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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쿠시나가르 Ⅲ·끝

기자명 법보신문

아! 쿠시나가르여, 열반적정의 땅이여

<사진설명>붓다 입멸 후 화장이 이루어진 람바르 스투파. 열반당으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람바르 스투파 옆으로는 붓다가 마지막 목욕을 했던 쿠쿠다강이 흐르고 있다.

붓다의 유적을, 그의 생애를 따라 순례하는 6000리 대장정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지나온 곳마다 공히 붓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꼈던 소중했던 순간들이었다. 이제 이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쿠시나가르의 붓다 유적지 앞에 나는 서 있다. 막상 붓다 성지 순례를 마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있음을 느낀다. 서운함이나 아쉬움과는 다른 착잡함, 애틋함, 그리고 일종의 허탈감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심경이라고나 할까.

아무려나, 이제 붓다가 입멸한 자리에 세워진 열반당(Nirvana Mandir)과 붓다의 다비식이 행해진 람바르 스투파(Rambar Stupa)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이 두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쿠시나가르를 대표하는 붓다의 유적이다. 이곳엔 오늘날에도 전세계로부터 수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참배를 올리고 있다. 붓다가 대열반에 들고, 그 법구를 화장한 곳이니, 불제자들 입장에서는 이곳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곳도 없을 것이리라.

붓다가 입멸한 자리에 세워진 사원 열반당 안에는 길이 6.2미터에 달하는 열반상이 있다. 옆으로 누운 채 잠자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붓다의 와상과 스승의 입멸을 슬퍼하며 오열하는 제자들의 조각이 대조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 열반상은 5세기 경 굽타왕조 때에 마투라에서 만들어 옮겨온 것이다. ‘하리발마’라는 이름의 스님이 기부했고 ‘딘’이라는 이름의 조각가가 적사암으로 조성했다.

열반당 특유의 장중함, 붓다의 열반상 앞에 앉아서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각국 불자들의 기원으로 인해 열반당 안의 엄숙함은 도를 더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붓다였기에 불제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붓다를 만난 듯 하염없이 일어설 줄 모른다. 붓다의 몸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붓다의 발바닥에 새겨진 연꽃문양을 만진 후 그 손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무엇인가 간절하게 기원을 올리는 이도 있다. 저마다 표정은 숙연하지만, 그렇다고 그 숙연함에 주눅든 이는 없어 보인다. 이런 광경은 아마도 불교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리라.

열반당의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약 5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사라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데, 마치 붓다가 열반 당시에 누웠던 사라쌍수를 연상시킨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머물곤 한다. 열반당의 주위로는 여러 가지 스투파와 승원 터가 남아 있는데, 곳곳에 여러 나라에서 온 수행자들이 좌선삼매에 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설명>붓다가 입멸한 자리에 세워진 열반당 안에 모셔진 열반상.

붓다는 안간힘을 다해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설했다.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간곡한 당부라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제자들이여, 내가 가고 나면 그대들은 스승의 가르침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가고 나면 내가 가르친 법과 제정한 계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되리라.”
잠시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은 붓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비구들이여, 모든 성향과 그 성향에 의해 결정된 것은 끝내 소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완전을 성취하라!”

붓다는 이내 눈을 감고 선정에 들었다. 잠시 후 붓다는 아주 깊고 깊은 선정의 상태로 들어갔다. 붓다가 미동도 하지 않자, 아난다가 놀라 소리쳤다. “스승께서 열반에 드셨다!” 그러나 아난다와 함께 출가하여 일찍이 혜안을 얻어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아니룻다(Aniruddha)가 말했다. “아니네, 아난다여. 스승께서는 아직 최후의 열반에 드신 게 아니라 멸정에 들어 계시네.”

붓다는 모든 감각과 인식이 정지된 상태인 멸정 상태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리고는 멸정에서 나와 다시 선정에 들었다가 깨어나 가만히 두 눈을 떴다. 자신의 입적을 슬픔에 휩싸인 채 지켜보는 제자들과 초목들, 그리고 80년 동안 살아왔던 세상을 바라보던 붓다가 이내 두 눈을 살며시 다시 감았다. 입멸에 든 순간이었다.

그날 밤, 유난히도 달은 밝게 빛났고, 사라쌍수 주변엔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났다.

