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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육바라밀 수행자

기자명 법보신문
  • 수행
  • 입력 2005.01.04 09:00
  • 댓글 0

첫 장애인 장기기증 故 정 노 권 씨 外 5

육바라밀은 대승불교 사상의 골수이자 불교수행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육바라밀의 실천적인 의미는 퇴색하고 그저 하나의 이론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이에 법보신문에서는 각각의 바라밀에 부합해 살아가는 재가불자들을 찾아 소개한다. 편집자


[보 시]
살아서는 봉사… 죽어서는 육신 기증

첫 장애인 장기기증 故 정 노 권 씨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고 떠난 한 불자가 있다. 가난하고 소외받던 그는 소중한 목숨을 보시하고 조용히 삶을 회향했다.

경남 마산에 사는 정노권(54) 씨는 지난해 12월 8일 경남 창원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는 곧 마산삼성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상태에 빠졌다. 독신이었던 정 씨의 유일한 혈육은 사촌동생 정노숙(53) 씨. 그는 병상에 누워있는 형 정노권 씨를 바라보며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다. 평소 정노권 씨는 동생에게 “내가 떠날 때는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특히 그는 “삶을 의미있게 마무리하고 싶다”며 사후 자신의 장기를 보시해 줄 것을 정노숙 씨에게 당부해왔다. 동생 정 씨는 형님의 큰 서원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정노숙 씨는 자신의 장기를 보시해 5명의 생명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정노권 씨는 4급 지체장애인으로 힘들고 소외된 삶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봉사와 수행에 앞장서 왔다.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생활보호대상자가 모든 일에 감사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 씨가 ‘보시의 삶’을 살게 된 것은 불제자가 되면서부터다.

정 씨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찰을 찾으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진정한 불제자가 된 것은 7년 전 우연히 청화 스님의 상좌인 주경 스님으로부터 ‘염불수행’에 관한 법문을 듣고부터다. 이때부터 정 씨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정 씨에게 생활은 수행이었고, 수행이 곧 삶이 됐다. 정 씨는 언제나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며 부처님 앞에 ‘장애에 구애받지 않으며 봉사하는 삶,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서원했다.

정노권 씨는 하루를 언제나 참선으로 시작했다. 이른 새벽은 물론 오전 예불시간인 사시(巳時)가 되면 어김없이 마산 현각사를 찾아 참선에 들었다. 또 시간이 허락할 때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경 스님이 계신 강릉 성원사를 찾아 자신이 세운 서원을 스스로 점검하고 초발심을 다잡곤 했다.

불의의 사고로 삶을 회향하기 전 정노권 씨는 장애인에 대한 홀대와 편견 속에서도 작은 소득이라도 생기면 남을 먼저 생각하고, 베풀어온 불자였다.

정노권 씨는 12월 11일 대구 동산병원 장기이식센터로 옮겨졌고, 13일 새벽 1시 15분 그 아름다운 삶을 완성했다.

그가 보시한 양쪽 신장은 만성신부전으로 고생한던 환자 2명에게, 간은 만성간질환자에게 이식됐으며 양쪽 각막은 시각 장애인에게 희망으로 전달됐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인 욕]
“고난이 오히려 행복의 씨앗”

30년 병든 시어머니 봉양 민 순 남 씨

퇴행성 관절염을 앓는 시어머니, 사업 부도에 위암까지 발병한 남편, 정신질환을 앓는 여동생 등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삶을 기꺼이 바치는 인욕보살이 있다.

종손집안에 시집을 와서 30여 년 간 맏며느리 생활을 해 온 민순남(54) 씨. 천주교 신자로 수녀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던 민 씨는 21살의 나이에 친구의 소개로 불교 집안의 남편을 만나서 자연스럽게 불자가 됐다. 첫째 아이를 유산할 정도로 시집살이가 혹독했지만 사찰에서의 기도와 스님의 법문은 민 씨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용기를 심어주는 감로수가 되었다. “부처님 말씀 열 마디를 들으면 한 마디라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발원으로 사는 민 씨가 가장 마음에 새기는 단어는 ‘인욕’이다.

