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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미얀마의 佛心은 빛나고 있다

기자명 법보신문

① 연재에 들어가며

<사진설명>세계문화유산인 미얀마 바간의 전경. 사방 40km의 땅에 2700여개의 탑이 산재해 있는 거대한 탑밭이다.

“내가 그대의 구루(큰 스승, 참 된 스승)가 되기를 원한다면 구루로서의 나의 인격을 숭앙하지 말지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인격에는 제각기 단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마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안에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결점에 신경을 쓰는 한 우리는 그들 속에서 빛나는 다양한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학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책 가운데 『구루의 땅』이 있다. 볼리비아 태생으로 스리랑카와 티베트로 건너가 스님이 된 독특한 이력의 라마 아나가리카 고빈다가 직접 자신의 삶을 서술한 책으로 중국의 침탈로 풍전등화 위기에 있던 1930∼40년대 티베트의 암울한 시대를 그의 스승의 이야기와 함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풀어 낸 책이다. 라마 아나가리카 고빈다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 한점을 봐도 스승의 인자함과 믿음이 떠오른다”고 회고할 만큼 스승을 마음으로부터 깊이 존경했다. 위 내용은 그가 티베트의 오래된 승원에서 스승을 만나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을 때 스승이 그에게 설한 내용이다.

깨달음의 빛이 현자의 입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어떤 감동을 주는지 혀끝에 아릿하게 묻어나는 신 맛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언어 속에 지혜가 담겨 있을 때 맑은 파장으로 사방에 퍼져 온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구루의 뜻은 이런 것들이었으리라. “외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사람이건, 사물이건 판단하지 말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불성이 내재돼 있음을 잊지 말라”

한편으로는 몸을 지닌 채 부처님, 혹은 아라한이 되는 유여열반과 현세의 몸이 소멸한 후 사후에 주어지는 무여열반 혹은 반열반(parinirvana)의 차이를 명징하게 밝힌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속의 구루는 라마 아나가리카 고빈다와 아주 짧은 기간을 함께 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실망감을 안겨준 적이 없었다. 스승의 삶은 아름답고 투명했으며 평온했다. 그리고 자비로웠다. 그래서 지금도 구루가 다시 환생불로 몸을 나퉈 티베트 어디에선가 깨달음의 빛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있을 것 같은 여운에 때때로 사로잡히곤 한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기억 저편 아득한 곳에 묻혀있던 구루의 지혜가 되살아 난 것은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서였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는 지난해 10월 30일, 14박 15일의 일정으로 미얀마의 불교 유적지를 순례했다. 미얀마 불교는 화려함과 정교함,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웅장함으로 인간이 가진 언어가 느낌을 표현하기에 얼마나 부족한 도구인지를 실감케 했다.

미얀마는 국토 자체가 거대한 탑(塔)의 밭이었다. 번잡한 도시에서 한적한 시골, 험한 산 속, 깊은 동굴까지 탑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심지어 물로 가득 찬 호수 위에서도 거대한 탑군들은 예외없이 나타나 경탄을 자아냈다.

탑의 크기는 또 어떤가? 에메랄드, 사파이어, 엄청난 보석으로 치장한 황금의 탑은 하나같이 100m이상을 위로 치솟아 햇빛 속에서 화려하게 빛을 뿜었다. 모양도 다양했다. 소용돌이처럼 하늘로 솟아 오른 전형적인 미얀마 형태에서 여자의 가슴, 성문, 창, 방패 모양 등 기발하고 기묘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겼다. 거대한 탑 주변에는 예외 없이 작은 탑들이 부처님을 외호하듯 솟아 있었으며, 탑과 탑 사이, 혹은 탑 속에 또 그만큼의 부처님이 잔잔히 미소를 머금은 채 중생들을 반기고 있었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 한 가운데 자리잡은 쉐다곤 대탑은 화려함으로 충만했으며, 싸카잉의 카웅무도탑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것 같은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심금을 울렸다. 사방 40km의 광활한 땅에 2700여개라는 엄청난 수의 탑이 모여 있는 바간은 그 거대함으로 사람을 질리게 했다.

<사진설명>미얀마 출가의식인 ‘신쀼’의식을 치르기 위해 꽃과 화장으로 단장을 하고 절을 찾은 어린이들.

