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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장애인 포교 10년 광림사 원장 해성 스님

'이젠 말보다 손짓이 훨씬 편해요'

장애인들이 스님을 부를 때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무린다.

자신들의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혀주는 분이라는

'해님'이라는 의미이다.



세상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나가서 잘 닦인 길이 하나일 것이고 아무도 가지 않아 험난하게 버림받은 길이 그것일 게다. 대부분 사람들은 후자의 길은 '어떤 난관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어 포기해버린다. 사람들은 이러한 선택을 '세상을 살아가는 합리적인 원리'로 여기게 된다.

89년 청각 장애인에게 수화 배워

하지만 험난한 길은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하고 이 세상을 정토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 아무리 힘든 고난이 있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서울 송파구 광림사 연화복지원 해성(海成) 원장 스님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스님은 누구도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던 장애인 복지의 길을 미련스러우리만큼 고집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그러니까 꼭 10년 전 청각 장애인과의 두터운 인연이 시작됐다.

'93년 포이동에 40평 건물을 임대해 시작한 광림사에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법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허름한 도심 포교당을 찾는 신도들도 많지 않은 때라 절 살림 또한 빠듯해 가끔은 초를 살 돈도 부족했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님을 힘들게 한 것은 넉넉하지 못한 절 살림보다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와 주변인들의 냉담한 시선이었다. 스님이 청각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 보다 앞선 89년, 조계사 원심회에서 수화교육을 받으면서부터다.

'정식 수업이 끝나면 함께 수화를 배운 청각 장애인들에게 또 한번 수화를 배웠어요. 스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그들이 항상 고마웠어요.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비로소 청각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벗'이었죠. 청각 장애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였습니다.'

300여 장애인에게 운전 교육

그래서 장애인 복지를 더욱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갈수록 굳어지더라고 스님은 회상한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도 시각장애를 가졌던 아나율 존자가 있듯이 불제자의 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없습니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분이 비장애인들과 다를 뿐, 생각과 감정은 모두 동등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복지야말로 불교계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복지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왜곡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말이다. 또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장애인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매년 두 차례씩 사찰로 떠나는 '장애인 세상나들이'를 실시해오고 있으며, 컴퓨터교육이나 서예 등의 사회자활프로그램도 해오고 있다. 특히 96년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운전면허취득이 허용되자 이듬해부터 광림사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운전면허 이론교육을 시작했다. 99년에는 송파구에 장애인들이 기능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능시험장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광림사를 통해 운전면허를 취득한 청각장애인들은 300여명에 달한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운전면허는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일반운전면허학원이 청각장애인들도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별도의 시설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 않다 보니 전국의 청각장애인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광림사로 찾아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스님은 현재 청각장애인들이 운전면허를 보다 쉽게 취득하기 위해서 『야 쉽다 운전면허』책과 이론 교재 및 비디오를 제작해 전국 장애인 복지 시설에 무료로 배포해 오고 있다. 또 남성들에 비해 취업률이 현저하게 적은 여성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지난해 11월부터 꽃꽂이 반을 개설해 운영해오고 있다. 여성 장애인들의 호응이 좋아 현재는 지체 장애인들도 동참하고 있다. 또 스님은 장애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상담 프로그램도 준비중에 있다.

수화 교재 발간… 장애인 교육 지속적 실시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하며 시작한 이들이 운전면허를 취득해, 사회로 당당히 나서는 것을 볼 때 이 일을 선택한 것에 더 없이 큰 보람을 느낍니다.' 또 스님은 앞으로 10년 안에 장애인들의 문화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장애인 문화복지회관'을 건립하려는 꿈도 가지고 있다.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계단을 없애고,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문자와 수화가 있고 몸이 불편하다해서 어색한 눈길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해성 스님. 청각 장애인들이 스님을 부를 때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려 부른다. 자신들의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혀주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부쳐준 '해님'이라는 수화다. 스님은 아무도 가려하지 않은 길을 10년 동안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 길을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 스님이 다져놓은 평탄한 길을 청각 장애인들이 쉽고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해성 스님 돕는 동국대 '손짓사랑회'

법회 보조-컴퓨터 지도-수화보급 앞장



'청각 장애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모인 사람은 없어요. 그들이 쓰는 무언의 언어에서 오히려 동아리 회원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그들의 해맑고 때묻지 않은 순수함 같은 거 말이에요.'

주익수(22) 동국대 수화동아리 손짓사랑회 회장은 한사코 자신들의 활동이 봉사라는 단어로 포장되는 것을 꺼려했다.

지난 90년 8월 청각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창립한 손짓사랑회는 95년부터 매주 일요일 광림사 수화법회에 참석해 청각 장애인들의 법회 도와주는 것은 물론 법회가 끝나면 컴퓨터 교육이나 청각 장애인 자녀 교육 등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또 불교수화 용어 통일작업에도 적극동참하고 있으며, 청각 장애인을 위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순한 대학 동아리로 출발한 손짓사랑회의 청각 장애인에 대한 애정과 헌신적인 봉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92년 동국대 학생들을 위해 해마다 수화 기초반을 개설해 대학생 수화 보급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청각 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한 기금마련 사랑의 일일찻집이나 장애인 세상나들이 행사에 참여해오고 있다.

'유난히 저희 동아리는 선후배 사이가 돈독합니다. 특히 선배들이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청각장애인단체나 관련 기관에 취업해 활동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2년 동안 식지 않은 봉사활동으로 동국대 대표 봉사동아리로 자리잡았다는 손짓사랑회는 현재 회원 수만 200여명에 달한다.


글·사진=김형섭 기자
hs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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