“인욕은 그저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이해하고 나를 버림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마음 공덕을 쌓는 일이지요.”

남편이 사업을 위해 10년 전 부산으로 내려올 때, 시어머니는 한사코 시골집 떠나기를 거부했다. 민 씨는 사업의 부도로 곡류를 파는 작은 구멍가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빠듯한 살림에도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이틀에 한번씩 부산과 언양을 오고갔다.

지난해 초에는 설상가상으로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시어머니가 아예 병상에 눕게 됐다. 민 씨는 매일 간병을 하면서 시어머니를 위해 허물어져 가는 시골집을 깨끗하게 신축, 별장 같은 집으로 변신시켰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며느리의 지극한 정성으로 시어머니도 빠른 쾌유를 보이며 8개월 만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민 씨. 그 자신도 두 번의 큰 수술경험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건강을 누구보다 감사하고 타인에게 회향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밑반찬을 싸서 시어머니가 사는 시골집으로 나서는 민 씨는 “얼굴 모르는 남남도 돕고 사는 세상인데 하물며 전생부터 인연을 맺어온 가족이야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냐”며 가족간의 불화가 잦은 요즘 세태를 경책하기도 했다.

민 씨는 요즘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동생의 간병도 도맡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조카를 맡아 키운 그는 “나를 친어머니 이상으로 따르던 조카가 건강하게 자라서 고등학교를 마치게 된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말한다. 위암과 사업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남편과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두 아들에게도 민 씨는 오히려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인욕보살, 민순남 씨. 그에게는 고난은 오히려 행복의 씨앗이었다.
부산지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지 계]
“계율은 속박이 아닌 행복의 길”

계율의 생활화 임 희 웅 씨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5계를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알차게 가꾸는 불자들이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이가 조계종 포교사단 임희웅 포교사다. 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이 계율 잘 지키는 불자라고 적극 추천할 정도로 지계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불자다.

임 포교사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예불과 108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7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쇄도하는 강의 요청에 몸과 마음을 쉴 틈이 없다. 때문에 주변에서는 그를 보고 늙을 시간도 없고 아플 시간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루걸러 하루씩 지방 출강을 하면서도 피곤한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를 아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모든 열정이 철저한 계율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덧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삭발머리는 올해로 6년째다. 이왕 부처님 제자로 살기로 했으니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도 버리고 살자는 생각에서 삭발을 시작했다. 임 포교사가 불교에 입문한지 30여 년. 섬유사업체를 경영하는 경영자였기에 술과 담배를 멀리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불교 공부를 시작하면서 계율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그의 생활을 변화시켰다. 불교와 계율을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그의 지론이 되었다.

그리고 담배와 술을 차례로 끊었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5계 중 하나인 불음주에는 금연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 산짐승도 제 몸에 해로운 것은 먹지 않는 법인데, 어찌 사람이 제 몸을 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술과 담배를 끊지 않느냐고 음주와 흡연의 허망함을 질타하고 있다.

그는 또 신구의 3업 중 구업이 가장 무서운 죄라고 단정하고 있다. 때문에 자신이 만든 기도문에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고 할 말만 하게 해달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말 한마디는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업이라는 생각에서다.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의 5계를 지키며 살아가는 임 포교사는 ‘5계만 지키면 사회법이 따로 필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 포교사는 지금 포교사단에서 8재계 실천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다. ‘계는 거룩한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며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계율은 순리와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라는 믿음에서 지계 바라밀 수행을 이어가는 임 포교사의 웃음은 시나브로 부처님 미소를 닮아가고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정 진]
“불교대중화가 내 평생의 서원”

