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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상식이 법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물 흐르 듯 순리 따르도록 이끄는게 법
‘악법도 법 ’이라는 독설 불교에는 없어


사람살이에는 서로 어울림의 동아리가 형성되고 형성된 동아리에는 자연스럽게 질서가 생긴다. 질서란 사람살이의 자연스러운 서열화이다. 서열이란 순서이니 앞뒤의 순서가 정연하다는 말이다. 이 자연스러운 서열을 조문으로 명문화 하면 법이 된다. 쉽게 생각하여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레 방향을 잡아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法)이라는 글자가 물(?=水)과 가다(去)로 합성된 회의문자인 것이다. 물이 흘러가듯 순리적으로 사회를 인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순리적으로 흐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회구성원의 하나하나가 양보해야 한다. 서로 먼저 가겠다고 다투면 그 물은 막혀서 흐르지 못한다.

예(禮)를 정의할 때 사양(辭讓)이라 한다. 맹자가 사람의 선천적 착한 마음의 원소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제시하면서, 예의 시발은 바로 사양하는 마음이라(辭讓之心禮之端也사양지심예지단야) 하였음이 정확한 정의이다. 그렇다면 법질서도 사회 구성원 서로서로의 양보하는 마음이 없으면 실현될 수가 없다.

그러니 법은 제정할 때부터 이것이 물줄기를 잡아 주는 순리인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고, 이를 준수하는 구성원의 처지에서는 대중을 위한 길잡이이니 나에게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양보하는 마음으로 준수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그 법의 물줄기는 흘러갈 것이다.

소탈하게 말하여 법은 상식이다. 물이란 낮은 곳으로 저절로 흐르는 것이다. 법도 삶의 일상에 순조로이 흐르는 질서를 조문화한 것이다. 일상의 살아감은 상식의 실천적 연속성에 있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의 순수한 삶은 이 상식의 전형이다. 이웃의 누군가가 잘못을 하고 항변을 하면 “동네 네거리를 막고 물어보라”한다. 지나는 사람의 상식적 여론을 들어보라는 것이다. 상식을 벗어나면 그 법이 바로 악법이다. 악법도 법이다 하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대중적 상식을 무시하고 특수계층을 비호하는 사회적 독성이다.

오늘 법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오늘의 우리들의 삶에는 제도적으로 얽매이는 법의 테두리에 답답함을 느끼는 기분이 들어 우연히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고 만들어 놓은 법이 미비하다 하여, 또 특별법이라는 이름까지 동원되어 새로운 얽매임이 돋아나는 현상도 있다.

맹자가 정치를 잘못해서 백성이 살기 어려워 법질서를 어겼는데 법에 저촉된다 하여 형벌을 주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다함이 있다. 법망이란 말은 이래서 유래된 것인데, 현대의 법치는 어쩌면 이 말을 실증이나 하듯이 법의 그물을 수시로 만들고 있다. 입법부의 의원님들이 마치 어촌의 어부가 물고기를 걷어 들이기 위해 그물을 짜고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서민이 물고기란 말인가.

그래서 불가에서 사용하는 법이란 용어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한번 살펴보기로 하였다. 유형이거나 무형이거나 진실이거나 허망이거나 사물 그 자체 도리 그 자체를 모두 법이라 한다. 있는 존재 그 자체 이것이 바로 진여요 이 진여스런 존재의 모든 것이 법이라 한다면 범어의 다르마를 왜 법(法)자로 번역했을까 하는 초보적 의아심도 위에서 본대로 물 흐르듯 있는 그대로 흘린다는 뜻 모음과도 상통했음을 알겠다. 풀은 그저 풀 그 자체요 물은 물 그 자체가 진리이니, 이것이 법이요 이 법으로 인도되는 것이 법문이다. 이러한 순리 속에는 악법도 법이라는 역리적 독설은 없을 것 같아 우선 안심이 된다.

오늘도 진각국사의 법문을 들어 순리적 물 흐름의 법을 이해하자.
“물거품이 일었다 꺼져도 물에는 나고 사라짐의 흔적이 없고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도 허공에는 가고 온 흔적이 없다. 다만 음양의 기운이 모인 듯 흩어진 듯할 뿐이지 하나의 법(존재)도 있고 사라짐이 아니다. 나고 사라지고 가고 오고 모으고 흩음은 범부의 꿈 속 착시이지 깨친 자의 바른 소견은 아니니라.”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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