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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대왕암 문무왕릉 아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5.01.26 10:00
  • 댓글 0

『삼국유사 새로~』 출간

정문연 신 종 원 교수

신라인들은 정말 이차돈의 순교 이후에야 비로소 불교를 믿기 시작한 것일까? 감포 앞바다에 있는 바위는 실제로 문무왕의 능일까?

최근 『삼국유사 새로읽기(1)-기이편』을 출간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신종원 교수(신라불교사 전공)에 따르면 이는 설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한 착각에 불과하다.

신 교수는 『삼국유사』 사금갑조를 검토한 결과 이미 소지왕대부터 신라 왕실에는 불당이 마련돼 있었으며, 왕실 전속 승려가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고려시대의 각종 문헌사료와 민속자료, 구비자료 등에서도 법흥왕 공인 이전에 신라 곳곳에서 불교 신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이는 결국 훨씬 전부터 신라인들은 불교를 받아들여 신봉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또한 문무왕릉설에 관해서는 “(문무)왕이 돌아가시자 (…) 동해 입구의 큰 돌 위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바로 현재 사적 158호로 지정된 ‘문무대왕릉’과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고려 중기부터 만들어진 문무왕 위룡설(爲龍說)이 동해안의 수많은 바위 중에서도 감포 앞바다의 바위를 문무왕릉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10cm 정도 높아 대왕암이 지금처럼 드러났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도 대왕암에 대한 역사성을 의심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기존 통설들이 여과없이 수용돼온 것은 “지금까지 『삼국유사』 연구가 사실과 설화의 영역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채 잘못된 접근법으로 분석돼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신 교수의 비판이다.

“삼국유사의 위대성은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넘나들면서 고대인들의 이상과 정신을 표출했다는데 있다. 오늘의 역사학자는 단 하나의 사실도 고고학적으로나 문헌학적인 비판 과정을 충분히 거친 내용만을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 교수는 “앞으로 『삼국유사 새로읽기』 해설서 시리즈를 연이어 출간할 예정이며, 최종적으로는 삼국유사 주석서를 출간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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