신도운동 40년 손 안 식 씨

일생에서 청춘기를 거쳐 장년기 모두를 재가운동에 바친 불자가 있다.
손안식(66,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씨가 신도회를 중심으로 한 재가불자 운동에 불씨를 지핀지 벌써 40여 년. 손 씨에게 지난 40년은 손 씨 개인에겐 수행의 세월이요 불교계엔 재가운동 부흥의 시기였다.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손 씨는 집에서 40리 거리에 있는 도갑사에서 부처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살아 있는 것을 중히 여겨라” “쌀 한 톨도 버리지 말아라” 어렸을 적부터 손 씨의 어머니 입에서 나오는 한 말씀 한 말씀이 모두 부처님 법이었으니 불법에 의한 생활이 남들처럼 어렵지 않았다. 65년 도선사 청담 스님이 “너는 부처님 일을 해야 되겠다”고 한 말씀 때문이었는지 67년 전국신도회와 인연을 맺고 본격적으로 재가 불자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생소하게 여겼던 그 때 손씨는 신도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국적으로 신도회를 조직하기 시작해 70년에는 전국에 872개의 사찰 신도회를 결성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둬들였다. 그 후 70년대에 들어 1가정 1불 모시기 운동을 펼치는 등 가정불교, 생활불교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운동과 더불어 전국 시·도·군을 순회하며 불교사상 대법회라는 포교 강연에 나섰다. 그 당시 경찰 집계에 따르면 70년부터 74년까지 5년 동안 강연에 동원된 이만 1200만 명에 이른다.

60년대에는 신도회를 조직화하고 70년대에 불교 대중화를 이끌어 내는데 진력했다면 80년대에는 포교사 양성이라는 원력을 세우고 불교 인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전법사, 전교사, 교화사 세 부류로 나눠 각계 각층에서 불교 인재불사를 펼쳐 나갔다.

재가 불자 운동의 불씨를 지펴 활활 타오르게 했던 전국신도회. 그 단체를 이끌었던 손씨에게 94년 종단 사태는 불교 운동을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기로에 서게 했다. 신도회 해체 위기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 온 것은 불교 대중화에 일조하겠다는 그 원력 때문이었다. 손 씨는 그 원력으로 신도회를 굳건히 지켜왔고 2004년 중앙신도회와의 통합을 이끌어 내는데 주역이 되기도 했다.

손 씨는 1가정 1불 모시기 운동을 시작하던 70년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에 모신 부처님께 아침마다 108배를 올리고 하루 1000원 보시를 실천하고 있다.

승가와 재가가 둘이 아니고 하나일 때 불교는 양 날개를 단 것처럼 훨훨 더 높이 그리고 멀리 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손 씨. 자비화합의 정신으로 오늘도 정진 또 정진한다.
박주미 기자 jumi@beopbo.com



[선 정]
“수행하면 두려움-근심걱정 없어지죠”

참선수행 30년 전 근 홍 씨

30년째 참선수행을 하고 있는 청봉 전근홍(54) 씨. 그가 참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전적으로 친구 덕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했던 짝꿍의 죽음으로 ‘생각이 많아진’ 그는 죽음이 그의 화두였다. 한없는 두려움과 호기심,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 죽음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책 저 책 열심히 읽고 교회도 부지런히 다녀 보았지만 궁금증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 행여 과학에 해답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물리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과학조차 시원한 해답을 주기는커녕 죽음에 대한 신비감만 더해 줄 뿐이었다.

전 씨가 중학교 시절 친구를 만난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같이 어울리면서 그가 독실한 불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친구의 권유로 절을 처음 찾았다. 그리고 친구를 따라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며 정신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게 아닌가. 며칠 뒤 그는 또다시 어떤 도인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참선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흔쾌히 승낙한 후 찾은 곳이 보림선원이었다. 당시 보림선원에서는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가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참선을 지도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였던 백봉 거사는 50대 중반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참선을 시작했지만 용맹정진으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유마거사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허공 중에 수없는 별들이 있고 태양이니 달이니 또 산하대지가 있다 해도 이거 다 허공성이예요. 우리 몸뚱아리도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볼 줄도 들을 줄도 모릅니다. 그럼 내가 보고 듣는 것은 눈이나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법신이 보고 듣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서 허공으로서 내가 하는 것이지요.”

