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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배려하는 불자가 되자

기자명 법보신문
장 회 익
서울대 명예교수

이미 꽤 여러 해 전이다. 당시 대학에 근무하던 나는 남보다 몇 시간 일찍이 출근하여 학교 뒷산을 다녀오는 버릇이 있었다.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암자를 거쳐 큰 바위까지 다녀오곤 했는데, 이른 새벽인지라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 중년 부인을 오며 가며 종종 마주치게 되었다. 그 분은 암자까지만 다녔는데, 자주 스치게 되면서 가볍게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왜 그 이른 시간에 그렇게 암자를 드나드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그 분의 발길이 딱 끊어졌다. 그런데 가만히 미루어보니 그것이 바로 우리 대학 입학시험이 끝난 날과 일치했다. 그제야 “아하, 그랬구나. 그분 아드님 혹은 따님이 이 대학에 응시를 하고 있어서 암자에 치성을 들였던 것이로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잘 되어 입학을 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자녀의 입학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일이 과연 온당한가? 잘 알다시피 대학의 입학시험은 경쟁시험이다. 누구 하나가 붙으면 다른 누구 하나가 떨어져야 한다. 그러니 내 아이가 붙으라고 비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떨어지라고 비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이 치성이 효과가 있는 것이라면, 그 떨어지는 아이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괘씸한 일인가?

그렇다고 자녀의 입학을 희구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가까운 데부터 정이 가게 되어있다. 이게 또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서로 서로 가까운 데부터 보살피다 보면 결국 다 보살펴지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나 혼자 세상 모든 사람을 보살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보살펴야 하는 순서는 우선 내 몸부터, 가족부터, 이웃부터, 그리고 더 멀리 모든 생명붙이까지 나가게 된다. 모든 생명붙이에게 똑같이 베풀 수 없다고 하여 내 가족, 내 이웃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베풀 것이 있다면 우선 가까운 데부터 베풀어나가고 그 다음 조금 더 먼 데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이고, 사람의 마음이다.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마음은 다르다. 내게 가까운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내게서 먼 사람에게도 똑같이 소중하다. 이걸 아는 게 부처님 마음이다. 그러니까 먼데 것을 뺏어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주고싶은 것은 사람의 마음일 수는 있어도 부처님 마음은 아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종종 부처님 마음과 어긋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혹 내 마음 속에 어떤 간절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이걸 행하기 전에 이게 혹시 부처님 마음에 거스르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즈음 운동경기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월드컵 축구 경기가 그렇고, 얼마 전에 있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라는 야구 경기가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 싸워 많은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경기를 어떻게 보실까? 혹 자기가 인도 출신이라 하여 인도가 이기기를 원하실까? 혹은 태국이 불교국가라 하여 태국 편을 드실까? 장담하건데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불자가 자기 아들(혹은 딸)의 입학을 희구하는 것도 좋고 자기 나라 선수를 응원하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 부처님의 마음도 헤아릴 일이다. 행여 다음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이기게 해달라고 부처님 앞에 비는 불자가 나타나지 않을지 걱정스러워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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