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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불교를 가다]⑥ 마하시 명상센타

기자명 법보신문

수행 대중화 시대 연 세계 위파사나의 모태

<사진설명>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면 또 하나의 문을 만나게 된다. 이 문을 통과하면 기초과정을 끝내고 숲 속 수행에 들어간 사람들의 처소가 나온다.

“미얀마 불교는 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니 왜요?”
“스님들이 왜 분홍빛 승복을 입고 다니는 건가요?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무슨 수행을 한단 말인지, 원.”

차창 밖을 유심히 보던 일행의 입에서 문득 나온 말이다. 얼굴이나 형색은 분명 비구니 스님 같은데 붉은 가사 장삼 대신 분홍색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들을 보며 나 또한 적잖이 의문을 품고 있던 차였다.

“아! 저 사람들은 스님이 아니에요. 미얀마 말로 ‘틸라신’이라고 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사미니 정도 되겠네요. 미얀마에는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정식 스님이라 볼 수 없지요. 붉은색 가사 장삼을 입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질문을 받은 산디마 스님의 설명은 언제나처럼 명쾌했다. 그러나 웬걸, 순례일행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차 안에는 이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볼 멘 소리 한마디가 허공을 가른다. “부처님 가르침에 무슨 남녀 차별이 있어요. 이러니 소승불교란 소리를 듣지.”

틸라신들의 엷은 분홍빛 승복의 이면에는 미얀마 불교의 뿌리 깊은 남녀 차별 문화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옷은 마치 수행자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여성성을 강조하려는 듯 화려하고 아름답다. 앳되고 가냘픈 틸라신에게서 수행자의 풍모보다는 여성이라는 느낌을 먼저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틸라신들은 평생에 걸쳐 많은 차별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 비구와 같은 시간에 탁발을 나갈 수 없고 거주 사찰이 부족해 비구 스님의 사찰에서 잡무를 보며 수행 생활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구니계를 받을 수 없기에 정식 승려가 될 수 없다. 여기에 남성의 몸을 빌지 않고는 아라한이 될 수 없다는 남방 불교의 교리적 제약, 이에 따른 허탈감이 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가장 큰 고통이다. 해서 거리에서, 유적지에서 틸라신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뭉친 듯 답답해지곤 했다. 도대체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굳이 출가를 하고자 하는 틸라신들의 사연은 무엇이란 말인가. ‘여성이 배의 2층에 오르면 1층에 타고 있는 남자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미얀마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관념들. 이런 편견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틸라신에 대한 차별은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 안쓰럽기만 하다.

미얀마 여성들에 대한 이런 상념도 잠시. 몸은 어느덧 쉐다곤 대탑을 떠나 양곤 시내 외곽에 위치한 마하시 명상센터 한 복판을 거닐고 있다. 말로만 듣던 마하시 명상센터를 대면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모르는 이들은 쉐다곤 대탑이나 바간과 같은 명승지만 헤매다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지만 미얀마 불교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마하시 명상센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미얀마 불교의 정수가 바로 이 곳에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슬람의 메카와 같은 의미라고나 할까.

마하시 명상센터는 1949년 마하시 사야도(1904∼1982)라는 위대한 스승에 의해 설립됐다. 세계 40여개의 분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분원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심으로 수행에 매달리고 있다고 하니 세계 위파사나 수행의 모태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수세기 동안 탑과 승원을 짓는 것을 최고의 공덕으로 생각하던 미얀마 사람들. 그들이 우리의 선방이라 할 수 있는 명상센터를 짓는 것을 또 다른 공덕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마하시 스님의 영향이다. 마하시 명상센터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미얀마에만 300여 개의 명상센터가 문을 열었으니 그 변화의 폭을 짐작할 만 하다.

2만50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100여 채의 다양한 수행처로 구성된 마하시 센터는 전통과 현대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수행처다. 일주문은 탑과 같은 황금 장식을 세 개나 머리에 이고 서 있는데, 흰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이룬 흐트러짐 없는 단아한 모습이 일품이다.

