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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로카찬다 사원 [br] 10만 미얀마人 신심-염원 담은 ‘평온의 땅’

기자명 법보신문

<사진설명>로카찬다 사원의 건립은 근세 이후 미얀마 최대의 불사였다. 사진은 황금 사자상의 버티고 있는 사원의 입구.

견디기 힘든 고통도 세월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 법이다. 쓰리고 아픈 기억일수록 더욱 그렇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나, 과거의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보며 아련한 회상에 잠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는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와 민족이 이룬 역사와 문화에도 이런 현상은 예외없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불가사의로 일컬어지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중국의 만리장성, 아름다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인도 타지마할 등 힘없는 민초들의 고혈로 이루어진 흔적들이 오늘날 위대한 인류의 유산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세월의 조화는 참으로 얄궂은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하나의 법칙은 있다. 즉 불행했던 과거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풍요가 반드시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이 석양을 기웃거리는 늦은 오후 양곤 외각에 위치한 로카찬다 아베야 니바무니 사원에 도착했다. ‘로카찬다’는 팔리어로 ‘평온의 땅’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피안’ 혹은 ‘이상향’라고나 할까. 완성된 지 불과 몇 개월에 불과한 일천한 역사를 담고 있는 사찰이라 미얀마 불적 답사의 일정에 들어있는 것 자체가 조금은 의아했다. 그러나 사원 창건에 얽힌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니, 산디마 스님이 굳이 이곳을 들으려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로카찬다 사원에는 역사와 세월의 무게를 넘어서는 미얀마 사람들의 신심과 염원, 그리고 감동스런 부처님의 위신력이 알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로카찬다 사원의 건립은 지난 2002년 시작됐다. 미얀마 제 2의 도시 만달레이 인근 광산에서 거대한 크기의 백옥이 발견됐는데, 무게만 무려 1000톤이 넘는 엄청난 크기였다. 미얀마는 세계 최대의 백옥 생산지. 그러나 이같이 거대한 규모의 백옥을 찾아낸 것은 근래에 드문 일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백옥 출현의 소문은 삽시간에 미얀마 전역으로 퍼졌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를 부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 거대한 백옥은 불상을 조성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로카찬다 사원의 건립은 이렇게 시작됐다. 불상 조성에는 2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흙 속에 묻힌 백옥을 온전하게 캐내기 위해 매일 300명씩, 연인원 10만 명이 동원 돼 무려 1년 동안 산을 조금씩 파헤쳤다. 물론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무보수로 일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불상의 이운에는 뱃길이 이용됐다. 만달레이에서 대충 외형을 다듬은 불상은 미얀마의 젖줄 이라와디 강을 통해 500km가 넘는 물길을 달려 양곤으로 옮겨졌다. 강을 따라 이운된 부처님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는 15일 이상이 걸렸다. 뱃길로 불과 이틀거리에 불과하지만 지나는 마을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겠다며 잠시나마 쉬어 갈 것을 요청하는 사람들로 시일이 고무줄처럼 늘어난 것이다. 불상이 모셔진 반야용선이 지날 때마다 불자들의 간절한 신심과 염원을 담은 정재가 배를 가득 채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마음이 부처님에게 닿아서였을까? 불상이 이운되는 동안 나라 안에는 신비한 현상이 벌어졌다. 우기(雨期)임에도 불상이 이운되는 보름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온 종일 비가 내리는 미얀마의 우기(雨期)를 생각한다면 매우 신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 모든 현상이 깊은 신심과 기도 원력에 대한 부처님의 화답으로 생각하며 지금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오래된 옛날 설화에서나 있음직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목도한 미얀마 사람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에 절로 번뇌가 녹아 내렸을 듯도 싶다. 이런 연유에서 일까? 로카찬다 사원은 늦은 오후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쉐다곤 대탑에서 보았던 그 모양의 거대한 사자상이 금방이라도 금물을 뚝뚝 떨어드릴 것처럼 화려하게 서 있고 그 안으로 계단을 품은 회랑이 깊게 펼쳐져 있었다.

