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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파웅더우 페이야 - 황금 부처 의지한 호수 위 삶은 화려하다

기자명 법보신문

<사진설명>망망한 인레 호수 위에 건립된 미얀마인의 귀의처 파웅더우 페이야 전경

인레 호수는 미얀마 여정에 쉼표와 같은 곳이다. 다양한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호수가 주는 낭만이 진득이 묻어있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의 파랗게 맑기만 한 호반의 아름다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름’을 저만치 물러나게 한다. 여기에 쪽빛 물결을 타고 하늘거리며 떠있는 보트의 행렬은 수채화 마냥 청아하다.
나옹쉐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본격적인 인레 호수 답사에 나섰다. 갈잎처럼 날씬한 모터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포구를 나서자 일행을 먼저 맞는 것은 쭌묘라 불리는 수중 전답이다.

밭처럼 길게 고랑을 늘어뜨리고 호수 표면을 덮고 있는 연초록의 행렬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쭌묘는 위터 히아신스라는 풀을 흙과 섞어 물위에 띄워 밭을 만들고 거기에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는 수중 경작지, 즉 물 위에 뜬 밭이다. 미얀마에만 있는 독특한 형태의 농토로 이곳에서는 토마토, 양파, 가지 등 일상에 필요한 채소는 물론 바나나와 파파야 등 열대 과일까지도 재배된다. 생산량도 많아 이렇게 생산된 먹거리들은 물 위에서 열리는 5일장을 통해 미얀마 전역으로 판매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비료에 있다. 호수를 답사하다보면 조각배가 가라앉도록 분에 넘치게 물풀을 싣고 가는 배들을 볼 수 있는데, 이 물풀이 수중 전답을 살찌우는 최적의 비료라고 한다. 자연 비료로 호수를 오염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효과도 어느 화학 비료보다 월등하다고 하니, 미얀마 사람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쭌묘는 그 규모도 엄청나다. 모터보트를 타고 족히 20∼30분을 달려야 비로소 그 끝을 볼 수 있는데, 출렁거리는 물결 위에 실려 한없이 펼쳐진 녹색의 향연에 두 눈이 푸르게 물들 것만 같다.

끝없이 펼쳐진 쭌묘의 좁은 수로를 지나면 거대한 호수가 진면을 드러낸다. 자지러지게 파란 물은 호수 끝에서 하늘과 맞닿아 한줄기 선으로 수평선을 그었고, 햇살은 물 위에서 활어처럼 파닥거린다. 이윽고 거대한 통발을 싣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와 한발로 노를 저으며 양손 가득 수초를 걷는 농부의 삶이 호수 위에서 하나로 교차되고 있다.

튀는 물살을 가르며 한참을 달리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마을의 군락. 마치 물 위에 섬이라도 돋은 듯 착각마저 일으킨다. 물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집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해 보이지만 빨래와 목욕을 하며 지나가는 배에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천진스런 모습에서 불안감이란 찾아 볼 수 없다. 요란한 보트 소리에 단잠을 깬 아낙들은 대나무 창문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 건네주는 사탕 하나에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하늘에 닿아 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는 이들의 모습에 시름은 저만치 달아나 있다.

물 위의 삶이지만 불교에 대한 이들의 지극한 신심은 여전하다. 마을마다 방금 치장을 끝낸 듯 화려한 사원이 물 위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반야용선 또한 황금빛을 발하며 한가롭게 바람을 타고 몸을 흔든다. 호수 안 수상 마을은 대략 200여 개. 그러나 호수 주변을 덮고 있는 사원과 탑군들은 1000여 곳이 넘는다고 하니, 그 깊은 신심이 갸륵하기만 하다. 사찰의 화려함이 마을의 부를 짐작하는 바로미터라니, 불교에 대한 이들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조금은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

수상 가옥들은 삶을 영위하는 주거지이지만 또한 그 자체가 거대한 공장이다. 각 마을별로 독특한 토산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혹하는데, 여기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은 종이, 은 세공품, 천, 전통 공예품 등 다양하다. 적게는 수십 년에서 많게는 수백 년 대를 계승되고 있는 이들의 가업은 인레 호수의 자부심이자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사진설명>수상 축제때마다 불상을 싣고 호수로 나서는 반야 용선. 뱃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새는 불교를 수호한다는 '가루다'

