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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현장의 생애(3)

기자명 이종철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원효, 현장 논리 한계 지적… 진의 여부 논란

인도에서 현장이 학문으로써 일가를 이룬 시기는 640년(41살) 무렵이다. 이 시기에 현장은 계현의 권유를 받아들여 나란다사에서 『섭대승론』, 『유식결택론』을 강설한다. 계현은 유식학파의 기재 호법의 맥을 잇는 직전제자이다. 그런데 당시 나란다사에는 사자광(師子光)이란 논사가 『중론』, 『백론』을 강설하고 있었다. 사자광은 중관학파 청변(淸辯)의 제자인 탓에 『유가사지론』을 비판하곤 하였다. 청변과 호법의 소위 ‘공유(空有)의 논쟁’이 현장의 인도 유학 당시 재연된 셈이다. 『중론』, 『백론』, 『유가사지론』을 모두 익힌 현장은 유식사상과 중관사상이 ‘동전의 양면’처럼 대승 공사상의 두 모습임을 이해하고 있었고, 따라서 이 논쟁이 사자광의 유식사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사자광과 논전을 되풀이했다. 논쟁은 마침내 사자광이 편견에서 벗어나 현장의 강설을 들으러 오는 것으로 끝난다. 논쟁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이 과정에서 현장은 양파의 학설을 화쟁시키기 위해서 범어로 『회종론(會宗論)』 삼천송을 지었다 한다.(『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회종론』말고도 『제악견론(制惡見論)』을 지었다고 하나 두 저서 모두 전해지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현장의 인도 유학 생활 중 하이라이트는 641년(42살) 곡녀성(曲女城)에서 거행된 무차대회이다. 이 논변대회는 당시 인도의 대제왕이었던 계일왕(戒日王)이 주관해서 개최한 것이었다. 현장은 계일왕의 요청에 따라 논주(論主)로 등장하여, 후대에 ‘진유식량(眞唯識量)’(또는 ‘唯識無境比量’)으로 회자되는 유명한 논증식을 제시하였는데 18일 동안 아무도 이를 논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리하여 현장은 대승 편에서는 ‘대승천(大乘天)’이란 영예를 안게 되며, 소승 편에서는 ‘해탈천(解脫天)’이란 존칭을 듣게 되어, 그 명성이 인도에 널리 퍼진다.(『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진유식량’에 관해서는 이후 동아시아 불교계에서도 논란거리로 대두되기 때문에 여기서 잠시 그 구체적 내용을 알아보자. “(주장) 궁극적 진리에서 보면, 세상에서 익히 알고 있는 색깔·형태는 시각과 떨어져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근거) 색깔·형태는 우리 유식사상에서 인정하고 있는 18계 가운데 첫 번째 조, 곧 눈(眼)-색깔·형태-시각 가운데 포함되는 것으로, [불안(佛眼) 등] 눈(眼)에는 포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례) 시각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이다.”(규기 『인명입정리론소』) 이 논증식의 치명적인 약점은 정반대의 주장이 설일체유부의 입장에서 제시될 수 있으며, 또한 그 주장이 논리적으로 똑같이 정당한 주장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이 약점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원효이다. 원효는 설일체유부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정반대의 논증식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주장) 궁극적 진리에서 보면, 세상에서 익히 알고 있는 색깔·형태는 시각과 떨어져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근거) 색깔·형태는 우리 부파에서 인정하고 있는 18계 가운데 첫 번째 조, 곧 눈(眼)-색깔·형태-시각 가운데 포함되는 것으로, 시각에는 포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례) 눈(眼)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이다.”(일본의 선주 『인명입정리론명등초』) 말하자면 칸트가 말한 ‘이율배반(Antinomie)’이 성립하는 셈인데, 불교 논리학은 물론 인도 논리학에서는 이와 같이 이율배반이 성립하는 논증식을 그 근거가 잘못된 것으로 보아 올바른 논증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니야야 학파에서는 이를 ‘주장과 다름없는 근거’로 보고 있으며, 불교 논리학에서는 ‘모순된 주장이 성립할 수 있는 취약한 근거(相違決定)’로 본다.

문법학과 논리학을 다 익힌 현장이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을뿐더러 이러한 엉성한 논증식을 인도의 논사들이 깨지 못했다는 기록은 더더구나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진유식량’에 관한 기록의 진실성을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종철(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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