붓다가 반열반, 즉 완전한 적멸에 들었을 때, 천지가 크게 흔들렸다고 경전은 전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붓다의 생애에 있어 극히 중요한 때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붓다가 고요한 열반을 맞이하였을 때, 여러 천신과 상수(上首) 제자들은 열반을 슬퍼하거나 기리는 게송을 읊었다.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언제가 신명(身命)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유례가 없는 여래(如來), 유력한 정각자,
이런 스승도 역시 돌아가셨도다. <범천>

참으로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여
생멸(生滅)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생한 것은 또한 멸한다.
그것을 쉬는 것이야말로 안락이다. <제석천>

그 때 나에게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의 머리카락은 곤두섰다.
온갖 자비를 고루 갖추신
저 정각자(正覺者)가 돌아가셨을 때. <아난다>

마음이 평온해진 구제자(救濟者)는
이제는 들 휴식도 나올 휴식도 없다.
욕망이 없는 이는 적정(寂靜)에 이르러
이제 깨달은 이는 멸했다.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가지고
고통에 빠지는 일 없이
마치 불이 꺼진 것 같은
마음의 해탈을 이루었다. <아니룻다>



열반당으로부터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람바르(Rambhar) 스투파는 원래 말리족의 역대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곳이었다. 붓다 입멸 후 7일 만에 쿠시나가르의 부족인 말리족들은 이곳으로 붓다의 법구를 옮겨 전륜성왕의 격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붓다의 장례가 치러진 이 스투파는 수없이 많은 벽돌이 쌓여져 이루어진 동산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붓다가 마지막 목욕을 했던 쿠쿠다 강이 흐르고 있다.

불전에 따르면, 이곳 다비장에서 다비를 하려고 했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뒤늦게 마하 카샤파가 도착해 예배하자, 붓다는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였고, 곧이어 마하 카샤파는 관을 세 바퀴 돌면서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거룩하고 높으신 덕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내 이제 엎드려 예배합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높아 무엇에 비기 오리까.
인천의 지존께 내 이제 엎드려 예배합니다.
무상의 성자로서 적정지에 드시니,
내 이제 그 법신에 귀의합니다.


마하 카샤파가 게송을 마치자 붓다의 관아래 쌓인 향나무 더미에서 스스로 불꽃이 일어 다비를 마쳤다.

붓다의 열반 소식이 인도 전역에 알려지면서 주변에 있던 일곱 나라의 왕들이 모여들어 서로 사리를 차지하려고 다툼이 시작되었다. 말리족은 절대로 사리를 내줄 수 없다고 버텼고, 나머지 왕들은 사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라도 일으킬 태세였다. 이 때 마침 이곳에 머물러 있던 드로나(Drona, 香姓)라는 브라만이 중재에 나섰다.

“모두들 내 말을 들으시오. 우리들의 붓다는 참음의 덕을 설하셨습니다. 이 훌륭한 분의 유골의 분배에 다툼이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모두들 차분히 서로 화합하여 사이좋게 유골을 분배합시다. 널리 사방에 탑을 세웁시다. 사람들이 붓다에게 귀명할 수 있도록.”

말리족을 포함하여 8개 국가는 그의 조리있는 중재를 흔쾌히 수용했고, 비로소 공평하게 사리를 8등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붓다의 육신이 화장된 곳, 라마브하라에 나는 서 있다. 그가 육신을 버리고 법신으로 탄생한 곳, 그리고 순례의 마지막 지점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이다. 이 순간,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 지극히도 위대한, 사무치게 고마운 이에게 한없는 공경과 생명을 바친 귀의를 보내는 것 외에….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줄줄 흐를 수 있음을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알았다. 뺨에 흐르는 더운 눈물이 저 이글거리는 인도의 날씨보다 더 뜨거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순간 깨닫고 있다. 그동안 붓다의 유적을 돌며, 그의 숨결을 느끼고자 했던 순례의 순간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뇌리를 스쳐간다. 꽤 오랜 여정이었는데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허, 참, 무상이라더니! 과연 그런 것이구나.

지금 이 순간, 저 멀리 동방의 땅에서 찾아온 한 불자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잠시 명상에 잠긴 후, 일어나 108참회를 올린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음이다. 하나, 두울, 세엣…. 스무 번 남짓쯤 절을 했을까. 시나브로 ‘석가모니불’ 정근 소리가, 눈물, 거친 숨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부울….”

<사진설명>붓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델리로 떠나는 기차역 플랫폼에 선 필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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