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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미얀마의 자존심 쉐다곤 페이야 - 상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 머리카락 보관한 세계 最古의 불탑

“석존 당시에 건립된 유일한 탑” 자랑
높이만 100m…황금 60톤으로 치장


<사진설명>60m의 반인공적인 언덕을 쌓아 그 위에 세운 쉐다곤 대탑. 미얀마 불교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1년내내 참배객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아침 공양은 쌀국수와 기름에 튀긴 돼지껍질이었다. 샨족의 대표 음식이라더니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메기를 끓인 육수에 당근과 매운 고추, 고수를 넣고 국수를 곁들여 삶았는데 크게 간을 하지 않았어도 제법 맛깔스럽다. 후식으로 나온 홍차 또한 향이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롭다. 바삭바삭 튀긴 돼지 껍질도 마치 과자를 먹는 듯 달콤했다. 그러나 입으로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오래 전에 천리 밖으로 달아나 있었다. 미얀마에서의 첫 일정. 그러니까 오늘부터 미얀마 불교유적을 답사하는 역사적인 순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여기에 전날 짙은 어둠 속에서 비몽사몽간에 보았던 양곤 시내를 제대로 보겠다는 기대감까지 더해져 눈은 벌써부터 왕방울이 되어있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짐을 챙겨 택시에 올랐다.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스님들의 온화한 미소가 시나브로 잦아들자 미얀마 수도 양곤의 이국적인 풍물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차창 밖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길가로 줄지어 늘어선 시장에는 온갖 이국적인 음식과 물건이 가득 놓여 있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실랑이로 거리는 활어처럼 파닥거린다. 그 주위로 웃고 떠들고 말하며 사람들이 무수히 오가고 있다.

오랜 쇄국에 따른 물자부족 때문인지 회색으로 빛이 바란 건물들이 종종 눈에 들어왔지만 도시는 비교적 깨끗했고 도로도 반듯했다.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의 이국적 풍광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도시 곳곳에 쉼표처럼 자리 잡은 연초록 빛깔을 한 호수와 공원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야자수와 티크목 같은 열대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호화찬란한 용선(龍船)은 눈이 다 부실 지경이다. 건기의 강렬한 태양의 뜨거움이 발끝까지 아리게 했지만 외려 천리 밖 남쪽 나라의 낯선 풍경은 맛을 더할 뿐이다.

한데 양곤 시내는 어딘지 모르게 유럽을 닮아 있었다. 사진에서나 보았음직한 유럽식 건물들이 도로 주변에 늘어서 있고 간혹 첨탑 높이 십자가를 매단 고딕풍의 교회 건물도 설핏 눈에 들어왔다. 건물 사이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은 사람만 바꿔 놓는다면 그대로 유럽의 변두리 뒷골목 모습이다. 황금의 탑과 사원들이 아니라면 유럽의 어느 도시에 들어섰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양곤은 1800년께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영국 사람들이 술레 파고다를 중심으로 네모반듯한 방사형으로 꾸민 도시입니다. 건물들에 유럽풍이 잔형이 남아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지요” 시내 한복판에 당당하게 서 있는 술레 파고다가 눈에 들어오자 산디마 스님의 설명이 시작된다. “원래 미얀마의 가옥 구조는 나무로 만든 2층 집이 일반적인데 이런 까닭에 양곤 시내에서는 나무로 된 집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곤은 겉모습과 다르게 미얀마의 전통과 역사가 너무 잘 보존돼 탈인 도시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말 그대로 미얀마적이다. 어쩌면 미얀마 적이라기보다 시간이 정지돼 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거리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길게 땋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다나카라는 피부 보습재를 하얗게 표가 나도록 바르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팔에도 듬뿍 발라 마치 문신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도와 교류가 잦아서인지 커다란 눈망울과 가냘픈 허리,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차림새가 옛 신화 속에 나오는 여인들을 연상시킨다. 남자들은 또 어떤가. 여성과 같이 ‘론지’라는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데 바지를 입은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입에는 한결같이 붉은 물이 나오는 이상한 열매를 열심히도 씹고 있었는데, 이들이 뱉어내는 붉은 액체로 인해 도로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얼굴 생김새도 여러 종류다. 버마, 샨, 몬, 라카인, 친, 꺼인, 꺼야, 까친 등 미얀마를 구성하는 주요 종족에, 중국과 인도 사람들까지 피부색과 체형이 다른 수많은 인종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게다가 거리에는 또 어찌나 스님들이 많은지. 길게 줄을 지어 탁발을 나서는 붉은 가사의 스님들, 공양물을 이고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틸라신(사미니), 발우를 들고 불사를 모연하는 어린 동자승까지…. 도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사원이었다.