회랑은 웅대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창건된 사찰임을 말해주 듯 밝고 화려했다. 기둥과 벽에 칠해진 물감들은 옷깃이 스치면 금방이라도 묻을 듯 선명했다. 입구에는 붉고 파란 줄무늬의 민속의상을 입은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참배를 마치고 무리를 지어 내려온다. 저들이 샨족, 몬족, 꺼인족, 까친족 중 어디에 속한 민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옷차림새가 너무나 아름다워 이목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다. 특히 엷은 화장에 온통 분홍빛 옷과 머리띠로 치장한 어린 소녀는 너무나 고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붙잡고 있다.

<사진설명>사원의 법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미얀마 여인들.

청량한 회랑의 공기를 가슴 깊이 들어 마시며 계단 끝에 올라서니 비로소 만달레이에서 옮겨 온 신이한 불상을 품고 있는 거대한 법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법당 중앙에 모셔진 불상은 훼손을 막기 위한 거대한 유리창 안에 들어앉아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중생을 맞이한다. 마치 몸에 운무라도 드리운 듯 눈부시게 뽀얀 우유 빛 살결에 보는 이마다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무게 500톤에, 높이가 무려 11m. 이렇게 거대한 불상을 어떻게 법당 안으로 들여놓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법당 안은 불자들의 기도 열기로 가득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경건한지 숨소리 내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다. 이들의 간절함이 사무쳐서일까. 눈앞에 아스라이 펼쳐지는 기도 행렬에 취해 넋을 잃을 것만 같다.

법당 밖에는 청량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법당 앞으로 넓게 펼쳐진 경내는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고 보리수 아래 선정에 든 부처님이 법당 문을 나선 이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그 옆에는 백옥의 지장보살이 서 있는데, 자세히 보니 전형적인 한국 불상이다. 아마도 한국의 신심 깊은 어느 불자가 기증한 것이 아닌지. 어찌됐든 마치 고향 사람이라도 만난 듯 기분이 달뜬다.

사찰 너머 툭 퍼진 공간으로 눈을 돌리니 회오리 모양의 탑이 단독 가람으로 아담하게 들어서 있고, 그 뒤로 초록빛 실록이 넓게 펼쳐져 있다. 황금빛 탑과 짙푸른 초목이 일궈내는 자연의 조화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고 보니 로카찬다 사원에는 탑이 없다. 아마도 백옥 부처님을 살아있는 생불로 여겨 탑을 조성하지 않은 탓이리라. 대탑 중심의 가람배치라는 미얀마 사원의 전형에서 벗어날 만큼 로카찬다 사원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경행이라도 하듯 느릿느릿 경내를 거닐다 이윽고 회랑을 내려오던 나는 천정에 걸린 거대한 그림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췄다. 가로 길이만 족히 10m가 넘는 엄청난 크기가 사원을 참배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메시지라도 주입하듯 위압적이다.

“그림의 크기에 놀랐지요. 저 그림은 로카찬다 부처님을 모시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부처님 앞에 군복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이 사람은 바로 총리입니다. 며칠 전에 실각했지요. 그러니까 사실 이 그림은 총리의 치적을 선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진설명>사원 조성 과정을 그린 대형그림. 당시 총리의 치적을 선전하기 위한 그림으로 미얀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산디마 스님의 설명에 잠시나마 기분 좋은 고요 속을 거닐던 마음이 현실로 돌아온다. 동시에 나라 전역에 흐르고 있는 짓누르는 불안의 본질이 어렴풋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어린시절 공공기관에서 보았던 악수하는 대통령의 거대한 사진들이 스치듯 떠오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로카찬다 사원은 아름답다. 드러낸 자태도 고혹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미얀마 사람들의 깊은 신심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권력의 그림자가 어둠처럼 사원을 엄습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행했던 과거도 세월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때 이야기다. 미얀마가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날 로카찬다 사원은 진정 인류가 남긴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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