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염불’ 모임 결성해 이끄는 [Br]동국역경원 박 종 린 편찬차장
‘절-염불’ 모임 결성해 이끄는 [Br]동국역경원 박 종 린 편찬차장
  • 법보신문
  • 승인 2005.10.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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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는 땀 한방울에 청정심 스며있죠

<사진설명>박종린 씨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나와 부처님이 둘이 아님을 확인하는 길이자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해 내가 부처님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대기를 모아 잡아 비틀면 물이 줄줄 흐를 듯이 습한 96년 6월의 어느 날, 동국역경원 편찬차장 박종린(50·덕암) 씨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고향 청도로 향했다.

식민지와 전쟁, 혹독한 가난 속에서 5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 지나친 고생으로 젊은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지만 몇 해 전부터 부쩍 심해진 관절염은 박 씨의 어머니를 밤낮 없는 통증으로 몰아넣었다. 박 씨는 그런 어머니에게 염불을 간곡히 권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당부대로 염불을 시작했고, 그 뒤 박 씨가 어머니를 찾을 때도 늘 염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염주마저 닳고 닳았고 입 주위에는 늘 하얀 소금기가 묻어있었다. 염불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너는 더한 일도 했는데…”라며 박 씨의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고는 했다.

매일 1000배-염불-간경

막내아들인 박 씨가 군대 가기 전 아픈 자신을 위해 남해 보리암에서 살갗이 벗겨져 피가 뭉치고 고름이 흐르는 것을 참아가며 매일 4000배씩 21일간 8만4000배나 했던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씨는 어머니 곁에 앉았다. 얼마 후 야윈 뺨 위에 번지는 맑은 미소와 함께 어머니는 마침내 편안히 눈을 감았다. 박 씨는 마치 날카롭게 벼린 칼로 가슴을 베인 듯 아프게 저미어왔다.

당시 어머니에게 염불을 권유한 건 박 씨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파랑에 쓸리는 돛단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94년 1월 불혹을 맞으며 ‘이렇게 살다가는 불자 된 고마움은커녕 사람 몸 받은 고마움도 모르고 살겠구나’하는 생각에 10년간 100만배를 목표로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대학원에서 불교를 전공했고 경전과 더불어 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불교의 핵심에는 다가가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동안 수행의 끈을 놓고 있던 박 씨에게 그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굳게 결심했건만 108배를 빼 먹기 일쑤였고 그로 인한 끊임없는 회의는 그를 절망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어머니의 임종은 그를 새롭게 발심토록 했다. 박 씨는 매일 하던 절의 횟수를 108배에서 300배로 늘였고 삼천배 철야정진도 매월하기로 다짐했다. 특히 98년 1월부터는 이전까지 했던 절의 횟수를 모두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마음이 있으면 하루 1000배도 쉽지만 마음이 없으면 하루 삼배도 어렵다는 말이 맞았다. 그럭저럭 할 때는 일년내내 힘들게 해도 7~8만 배에 불과했지만 발심을 하자 한 해 16만 배도 거뜬했다. 박 씨는 그렇게 6년을 한결같이 정진했고 2004년 2월 마침내 100만배를 회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 씨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또다시 100만배를 위해 매일 하루 천배씩으로 절 횟수를 크게 늘렸고 3000배 정진을 주말마다 계속했다. 그렇게 하자 한 해 40만배에 이르렀고 불과 2년만인 내년 2월 200만배 회향을 앞두게 됐다.

박봉에도 한 해 700만원 보시

“마음으로 모든 게 가능한 것이 부처님이라면 중생은 몸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마음을 깨달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동적(動的)인 행위를 통해 정적(靜的)인 마음을 찾아간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요즘 불교계에서는 몸을 간과한 채 그저 마음만 강조합니다. 토대는 무시하고 하늘에만 오르자는 식이지요. 수행은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 아닐까요.”

300만배까지는 숫자를 헤아리되 그 후에는 숫자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고 절수행을 계속하겠다는 박 씨. 매일 1000배에 『금강경』 8독, 『반야심경』 10독도 빠뜨리지 않는 박 씨지만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연 염불이다. 심지어 염불을 잘하기 위해 절도 하고 경전도 독송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렇기에 박 씨는 걸어갈 때도 염불을 하고, 전철에서도 염불을 하며, 밥 먹을 때,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잊지 않으려 애쓴다. 따라서 절하는 방법도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즉 입으로 크게 염불하면서 절을 하는 것이다. 절을 하면서 몸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고, 염불을 하면서 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고, 절과 염불을 오롯이 해 일념이 되도록 함으로써 마음으로 지은 업을 녹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처음 박 씨는 염불이 대단히 쉬운 수행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대단히 어려웠다. 염불은 ‘난신이행(難信易行)’이라는 말처럼 쉽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박 씨는 ‘염불은 부처님뿐 아니라 용수, 마명, 세친 보살, 원효, 감산 등 수많은 선지식들이 수승한 수행으로 인정했던 것인데 어찌 거짓일리 있는가. 다만 내가 어리석고 부족해서 모를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노력해 가면서 염불에는 광대무변하고 환희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또 칭명(稱名), 관상(觀像), 관상(觀想), 실상(實相) 등 염불 안에는 지(止)·관(觀)의 수행법이 모두 구족돼 있음도 알았다.

도피안사 등서 철야정진 주도

<사진설명>큰소리로 염불하며 절하는 박종린 씨. 절을 하면서 몸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고, 염불을 하면서 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고, 절과 염불을 오롯이 해 일념이 되도록 함으로써 마음으로 지은 업을 녹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나와 부처님이 둘이 아님을 확인하는 길이자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해 내가 부처님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염불이 너무 쉽고 우리는 헛똑똑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것이지요.”

박 씨는 일부에서 염불을 타력으로 참선을 자력으로 여기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무아(無我)인 불교에서 ‘내’가 없는데 어떻게 자력이 될 수 있겠으며, 나와 부처님이 둘이 아닌데 어찌 아미타불을 믿는다고 하여 타력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는 거다. 따라서 오로지 ‘불력(佛力)’만 있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박 씨가 절과 염불수행을 열심히 한다는 얘기가 은근히 알려지면서 함께 정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고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는 첫째 주에는 안성 도피안사에서 둘째 주에는 길상사에서 철야정진을 법회를 이끌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도피안사 법우들과 매일 108배를 하며 전법기금도 마련하는 ‘절 동안거 결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수행이 삶과 동떨어져는 안 될뿐더러 기간을 정해 놓고 하는 용맹정진은 신심과 원력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때문이다.

매일 1000배 이외에도 사회에 큰 사고가 나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이 절하고 정성껏 기도하며, 넉넉지 않은 월급쟁이 생활에도 어려운 이웃이나 불사를 위해 한해 700~800만원의 ‘거금’을 기꺼이 보시하는 박 씨. 그가 쏟아내는 맑은 땀방울과 염불소리는 이곳 사바세계를 정토로 가꾸어가는 촉촉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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