어 각처를 떠돌며 수행을 했고, 이곳 변산에 이르러 10년간 도를 닦은 뒤 오대산에 가기 위해 산을 내려왔다. 길을 재촉하던 중 날이 저물고 때마침 민가가 있어 그곳에 하룻밤 머무르게 됐다. 그리고 이때 독실한 불자였던 거사 구무원의 무남독녀 딸 묘화가 부설에게 반했다. 18년간 벙어리로 살아온 묘화는 부설을 보고 말문이 트였고 “삼생연분이 있으니 부부가 되기를 원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고 윽박질렀다. 일가족이 죽음을 불사하고 결혼을 요구하니 부설은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부설거사는 등운, 월명 두 남매를 낳은 뒤 다시 이곳 변산을 찾아와 토굴을 짓고 마침내 모두 성도했으며, 딸 월명은 여기에서 수행을 해 붉은 구름을 타고 서방정토로 날아갔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월명암 사성선원 뒤편 오른쪽에는 부설거사 것이라는 오래된 부도가 남아있기도 하다.

부설거사 “8賢12법사 출현” 예언

이렇듯 월명암은 부설거사 일가족이 도를 성취한 자리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수많은 스님이 도를 깨친 도량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부설거사의 예언이라고 하여 지금까지 전해오는 말로 이곳 월명암에서 4성8현(四聖八賢)이 출현한다고 한다. 사성은 부설거사의 일가족으로 이미 나타났고, 팔현은 성암, 행암, 학명 스님 등 3현이 나와 앞으로 5현과 12법사가 더 나온다는 것이다.

<사진설명>월명암 사성선원 선방 내부.

이런 전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월명암은 창건 이후 수많은 고승들과 수행자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신라 때 의상대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이곳에 17년간 머무르며 중건한 진묵대사를 비롯해 성암, 행암, 학명, 용성, 서옹, 고암, 해안, 향봉, 원경, 능파, 월인, 탄허, 소담 스님 등 수많은 고승대덕이 수행을 하며 선객들을 제접했던 곳이기도 하다.

월명암은 그동안 지리적인 탓에 주로 스님들의 수행처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안거 때면 10여 명의 스님이 심산유곡의 면벽불이 되어 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월명암이 눈부신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지난 99년 2월 새로 주지로 부임한 천곡 스님은 부설거사를 비롯해 수많은 고승들이 주석한 ‘성지’에 걸맞은 수행도량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천곡 스님은 재가자들도 이곳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요사채, 화장실 등을 새로 지었으며, 관음전 불사도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다. 특히 부설거사가 비록 재가자였지만 승속을 떠나 모든 불교인의 존경을 받았던 만큼 이곳을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수행하는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현재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사성선원을 증축하는 동시에 많은 불자들이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인 운회당의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관음전의 외벽 불화도 심우도 대신 부설거사의 삶을 그려 넣을 계획이다.

<사진설명>월명암에서 본 일출. 최남선은 ‘변산은 흙으로 만든 나한좌상의 모임’이라고 찬탄했다.

재가자 위한 수행 공간 추진

월명암 사성선원 선원장 일우 스님은 “이 현실을 떠나서 우리가 찾아 깨달아야 할 어떤 ‘참 나’가 있고, 죽음과 상관없는, 극락세계 가서 영원히 행복 누리는 존재가 따로 있다 생각하면 안 된다”며 “여기는 모든 청정남녀들이 이번 생에서 부설거사처럼 큰 깨달음을 얻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수행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변산=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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