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5 죽어가는 사람의 두 번째 반응 : 부정②

기자명 법보신문

生死一如 알아야 삶 인정

죽음에 무관심한 척하거나, 죽음을 터부시하는 것은 곧 죽음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사람들 사이에 죽음은 알게 모르게 금기가 되어있다. 우리는 죽음을 일상 대화의 주제로 올리기를 꺼린다. 죽음을 입에 올리면,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죽음을 타부시하여 아무 생각 없이 죽는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죽음을 금기시하여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쫓아내 버린다면, 죽음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삶을 바람직하게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죽음을 타부시하면 죽음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 역시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가까운 사람의 부음에 수시로 직면하게 되지만, 죽음을 자기 자신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심사숙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자기 자신의 죽음에 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부정해 함께 나눴던 삶의 시간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인간적인 대화가 가능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겠는가. 죽어 가는 당사자가 자기 자신에게 임박해 있는 죽음을 부정하는 사례도 있고, 또한 사랑하는 가족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달, 심지어 몇 년 뒤까지도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붓다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크리샤 고타미라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첫 아이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죽었다. 비탄에 빠진 그녀는 아기의 시신을 끌어안고 아기를 되살리는 약을 달라고 간청하면서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어떤 사람은 그녀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세상에서 찾고 있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붓다라고 어떤 사람이 말해 주었다.

그녀는 붓다를 찾아가 발 밑에 아기의 시신을 내려놓고 자신이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그러자 붓다가 말씀했다.

“당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시내에 들어가서 죽음을 겪지 못한 집이 있거든 그 집에서 겨자씨 하나만 가져오세요.”

그녀는 신이 나서 곧바로 시내에 들어가 처음 도착한 집에 들어가 말했더니, 이런 답을 들었다. “우리 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마침내 온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붓다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집을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기의 시체를 납골당에 가져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고 곧바로 붓다를 찾아왔다. 붓다가 물었다. “겨자씨를 가져 왔습니까.”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었습니다. 붓다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교훈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비통함으로 인해 저 하나만 죽음의 손아귀에서 신음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면 왜 또 다시 나를 찾아왔습니까.”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죽음을 넘어서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죽지 않는 것인지 가르침을 구하고자 합니다.” 이에 붓다가 말했다.

“만일 당신이 삶과 죽음의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우주에 단 한 가지 변치 않는 법칙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덧없다.’ 당신은 아기의 죽음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고통의 바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사의 끝없는 순환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 유일한 길은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고통을 겪음으로써 이제 당신은 진리를 배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통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선호한다. 그러나 죽음은 바로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통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함께 붙어있다. 삶 속에서 죽음을 배우지 못하고 기쁨과 함께 있는 고통을 읽지 못한 사람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죽을 수 없다. 삶과 함께 있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삶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정, 즉 삶을 부정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셈이므로, 그런 사람의 삶과 죽어 가는 마지막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참 안타깝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