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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미얀마 불교-인레 호수

기자명 법보신문

“번뇌 가둔 호수는 비취빛 파도로 울고…”

<사진설명>인레 호수는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담수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만큼은 비견할 곳이 없다.

양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미얀마 중서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인레(Inle) 호수. 미얀마 내륙으로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인레 호수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다. 햇빛에 부서지는 비취빛 물결의 풍경과 물 위의 사원, 호수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수상족 등 다양한 볼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병풍처럼 펼쳐진 푸른 산과 거울처럼 투명한 에메랄드빛 호수가 빚어내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은 태고의 흔적인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런 명성 때문일까? 인레 호수는 이방인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얀마에서도 손꼽히는 산악지대인 샨주의 험악한 산길을 끼고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교통편이 좋아져 양곤에서 인레 호수 인근 작은 도시 혜호까지 하늘길이 열려 있지만, 혜호에서 인레 호수까지 30∼40km의 먼지길을 통과해야하는 불편은 아직도 여전하다.

<사진설명>호수 곳곳에 서있는 크고 작은 탑무더기

순례 일행은 ‘용감하게도’ 고전적인, 그러니까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열린 하늘길을 마다하고 고행의 길을 선택한 셈인데, 이 길은 양곤에서 버스를 빌려 타고 15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북쪽으로 달려가야 하는 여정이다. 물론 낡은 차량과 열악한 도로, 찌는 듯한 더위를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오갔던 옛 사람들처럼 길 위에 피는 지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직접 피부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안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일행이 장도(長途)에 오른 것은 해가 미인의 눈썹처럼 아스라이 사그라질 무렵이었다. 양곤에서 인레 호수까지의 거리는 대략 300∼400km정도. 그렇지만 도로 사정을 감안한다면 체감 거리는 일만 리가 넘는 머나먼 여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얀마의 도로는 그야말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한반도의 3배나 되는 넓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도로망 하나 갖춰져 있지 않았다.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거나, 산악도로이고, 그나마 간헐적으로 만나게 되는 도로마저 흙길 위에 아스팔트를 부어 놓은 것 같은 빨래판 수준. 그러니 애당초 안락한 여행길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심사숙고 끝에 빌려온 버스도 말썽을 부리고 있으니…. 버스는 말쑥한 겉모습과는 달리 밑바닥 곳곳에 구멍이 뚫려 스며드는 먼지로 내내 숨조차 쉬기가 힘겹다. 쿠션은 아예 달구지 수준. 사정이 이러하니 에어콘이 제대로 나올리는 만무한 일이다. 저녁이라 바깥바람이 서늘할 만도 하건만 폭풍처럼 밀려드는 먼지를 피하기 위해 창문마저 꼭꼭 닫아 놓으니, 버스 안은 그야말로 목욕탕 사우나 실을 연상케 한다. 머리칼이 먼지와 땀에 젖어 이내 빗자루처럼 뻣뻣하게 일어선 것은 당연한 수순. 열악한 교통편이 미안했는지 산디마 스님과 함께 가이드를 맡고 있는 삐에소우(40)가 침묵을 깨고 한마디 거든다. “제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고속도로를 건설해 여러분을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이번만은 참아주세요” 어눌하지만 미안함을 가득 담은 한국말에 냄비처럼 끓어올라 곧 터져 버릴 것 같던 불평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어쩌면 삐에소우는 이 말을 국민의 삶은 팽개친 채 이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위정자들에게 던지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얀마의 역대 총리들의 가장 큰 공약은 고속도로 건설이라고 한다. 특히 몇 년 전에는 정부에서 실제로 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해, 국민들이 큰 기대를 품은 적도 있었다. 허나 고속도로 건설은 국토에 흉물스런 상처만 남긴 채 흉내만 내다 끝났고, 도로 건설에 배정된 엄청난 예산은 위정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 미얀마에서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각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정부 요직의 고위 관리에서 하층민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은 우리의 개념으로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정부 주최로 열린 교육장에서 새마을 관련 비디오 상영 중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모를 심는 장면이 나오자 군부 관계자들이 모두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나라의 최고 어른인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모내기에 나서는 것은 미얀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공경과 선망은 미얀마가 처한 암울한 현실에 대한 도피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 성공을 사례로 들며 군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정당화하고, 동시에 국민들에게 독재를 통해서라도 나라의 부가 창출된다면 좋겠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그래서 실제로 상당수 국민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는 서로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그럭저럭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고착화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미얀마가 이렇게라도 해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그들의 미래가 밝을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 군부독재의 폐해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저 서글플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했듯이 오늘날 미얀마 지도자들의 도덕성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앞으로 미얀마의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하는 것은 따라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불빛 한점 없는 험악한 저녁 산길을 한참을 달리던 일행 앞에 거대한 트럭의 무리가 갑자기 나타난다. 엔진이 죄다 드러날 정도의 험악한 몰골에 비해 턱없이 많은 목재를 실어 차가 마치 짓눌려 있는 듯하다.

“저것 좀 보세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랬는데, 지금도 저렀습니다. 심지도 않고 잘라가기만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전체가 민둥산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산디마 스님이 차창 밖을 보고 있는 일행들에게 안타까운 듯이 외쳤다. 이들 목재는 인근 산에서 채취한 최고급 티크 목. 헐값에 태국과 중국 등 인근 나라로 팔려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판매 대금이 고스란히 정부 관계자들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나무를 잘라냈으면 그 자리에 식목이라고 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부는 그것도 하지 않는다”며 산디마 스님은 울분을 토한다. 현 정부의 반도덕적 행태는 이렇게 미얀마의 곳곳에서 치유되지 않을 흉터를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덕분에 미얀마의 일부 지역에서는 사막화 현상이 진행되면서 국민적인 우려가 증폭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례 호수로 향하는 여정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이른 아침 도로 곁에 펼쳐진 새벽시장에서는 미얀마 사람들의 체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1700m의 고원 지대에 위치한 깔로에서 맛본 미얀마식 고졸한 쌀국수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특히 텅 빈 거리 끝에서 한 점 불꽃으로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이방인의 가슴을 이국적인 애수로 가득 채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꼬박 쉬지 않고 내 달리던 버스는 15시간이 지나서야 이윽고 목적지인 인레 호수의 북편 나옹쉐에 도착했다. 힘든 여정에 몸은 녹초가 돼 버렸고 의식은 이미 꿈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호수와 마을이 만들어 내는 호반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니 마음은 절로 햇볕을 받은 물결처럼 생기로 반짝거린다.


<사진설명>수상 가옥 위의 소녀주부.

인레 호수는 남북으로 23km, 동서로 11km에 이르는 긴 타원형의 호수다. 미얀마족의 한 갈래인 인따족이 물 위에 200여개의 작은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외발로 노를 짓는 독특한 풍속으로 유명하다. 인레 호수는 두 개의 파란 하늘이 함께 맞닿아 있었다. 물위의 하늘과 물아래 비친 하늘. 마치 세상의 모든 물을 쓸어 담은 듯 너무나 거대해 경계마저 모호했다. 햇빛은 수면 위로 은어처럼 튀어 오르고 물빛은 옥처럼 맑고 투명해, 호수 바닥의 살림살이마저 환하게 드러냈다. 그 위에 섬처럼 들어선 수상 가옥과 황금빛 찬란한 사원, 쭌묘라 불리는 떠있는 밭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여기에 통발을 들고 고기를 낚는 어부의 천진스런 모습이라니! 마치 시간마저 멈춰버린 듯 모든 것이 아늑하다. 이는 바람에 물결도 따라 일어, 물비늘 파랑이 호수를 비질하고 있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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