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계사 선원

기자명 법보신문

도심 한 복판서
깨달음의 꽃 피우는
선기 충만한 도량

<사진설명>화계사에는 외국인 스님들의 도량인 국제선원(사진 오른쪽)과 재가선원이 있다.

행원 스님과 고봉 스님이 마주 앉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적멸의 한 가운데서 숭산 스님의 일구가 터져 나왔다. 순간 고봉 스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고봉 스님은 환희에 찬 미소를 머금으며 숭산 스님을 안았다.

“네가 꽃을 피웠는데, 내가 왜 네 나비 노릇을 하지 못하겠느냐!”

1949년 1월 25일 고봉 스님은 행원 스님에게 법을 전하며 숭산이라는 당호를 내렸고 이 때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앞으로 3년간 묵언하라. 너는 이제 무애자유인이다. 500년 후에 다시 만나자. 너의 법이 세계에 두루 퍼질 것이다.”

한국의 선풍을 세계에 펼쳐보였던 숭산행원 스님. 스님의 선기는 아직도 이곳 화계사 도량 곳곳에 서려 있다.

화계사 재가불자들의 수행을 이끌고 있는 단체는 수선회(회장 박종환. 향림.)다. 지난 1996년 4월 창립된 수선회는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정진한다. 창립 당시에는 현 회장인 박종환 거사와 지종철 거사(무공)가 주축이 돼 7명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회원만도 300여명. 수선회의 일요참선정진법회는 다른 재가선원과는 차별을 둔 프로그램으로 정진한다. 참선 전 신묘장구대다리니 주력과 108배 참회를 한 후에야 좌선에 든다. 참선시간은 대략 50여분. 방선죽비가 내려진 후에는 곧바로 금강경 독송이 이어진다. 화두를 들 때는 화두만 들어야 한다는 기존 수행상식과는 거리가 먼듯하지만 이 같은 방법을 취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선회 회장 향림 거사 “수행을 하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불자가 너무 많다”며 “그 첫째 이유는 내가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는가 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주력과 독경 108참회는 불자들에게 친숙한 만큼 참선 초보자라 하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無)자 화두를 들며 재가불자들의 정진을 지도하고 있는 무공 거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사실 저도 참선수행 초기 좌복 위에 앉아 있으면 망상은 둘째 치고 앉아 있는 자체도 고통이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수십 번 들었습니다. 큰 발심을 통해 수행에 임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지만 우리 재가불자들은 그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에 접근해야 합니다.”

수선회 회원만 300여명

매주 일요일이 되면 약 70여명의 불자들이 정진하는데 이중 40%는 거사다. 무공 거사는 숭산 스님의 말씀 한마디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너희 스스로 수행의 길로 들어섰으니 꿋꿋이 나아가라. 간절히 화두를 들면 언제가 기연이 닿을 것이다.” 무공 거사는 수선회 불자들과 법담을 나눌 때면 꼭 이 말씀을 전한다고 한다. “저희들의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으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너희가 이렇게 화두를 놓지 않고 드는 것 자체가 화계사의 힘이요 한국불교의 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선회에서 정진하다 좀더 강도 높은 수행을 하고 싶을 때는 화계사 선우회가 매주 토요일 운용하는 철야정진 법회에 참여한다. 선우회에서 정진하는 불자들은 한마디로 참선 수행에 관한한 베테랑들이다. 수선회와 선우회 프로그램에 따라 수년간 수행을 한 불자들은 다시 다른 재가 선원으로도 향한다. 그 발길은 스님들의 만행과 유사하다. 수선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선지식을 찾아 또는 새로운 도량에서의 도반과 함께 정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길을 나선 수행인들은 때가 되면 다시 화계사로 돌아와 수선회와 선우회를 오가며 정진한다.

이에 대해 무공 거사는 “옛 스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스승(도인)과 도량, 도반 3도(三道)는 인연 따라 만난다 했습니다. 자신의 수행 증득과 점검을 위해 전국의 재가선원과 유수 산사로 길을 떠나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일입니다. 베테랑 수행인들은 자신의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가니 그리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초보자, 아니 아직 참선 수행의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는 분들입니다.”

화계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선원이 있다. 지난 1986년 숭산행원 스님의 원력에 의해 개원된 이 선원은 철저한 청규를 바탕으로 정진하는 외국인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다. 이곳에서 한국의 간화선을 공부한 스님들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로 나가 전법을 펴고 있다. 이 국제선원에서도 재가불자들을 위한 참선법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15분부터 4시 30분까지 외국인과 내국인들을 위한 참선법회에서는 초심자를 위한 참선 자세도 지도하고 있다.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가나 입방할 수 있다. 결제에는 외국인 수행인 입방만 받고 있다. 국제선원 청규는 한국 선가의 풍토에 낮선 외국인을 위해서 매우 상세한 규제가 명시돼 있다. ‘보리심의 지속’,‘마음가짐’, ‘행동’, ‘말’, ‘음식’, ‘정진’, ‘법문’에 대한 예법은 국제선원의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청규 중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을 보자.

부처님 닮아 가려는 삶 중요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 남과 논쟁하지 말고,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고 의존하는 것은 당신의 수행을 망치게 된다.”

우리 선가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어구지만 자신의 주장과 논쟁을 중시하는 미·유럽인들의 듣기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일 것이다.

수행 초심자와 베테랑 수행자, 그리고 외국인 수행자가 공존하며 한국 간화선의 열매를 하나씩 맺어가는 도량이 바로 화계사인 것이다. 화계사 주지이자 수선회 지도법사인 성광 스님은 불자들에게 수행에 임하는 제세를 놓고 이렇게 말한다.

“구경각을 향하되 깨달아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은 과감히 버려라.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것이다. 입선 죽비를 칠 때나 방선 죽비를 칠 때나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그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선종사찰의 위상을 지금까지도 올곧게 지켜나가고 있는 이곳. 도심 한복판 숲 속에 자리한 화계사 대적광전에서 가부좌를 틀어보면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도반들과 함께 청정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