백봉 거사의 설법 한마디 한마디가 전 씨에게는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근심 걱정에 휩싸여 있는 내가 아닌 법신으로서의 ‘나’가 있다니…. 전 씨는 이것을 깨닫게 되면 정말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 씨가 참선수행에 전심전력을 쏟은 것도 이 때부터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철야정진에 참석했고 나중에는 숫제 도량에서 생활하며 정진했다. 특히 그해 여름 처음 시작된 ‘일주일 철야정진’은 그에게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잠을 한숨도 안자고 오직 참선만 하는 철야정진은 그에게 난생 처음 겪는 극심한 고통을 주었을 뿐 아니라 반대로 깊은 선정에 세계로 그를 이끌었다. 전 씨는 스승 백봉 거사의 가르침대로 자신이 아침에 눈을 떠서 잘 때까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몸뚱이로서의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법신이 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그는 『벽암록』의 ‘좌일주칠(坐一走七)’이라는 말처럼 재가자로서는 정기적인 좌선이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는 신념으로 30년째 주말철야정진은 물론 한 해 두 번 있는 ‘일주일 철야정진’에도 꼬박꼬박 참석해 정진하고 있다.

전 씨는 “정진을 하면 할수록 희노애락의 감정과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며 “수행은 나와 남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



[지 혜]
“지혜 나누면 나와 남이 행복합니다”

부처님 지혜 알리는 손 기 원 씨

보통 반야의 지혜는 세상의 높고 낮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혜와는 달리 분별이 없는 지혜라고 일컬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돈을 벌고,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이 욕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활용해야 하는 것은 붓다의 지혜가 아닌 중생들의 분별의 지혜라고 많은 이들은 믿고 있다. 하지만 그 분별의 지혜를 넘어선 무분별의 지혜 즉 붓다의 지혜만이 이 시대에 성공할 수 있는 키워드라고 주장하는 불자가 있다.

지혜경영연구소 대표 손기원 씨. 그는 “스스로의 경영에 있어서,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 나아가 국가의 경영에 있어서 성공하려면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모두가 하나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공(CEO)이 돼야한다”고 주장한다.

손 대표는 작년 7월 회계법인의 대표를 그만두고 지혜경영연구소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17년간 해온 회계사라는 직업이 한참 꽃을 피우는 시기였다. “불법을 통해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이상 인생의 후반부를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손 대표는 매일매일을 수행으로 시작해 수행으로 일과를 끝낸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더라도 자신의 호흡과 세상간의 대화를 통해 늘 깨어있는 정신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손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한 개인이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면 개인적인 영달을 이룩할 수 있듯이, 기업이 세상과 기업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면 그 기업은 성공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나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를 제대로 인식함으로써 세상을 직시하는 ‘지혜경영’ 전략으로 각 기업 CEO, 신입사원, 주부들을 대상으로 경영철학을 전하는 한편 기업 통합 컨설팅 자문 등을 담당하고 있다.

“한 기업을 통해 고객은 제품의 만족을 추구하고, 조직의 구성원들은 투명한 경영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원하고, 일반 대중들은 나눔의 가치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업주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기업이 세상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가져야 하는 자세를 생각하게 되면 그 때서야 진정으로 성공하는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지혜경영 철학은 많은 세계적인 기업을 통해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일수록 개인의 부를 세상과 함께 나누려고 애를 많이 쓴다. 이러한 ‘나눔의 경영’은 이들의 성공요건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한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서도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인욕바라밀의 완성을 통해서야만 6바라밀 즉 반야바라밀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 손 대표의 설명이다.

한 개인의 지혜는 결코 한 개인의 지혜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그물 속에 수없이 얽혀있는 인드라망 속에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밝음을 통해 주위 사람들을 비추고, 그 빛은 세상의 무명을 걷어내 결국 불국토를 비추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경영을 주장하는 손기원 대표의 믿음이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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