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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죽어가는 사람의 여덟 번째 반응 : 마음의 여유

기자명 법보신문

평정심은 삶-죽음의 질 향상시켜

죽음 앞에서 인간은 4가지로 평등한 존재이지만, 실제로 죽어 가는 마지막 모습은 너무도 다양하다. 죽음은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이므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과제는 우리 삶에서 가장 주요한 문제이다. 죽어 가는 사람의 첫 번째 반응은 절망 혹은 두려움, 두 번째 반응은 부정, 세 번째 반응은 분노, 네 번째 반응은 슬픔, 다섯 번째 반응은 삶의 마무리 혹은 화해, 여섯 번째 반응 수용, 일곱 번째 반응 희망에 이어서 여덟 번째 반응은 마음의 여유 혹은 유머이다.

사람들은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출세, 돈, 건강, 사랑은 흔히 들어보는 답변이다. 출세하면, 돈을 많이 벌면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 미국의 심리학 전문지 「사이콜로지 투데이」 최신호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특집에서 행복은 작고 평범한 일상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출세, 멋진 외모, 좋은 머리, 돈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15%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돈이 많을수록 생활이 편리해질 수는 있지만, 그에 비례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선진국의 국민들 보다, 경제적으로는 낙후된 후진국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한층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또 머리가 좋거나 명문 대학을 나온 것도, 빼어난 미모를 지닌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정심, 여유이다.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부심이 있어서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지녀 역경에 처했을 때도 충격을 덜 받는다. 평생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하는 희열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작은 만족감,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훨씬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오키나와 장수촌 사람들의 장수비법에도 소식, 규칙적인 운동과 더불어 마음의 여유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마음의 여유, 평정심의 유지는 완치 암 환자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완치 암 환자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조기발견, 둘째는 ‘암세포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의 평정심’이다. 똑같은 폐암 4기인데도 어떤 사람은 3개월 안에 죽고, 어떤 사람은 5, 6년 이상 삶을 유지한다. 암에 걸렸을 경우, 적절한 치료와 함께 요구되는 것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비록 몸 안에 암 세포가 있지만, 달래가면서 함께 공존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런 지혜는 마음의 여유로부터 유래된다. 전 서울대 병원 원장 한만청 박사는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라’고 말한다.

암환자에게 암과 함께 공존하는 지혜가 요구되듯이,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가능성과 함께 살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다. 따라서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더라도 담담히 죽을 수 있도록 충분히 연습하는 것이 현명하다. 산다는 것은 곧 죽음 연습이나 다름없으므로,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무모함 그 자체이다. 만일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태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와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면, 삶에서 두려울 게 있겠는가.

마음의 여유, 평정심은 죽음의 질뿐만 아니라 삶의 질마저도 향상시킨다. 죽음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마음의 여유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에 그런 여유가 생길 수 있을까. 다른 무엇보다도 삶과 죽음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동양학에 ‘허’(虛), 마음을 비운다는 용어가 있다. 우리는 삶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급급하다. 죽음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헤아려보지만, 제대로 수판알을 튕기지도 못한다. 그런 메마른 지식, 그런 잔머리로는 죽음의 신비를 벗겨낼 수 없다. 현대 사회가 과학의 발전을 자랑하지만, 과학적 지식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지식이나 얕은 수로 잔머리를 굴려 욕심을 채우려하기 보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는 게 훨씬 현명하다. ‘마음 비우기’는 불교 수행의 핵심이자, 노장사상의 근본원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죽음의 신비를 벗겨낼 재주가 우리에게는 없다. 하지만 ‘텅 빈 마음’에는 밝은 지혜가 생겨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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