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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행도량 - 지리산 칠불사

기자명 법보신문

<사진설명>칠불사 아자방선원은 불가사의한 공법뿐 아니라 수많은 선지식들이 잇따라 배출되고 있는 동국제일선원이다.

담공선사 빼어난 솜씨
멀리 중국까지 알려졌고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정교한 공법 기이한 공적
엿볼 수 없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천번 만번 생각케 하네
눕지 않고 한끼 먹고 면벽하고 앉아
다 그치는 참선공부
서리발 같이 엄하네
천길 벼랑 끝에 매달린 손놓고
몸을 돌려야 하나니
중간에 아예 사량분별
하려들지 말게나
솔 바람 가을 달은
바위에 비춰 어리고
고목에 꽃이 피니
영겁 밖의 향기로다
훗날 나와 더불어 만나게 되면
임제의 선풍이 한 바탕 나타나리.

-‘아자방 주렴’ 번역문


서릿발 같은 냉철함
문수보살의 지혜로
사량의 고리 끊는다


지리산 반야봉 기슭에 자리 잡은 하동 칠불사. 쌍계사 말사인 이 도량은 절 자체가 선원이라 할만큼 선과 깊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칠불사의 연원은 한국불교가 공인된 역사를 300여 년 앞선 2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야국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의 허왕옥을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는데 이중 넷째 왕자부터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장유보옥 스님을 따라 출가했다. 이들은 가야산에서 3년간 수행하다가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더욱 열심히 정진해 수로왕 62년(103년) 음력 8월 15일 모두 성불했다. 일곱 왕자의 성불소식을 들은 수로왕은 크게 기뻐해 그곳에 큰 절을 짓고 일곱 부처가 탄생한 곳이라 하여 ‘칠불사(七佛寺)’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까닭에 칠불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이라는 북방전래설과는 또 다른 남방불교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사찰로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다.

김수로왕의 7왕자 이곳서 성불

칠불사는 예로부터 동국제일선원이라 해 금강산 마하연 선원과 더불어 남북으로 쌍벽을 이룬 한국의 대표적인 참선도량으로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머무르며 수행했던 곳이다.

고려시대 정명, 조선조의 벽송, 서산, 부휴, 백암, 무가, 인허, 월송 선사 등이 대표적이며 대은, 금담 두 율사가 이곳에서 용맹정진 끝에 서상수계(瑞相受戒)를 받아 지리산 계맥, 즉 해동계맥을 수립하기도 했다. 또 한국 다도의 중흥조인 초의선사가 1828년 이곳 아자방에서 정진하는 틈틈이 다신전을 초록하고 동다송의 기초를 정립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칠불사의 명성은 근세에도 이어져 용성, 석우, 효봉, 금오, 서암 스님 등 선지식들이 이곳에서 정진을 했다. 특히 석우 스님은 도반 상월 스님과 1933년부터 7년간 안거하면서 두문불출했고, 1947년 금오 스님을 필두로 10여 명의 납자들은 ‘공부하다 죽어도 좋다’는 서약을 쓴 뒤 45일간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 했던 일은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또 근래에도 일타 스님과 청화 스님이 아자방에서 안거했으며 지금도 수많은 납자들이 이곳칠불사를 찾아 무명의 깊은 뿌리를 잘라내고 있다.

칠불사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부침를 거듭해왔다. 임진왜란 때 크게 기운 것은 서산, 부휴 선사에 의해 중수됐으며, 1800년 무렵 보광전 약사전 등 10여 동이 화재로 완전히 불탔을 때는 금담, 대은 두 율사에 의해 복구됐다. 그러나 칠불사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순반란 사건 때 국군에 의해 아자방을 비롯한 대가람이 모두 불타버린 것이다. 그 후 30여 년간 잡초만 무성하던 이곳을 현재 칠불사 회주인 통광 스님이 20여 년간의 대불사를 일으켜 오늘날 칠불사의 모습을 갖추도록 했다.

<사진설명>아자방 내부의 모습과 멀리서 바라본 칠불사 입구.

아자방 등에서 20여명 정진

현재 칠불사에는 운상선원과 아자방선원이 있다. 옥보대(玉寶臺)라고 부르기도 하는 운상선원은 칠불사 아자방선원 측면으로 빠져나와 서북쪽으로 300미터 쯤 돌아 올라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운상선원은 33평 규모로 20여 명 정도의 스님들이 정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칠불사의 대표적인 수행공간으로는 역시 ‘아자방(亞字房)’이 손꼽힌다. 대웅전 오른편에 위치한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방으로 그 모양이 아(亞)자 같아 아자방이라 이름 붙였다. 이 온돌은 한번 불을 지피면 상하 온돌과 벽면까지 49일 동안 따뜻했다고 전하지만 82년 복원한 지금의 아자방은 그 온기가 닷새 정도 밖에 못 간다는 게 사찰 측 설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행자들의 구도의지까지도 식은 것은 물론 아니다. 불자들이나 관광객들이 유리창을 통해 그 안을 볼 수 있도록 했음에도 매 안거 때마다 대여섯 명씩 정진하고 있으며, 대부분 하루 한 끼 식사, 묵언, 눕지 않는 장좌불와 등 수행을 할 정도로 수행의 열기가 뜨겁다.

재가불자 기도처로도 유명

신라말 고승 도선국사의 『옥룡자결(玉龍子訣)』에 의하면 “하동 땅에서 북쪽으로 100리를 가면 누운 소 형상의 땅이 있는데 이곳에 집을 지으면 부유함은 중국의 석숭 못지않게 되고 자손이 번창할 것이며, 기도처로 삼으면 무수한 사람들이 득도할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래서인지 경남 지방문화재이자 세계건축사전에도 기록된 이곳 아자방은 불가사의한 공법뿐 아니라 수많은 고승들이 잇따라 배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 칠불사는 출가수행자들의 땀과 원력이 배어 있는 공간인 동시에 기도 참배객들의 도량이기도 하다. 특히 칠불사는 매월 음력 초나흘 문수재일에 정기법회를 열고 있으며 매일 문수기도법회를 마련해 선남자선녀인들의 귀의처가 되도록 하고 있다. 055)883-1869
하동=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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