일행과 여정을 함께 할 버스를 빌리기 위해 들른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에너지로 가득했다.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호기심에 찬 얼굴로 연신 곁눈질을 해댄다. 곡물을 이고 있던 젊은 아낙은 말을 붙일 기회를 잡느라 연신 주위에서 맴돌다가, 관심을 보이기 무섭게 수줍은 표정으로 물건을 보여주며 장사를 시작한다. 탁발을 나온 어린 동자승은 단 돈 1달러에 그만 입이 귀에 걸렸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한사코 피하려 드는 폼이 빛바랜 사진 속에 담긴 1960년대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버스 렌트에 대한 흥정이 끝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쉐다곤 페이야(탑)로 향한다. 이 탑은 거대한 규모와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함으로 양곤의 자랑을 넘어 미얀마 불교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양곤 시내에 들어서면 바다에 회오리가 일어 하늘로 솟은 듯한 모습의 황금 대탑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쉐다곤 대탑이다. 깜깜한 저녁, 양곤 시내 한가운데서 붉은 불꽃처럼 하늘로 치솟아 너울대는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진.위>쉐라곤 대탑안의 법당. 참배객들의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아래>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립된 양곤 시내의 뒷골목. 건물들이 유럽풍이다.


그래서였을까. 쉐다곤 대탑에 얽힌 이야기도 신화의 한 토막처럼 멋스럽다.

쉐다곤 대탑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2500년 전이다.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은 부다가야에서 선정에 드셨는데 49일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숲의 신이 마침 이곳을 지나던 두 상인에게 공양을 요청했고, 두 상인은 부처님에게 봉밀을 받쳤다. 공양을 받은 부처님은 이들의 뜻을 기특하게 여겨 머리카락 8발을 뽑아 주었는데, 이 머리카락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탑이 바로 쉐다곤 대탑이다. 물론 부처님께 봉밀을 바친 두 상인은 미얀마 사람이다.

말하자면 쉐다곤 대탑은 부처님 재세 시에 세워진 유일한 탑이라는 이야기다. 지하에 머리카락이 보관돼 있다고 하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이를 역사적 진실로 믿어 의심치 않는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치 부처님의 전생담 한 구절을 읽은 듯 절로 마음이 푸근해 진다.

처음부터 쉐다곤 대탑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다. 탑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한타와리 왕조의 신소부 여왕 때부터이다. 신심이 깊었던 여왕은 당시 자신의 몸무게에 해당하는 40kg의 금을 기증해, 탑의 외벽을 치장했는데, 이후 역대 왕들이 계속해서 금을 기증하고 나중에 일반 불자들까지 동참해 현재의 위용을 갖추게 됐다.

건립 당시의 불사에 대해서도 미얀마 사람들의 자랑은 대단하다. 열대지방의 기후를 갖고 있는 양곤은 6개월간 쉬지 않고 비가 내리는 우기를 겪어야 한다. 이때 지표면이 물에 잠기는 일이 다반사인데, 쉐다곤 대탑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엄청난 공사를 감행하게 된다. 1만여 평이나 되는 거대한 넓이의 지표면에 흙을 부어 60m 높이의 인공적인 언덕을 조성해 그 위에 탑을 쌓은 것이다. 당시 공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흙을 퍼 올린 자리가 그대로 호수가 돼 버렸는데, 이곳이 바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깐도지 호수다. 이렇게 완성된 쉐다곤 대탑은 그 화려함으로도 견줄 곳이 없다. 무게만도 60톤에 달하는 금판 8688개를 녹여 황금 옷을 입혔고, 탑의 꼭대기 상륜부에는 다이아몬드 5448개,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 등 각종 보석 2317개로 치장해 호화롭기 그지없다. 여기에 금종 1065개, 은종 420개가 매달려 있으니 그 아름다움을 어디에 비견하랴!

그러나 이 탑의 위대함은 거대함과 화려함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쉐다곤은 미얀마 사람들이 쌓아올린 신심의 계단이다. 그들의 깊은 불심이 세월을 더해 어느덧 하늘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양곤 시내 한 복판에서 쉐다곤 대탑을 바라보고 있다. 탑의 끝에서 하얀 햇빛의 파편들이 샹들리에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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