수중 마을을 벗어나 다시 망망한 호수를 달리자 물 위에 등대처럼 불쑥 솟은 황금의 새 ‘가루다(불교를 수호하는 새)’가 ‘몰록’ 모습을 드러낸다. 동시에 한가롭게 고기를 잡던 나룻배들이 일시에 시야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온갖 삶이 교차하던 호수는 갑자기 잡티 하나 없는 망망한 대해가 돼 버렸다. 알고 보니 물 위에 솟은 ‘가루다’는 부처님의 영역을 나타내는 신성한 표식. 따라서 이곳에서는 생계를 위한 고기잡이도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을 달리자 거대한 규모의 황금 사원이 일행의 시야를 가로 막는다. 인레 호수 제일의 성소 파웅더우 페이야다. 그러고 보니 ‘가루다’ 이후 펼쳐진 호수는 파웅더우의 정원이었던 셈이다. 황금의 탑을 가운데 두고 붉은 지붕들이 중첩된 파웅더우는 마치 중세시대 일본의 성을 보는 듯 웅장하다. 인레 호수를 대표하는 사원이라더니, 모습부터가 벌써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파웅더우의 역사는 일천하기 그지없다. 불과 30년쯤 되었을까. 우레와 같은 명성에 비하면 역사는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결과적으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전통미는 물론 문화재적 가치도 그리 대단한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인레 호수 최고의 성소로 추앙받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절 안에 모셔진 다섯 분의 독특한 불상 때문이다. 파웅더우는 바로 이 불상에 얽힌 신이한 이야기로 인해 인레 호수 최고의 성소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사진설명>파웅더우 법당에 모셔진 다섯 분의 부처님. 금칠한 돌처럼 보이지만 위신력은 대단하다고 한다.

이들 불상이 인레 호수에 출현한 것은 12세기 바간 왕조 무렵이다. 당시 왕이었던 알라웅씻뚜왕은 말레이 반도에서 전쟁을 통해 불상을 획득했는데 이를 인레 호수의 한 사찰에 봉안한 것이다. 3분의 부처님과 2분의 아라한으로 구성된 이들 불상은 불과 5cm 크기에 불과했지만 왕이 직접 헌상한 소중한 불상인 만큼 인레 호수 사람들의 애정도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호수의 사람들은 이때부터 매년 10월 엄청난 규모의 수상 축제를 열었다. 거대한 황금의 반야용선에 불상을 모시고 한 달 동안 수상 마을들을 돌며 잔치를 벌이는데, 이 축제에는 왕은 물론 나라의 큰 벼슬아치들이 빠짐없이 참석해, 호수를 향해 미끄러지듯이 나가는 배를 향해 삼배를 올렸다. 반야용선이 지나는 마을은 마을대로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와 총각을 뽑아 배를 맞이하게 하는데 떠날 때는 마을을 상징하는 수많은 배들이 줄을 지어 따라가기 때문에 주변은 일대 장관을 이뤘다. 축제는 수백 년을 이어져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 축제는 몇 년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1965년 축제 도중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잔치를 벌이는 도중 반야용선이 뒤집히는 바람에 불상이 모두 깊은 호수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그 일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인레 호수는 이내 깊은 슬픔에 잠겼고 사람들은 부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며 깊은 실의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놀랍게도 호수의 가장 자리에서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 마냥 5구 불상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 배가 뒤집힌 곳이 호수의 한 가운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이한 현상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읍을 했고, 미얀마 전역에서는 정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들은 불상이 출현했던 그 장소에 그대로 절을 지었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파웅더우 페이야다.

파웅더우에 배를 대고 내리기가 무섭게 금박을 파는 아낙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출렁이는 배에서 안전하게 내리기 위해 아낙들이 내미는 손을 잡는 순간 이들의 극성에 못 이겨 금박은 달러와 교환돼 일행의 손에 들려 있었다. 허나 성스러운 불상을 만난다는 기분에 이마저도 그다지 싫지만은 않다. 성스러운 불상은 법당의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불상을 친견하는 사람마다 금박을 입히는 바람에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20∼30cm가량의 동그란 모습의 황금 돌이 돼 버렸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불상은 이목구비조차 알아볼 수 없는 누런 돌에 불과했지만, 금박을 입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하다. 법당 밖 호수로 길게 늘어진 절의 그림자가 물결에 찰랑거리며 법당의 안과 밖을 기웃거리고 있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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