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정은 일시적 자기 방어일 뿐
죽음이 임박했다는 통보를 받고서 보이는 첫 반응은 “뭐라구요? 나는 아니야. 뭔가 잘못되었을 거예요.”라는 대답이었다. 병세를 진단받은 환자도 의사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어도 죽을병이라고 판단을 내린 환자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어느 환자는 자신의 부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의식’을 치른다. 그는 자신의 병력기록차트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다며 다른 사람의 카드에 자신의 이름이 씌여졌음이 분명하니까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소용없자 병원에서 퇴원하겠다고 나선다. 다른 병원을 찾아가면 자기의 병을 보다 잘 검사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이 환자는 여러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부정, 혹은 부분적인 거부는 죽어가는 환자 대부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잠시 생각했다가도 즉각 떨쳐버린다. 뜻밖의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한다. 죽음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어수단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분적 순응’으로 대치되기 마련이지만, 끝까지 죽음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죽음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 곁에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원망하는 환자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쉽다. 환자가 한두 번 만나서는 말을 꺼내기 싫어할 경우, 몇 번이라도 찾아간다면 환자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자기를 언제든 도와주기 위해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일 것이다. 호스피스 봉사자가 어느 환자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돌아누워 있을 뿐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호스피스 봉사자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돌아왔다. 네 번째 찾아가자 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면서 엉엉 울었다.
세속적인 성취에만 몰두한 사람은 죽음에 대한 부정, 혹은 거부감이 심하다.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만을 지향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죽음은 전혀 준비하지도 못하고 평소에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면,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것을 세속적인 관점에서 돈이나 물질로만 바라보는 사고방식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죽음은 그런 식의 접근을 결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정하면 할수록 고통의 무게는 더 한층 커지기 마련이다.
인간존재는 두 다리로 땅을 밟고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어있다. 땅은 현실을 상징하고 하늘은 진리를 상징한다. 또 우리의 눈과 귀는 각각 두 개씩이다. 한쪽으로는 세상일, 다른 한쪽으로는 진리를 보고 그 소리를 들으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체구조상 현실과 진리 사이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어느 한 쪽도 소홀함이 없이 중도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세상일에만 몰두하는 삶의 방식은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편안히 죽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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