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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만파식적 설화에 담긴 의미는

기자명 법보신문
황수영 “국난극복 위한 호국적 의미” 주장
김상현 “왕권 강화 위한 정치적 목적” 반박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은 죽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東海)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는지라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나무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이 피리를 국보로 삼았고, 효소왕(孝昭王)때 분실하였다가 우연한 기적으로 다시 찾게 된 후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고쳤다.

『삼국유사』에 수록돼 있는 이 소설 같은 만파식적 설화는 그 동안 학계에서 역사, 문학, 불교사상, 음악 등 다양한 형태로 연구돼 왔고 이에 대한 수많은 연구 결과물들이 발표돼 왔다. 그러나 이 만파식적 설화가 왜 만들어졌고, 이 설화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견이 많았다. 즉 삼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신라가 왜적의 침입을 막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호국적 성격이 강하다는 주장과 이와는 달리 지배 계층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스며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만파식적 설화에 담긴 의미를 최초로 국내학계에 제시한 동국대 황수영 박사는“만파식적 설화는 당시 신라인의 가치관 속에 내재돼 있던 삼국통일의 의지와 자신감을 담은 호국적 성격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범종 양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종정부(鍾頂部)에 단두용(單頭龍)이 원통을 매고 있는 독특한 양식의 신라 범종을 분석한 뒤 발표한 「신라범종과 만파식적 설화」라는 논문을 통해 황 박사는“신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원통이 소리를 내기 위한 음관(音管)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신라인들의 호국적 염원을 담은 만파식적”이라고 강조했다. 황 박사는 또 “신라인들이 만파식적을 범종에 조성한 것은 신적(神笛)인 만파식적을 신종(神鍾)에 함께 담아 삼국통일의 호국의지와 자신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만파식적에 담긴 의미는 국난 극복을 위한 호국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국대 김상현 교수는 「만파식적 설화의 형성과 의의」(한국사연구,1981)라는 논문을 통해 “만파식적 설화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지배계층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며 반론을 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만파식적 설화 형성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이 문무왕, 신문왕, 김유신 등의 인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대와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설화는 지배계층에 의해 형성·유포된 것임에 틀림없다”며 “이런 이유로 이 설화에는 지배계층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스며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그 정치적 목적이란 설화 속에 ‘성왕(聖王)이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린다’는 메시지에서 알 수 있듯 신문왕 즉위년에 일어났던 김흠돌의 난과 같은 무열왕권에 대한 반발을 극복하고, 전제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신문왕이 일련의 정치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유교정치이념을 통해 신라 중기 전제왕권을 강화해 나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김 교수는 만파식적 설화에 담긴 의미는 신라인들의 국난극복을 위한 호국적인 성격보다는 전제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지배계층의 정치적 목적이 강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불교 미술사학 분야와 불교 사학 분야의 권위 있는 두 학자의 팽팽한 주장과 반론은 당시 일간언론에 소개되면서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끌기도 했다. 또한 이 두 학자의 논쟁은 이후 학계에서 만파식적 설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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