투명한 햇볕을 이고 들어선 경내는 방금 비질이 끝난 산사처럼 말쑥하다. 경내 한 가운데로 곧게 뻗은 길은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가득 안은 채 텅 비어 이곳이 수행자들의 처소임을 알린다. 이 길을 따라 양쪽으로 아스라이 늘어선 건물들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화려한 현대식에서 색이 바란 미얀마 전통 가옥들로 천천히 변해가는 데,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마냥 청아하다. 여기에 반개한 눈으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걷는 경행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하시 센터의 이국적인 맛이 절정에 달한다.

고졸(古拙)한 맛이 더해가는 경내의 끝에는 작은 담이 둘러쳐진 아담한 건물이 사람들을 품듯이 맞이한다. 흰색의 벽이 주는 깔끔하고 단아한 맛이 어린아이 미소처럼 부드럽다.

웅장하거나 세월의 편린이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섬세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 건물은 마하시 스님의 행적을 모은 개인 박물관이다. 박물관 강당 안에 모셔져 있는 스님의 밀랍 모형은 아직도 살아있는 듯 자비롭고 따스한 기운이 넘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절로 숙연케 한다.

<사진설명>치열한 수행 끝 달콤한 휴식. 수행처 밖을 바라보는 스님들의 표정이 맑기만 하다.

마하시 스님은 근대 미얀마 불교의 서광(瑞光)을 연 위대한 스승이었다. 스님은 불가에서 선택받은 수행자들만이 비밀스럽게 이어오던 위파사나를 세상에 차별 없이 공개했다. 승려, 그것도 비구들의 특권이었던 위파사나를 재가자는 물론 비불교도에게도 차별 없이 개방해 버린, 사실상의 혁명가였던 셈이다. 스님은 위파사나의 핵심만을 정리한 간결한 수행법을 새롭게 창안해 근기가 낮은 우둔한 중생들을 가르쳤는데, 오늘날 ‘마하시 위파사나’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미얀마 사람들은 마하시 스님을 부처님 곁에 가까이 간 근세에 가장 위대한 선지식으로 깊이 추앙하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오니 입구에 비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의 가녀린 어깨처럼 부드러운 곡선미를 흘리며 고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부도처럼 일렬로 늘어선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보시자들 명단과 공덕을 적은 공덕비들이다. 비석뿐만이 아니다. 하얀 벽에도 어김없이 보시자 명단을 적은 기록들이 빼곡히 남아있었는데, 마치 삶 속에 체화된 듯한 미얀마 사람들의 아름다운 보시 정신. 그리고 이 공덕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스님들의 꼼꼼한 마음 씀씀이가 살들이도 묻어난다.

아름다운 경내를 돌아 나오는 길에 우연히 우 와사와 스님을 친견했다. 우 와사와 스님은 마하시 스님과 우판디타 스님의 뒤를 이어 선원을 이끌어오고 미얀마의 선지식. 100년 된 은제 불상을 쉐다곤 대탑에 보시하러 가는 길이라며 바삐 서두르는 바람에 오랜 친견은 불가능했지만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을 바라보던 따듯한 눈빛에 마음이 절로 맑아지는 느낌이다.

일주문 옆 큰 법당에는 틸라신과 여성 수행자들이 한참 법문의 희열에 젖어 있었다. 한낮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200여명이 넘는 수행자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았는데, 법문을 한 구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소리조차 고요한 것이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사진설명>법당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여성 수행자들.

“미얀마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교학적으로도 비구보다는 틸라신들이 월등하지요. 미얀마 최고 대학인 양곤대학의 입학생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70%가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합니다.”

미얀마 여성수행자들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마하시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님은 남성, 여성, 출재가, 내외국인의 구분을 두지 않고 가르침을 폈다. 그 자비로운 가르침이 오늘날 이런 아름다운 회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 마하시 명상센터야 말로 근대에 조성된 최고의 성지인 셈이다. 스님의 크신 덕화에 청량음료를 들이킨 듯 마음이 맑아진다. 바쁜 순례일정 중이지만 나는 지금 가장 느긋한 마음으로 마하시 센터를 거닐고 있다. 시나브로 서쪽으로 쏠린 태양이 긴 그림자를 경내에 드리우고 있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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