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아름답게 치장한 회랑이 둘러쳐 있고 길고 깊은 회랑을 거쳐 올라가면 그 끝에서 탑은 부처를 품고 사람들을 반겼다. 탑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빈부, 남녀, 귀천에 관계없이 모여들어 기도하고, 잠을 자고, 쉬고, 밥 먹고, 수행했다. 그 옆에는 꽃과 과일, 먹거리와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참배객을 맞았다. 이곳에서는 어느 사람도 불행하지 않았다. 미소로 얼굴은 빛이 났으며, 맑고 선한 기운이 온 몸에서 퍼졌나오는 듯 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탑원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모든 악함과 괴로움과 슬픔을 잊은 듯 했다.

“미얀마 남자들은 결혼할 때 여자의 얼굴이나 재력을 따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또 깊은 신심은 갖고 있는지 이런 점들을 중요시 합니다. 이 곳 사람들은 그래야 선한 업(業)을 지닌 후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미얀마 순례의 길라잡이를 맡았던 부산 여여선원 서울포교당 미얀마선원 주지 산디마(36) 스님의 말에 신심이 넘칠 정도로 묻어났다.

그러나 미얀마는 한편으로는 모순으로 가득 찬 나라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인권 지도자 아웅산 수지는 같은 동족의 손에 감금돼 있고, 군부의 독재정치는 공포처럼 나라 전역에 너울대고 있다. 남한의 7배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 5000만의 인구, 석유, 루비, 옥, 티크목 등 엄청난 자원은 모두 위정자의 호주머니 속에 있고, 민초들은 그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나락을 주워 먹기에도 숨이 가쁘다.

“군인은 사람을 죽여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 군대가 강해야 나라가 부강하다” 50∼60년대 우리의 반공 포스터를 옮겨온 것 같은 살벌한 글귀들을 불심 가득한 미얀마에서 본다는 것은 차라리 악몽이다. 황금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며 하늘 높이 서 있는 탑. 그러나 그 앞에 이제 겨우 젖살을 벗은 소녀가 호수같은 눈망울의 간난 아기를 업고 조잡한 물건을 팔며 힘든 삶을 이어가는 곳이 바로 미얀마다. 아니 미얀마 불교의 거짓 없는 속살이다. 무수한 왕들이 엄청난 규모의 사원과 탑을 짓다 멸망당한 이들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화려하고 웅장한 탑과 사원 앞에서 머릿속은 항상 산란했다. 몸 안의 모든 수분을 증발시킬 듯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미얀마인들의 깊은 신심과 비참한 삶 사이의 괴리가 불교라는 이름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구의 80%가 불자인 불교 나라, 자비가 넘쳐야 할 이 곳에, 넘치는 가난과 억압은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하지만 미얀마 여정에 탑과 사원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땅을 발 딛고 살아가는 무수한 민초들이 있었다. 이들은 삶은 소박했지만 살아있는 경전이었다. 생일, 결혼기념일, 명절 등 기념일마다 병원과 양로원, 보육원을 돌며 보시를 하고 새벽마다 탁발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세상의 경외와 경건함을 모두 모은 듯 사원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 불상이었다. “가난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 오면 좋은 나라가 돼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정 내내 가이드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삐에소우(40)의 어눌한 한국말에 불현듯 구루의 가르침이 스쳐 지나간 것도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순 속에서 허덕이던 뇌도 잠시 작동을 멈춘 듯 평온해졌다. 그렇다.

<사진설명>사원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

“인격을 숭앙하지 말고 그 속에 들어있는 불성을 보라”는 구루의 가르침처럼 보이는 겉모습이 미얀마의 모두는 아니리라. 거대한 탑과 사원과 군부독재 이것들은 표피에 불과할 뿐이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무상(無常)속에 있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가려는 미얀마인들의 삶의 모습이며, 이것이 미얀마의 과거며 현재며 또한 미래다. 그리고 이것이 찬란한 미얀마 불교를 피워낸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한 점 희망도 없이 하루를 힘겹게 연명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의 처지이지요”

어른들 틈에 끼어 힘겹게 노 젓는 일을 거드는 작은 아이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울먹이던 산디마 스님. 어쩌면 스님의 눈에 맺혔던 그 눈물이 미얀마 불교의 진정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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