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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죽어가는 사람의 일곱 번째 반응 : 희망의 사례

기자명 법보신문

‘살겠다’의지 솟자 암세포 전이 멈춰

이주명 씨에게 지난 2년간은 그의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갑자기 말기암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조금만 약했어도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폐암말기의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그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갓 결혼한 20대의 아내, 그녀의 뱃속에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스럽게 자라고 있었던 딸 하늘이 때문이었다.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닥쳐온 것은 2000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은 그는 의사로부터 폐암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앞으로 3개월 남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술과 담배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3개월 밖에 살 수 없는 말기암이라니, 의사가 오진했다고 믿고 싶었다. 더구나 젊은 나이에 홀로 남게 될 아내와 유복자가 될 아이를 생각하니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죽게 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족들이 눈에 밟혔다. 고생만 하신 어머니, 임신 중인 아내, 그리고 뱃속의 내 아이….”

가족들을 생각하는 순간 그는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맞을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고통스러웠지만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 때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환자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매일 목욕을 하고 책도 사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간호사들이 말기암환자가 무슨 맹장수술 받을 환자처럼 움직이냐고 의아해했다. 그는 아파도 가만히 누워있기보다 억지로라도 움직였다.

아내 김현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동생을 통해 남편의 암이 심각한 상태이니 아이를 낳아서 유복자로 키우지 말고 유산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아이 때문에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사 회복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얼마 살지 못하는 남편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감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는 언제나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6개월에 걸친 6차례의 항암치료와 살겠다는 의지 덕분에 암세포가 전이를 멈추고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그의 상태를 진단한 의사는 기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마침 그때 뱃속의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하늘이라고 지었다. 하늘이를 보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그의 의욕은 더욱 강해졌다. 하늘이는 그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내가 이렇게 아프다보니 아내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낳은 지 3일이 지나서야 딸아이를 볼 수 있었는데 어찌나 감격스럽고 행복하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내가 참 고마웠다. 주위에선 아이가 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하늘이가 태어날 무렵 상태가 기적적으로 좋아졌고 그 이후 암세포가 계속 줄어들었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으로 암세포는 모두 제거되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죽음만 기다리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주명 씨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는 건강을 위해 걷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뛸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2002년 5월 14일에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 완주에 성공했다. 그가 뛰는 도중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딸 하늘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나중에 딸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런 아빠의 모습을 생각해 이겨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 왔기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 “사실 암은 5년이 지나봐야 안다고 말한다. 지금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 살고 있다. 그러니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1분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보람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i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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