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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나라는 없어야 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에는 거인국과 소인국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는 거인국과 소인국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도 신체 크기에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그렇게 큰 거인이나 그렇게 작은 소인은 없다. 나는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본 일이 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소인이 되는 것도 생존에 불리하겠지만 거인이 되는 것도 생존에 그리 유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사회 안에서는 이것과 다소 다른 모습을 본다. 국가들 가운데에는 거인이라고 할만한 국가도 있고 소인이라고 할만한 국가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은 말하자면 거인에 가깝고 모나코나 피지 같은 나라는 소인에 가깝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에서는 큰 것도 생존에 불리하고 작은 것도 생존에 불리하리라는 내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국제사회의 역사가 (적어도 인류의 진화과정에 비교해 볼 때) 그리 긴 것이 아니므로 아직은 어떻게 단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작고 약한 나라는 몰라도 크고 강한 나라가 불리할 이유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라들마다 영토를 넓히고 싶어하고 이른바 국력을 키우려 한다.

그러나 과연 크고 강한 것이 꼭 성공적인 생존에 유리할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역사적인 사례를 일일이 거론할 것도 없이 오늘의 상황을 살펴보자.
 
지금 세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거인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더구나 소련과 함께 양극체제를 이루며 냉전을 지속하던 끝에 유일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지금 그 어느 나라도 힘으로 미국과 겨룰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이 과연 스스로의 생존에 유리한 국가가 되었는가? 놀랍게도 그 반대에 가깝다. 미국의 국민은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더 많은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군인이 해외에 나가 전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많은 미움을 사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힘을 지니고 있으나 힘에 걸 맞는 지혜를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이 작은 나라는 설혹 지혜가 좀 모자라더라도 다른 나라에 크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을 가진 나라는 지혜가 부족할 경우 외부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그것의 반작용으로 자신 또한 엄청난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미국이 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전 세계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미칠 수 있다.

보기에 따라 이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특별한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보아 힘을 가진 모든 나라가 다 그러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개인의 경우에도 일단 힘을 가지면 이를 남용하기 쉽다. 더구나 다수의 의지가 모여 움직이는 국가에 대해 그 어떤 지혜라든가 도덕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만일 이런 큰 힘을 가졌다고 하면 이보다 더 나을 것인가? 아마도 그렇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국제 사회는 더 이상 견제할 수 없는 힘을 특정 국가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를 허용한다면 언제나 이런 국가가 나타나 세계를 소란하게 하고 급기야 인류의 존재 자체를 말살해버리고 말 것이다. ‘거인’이 있어서는 안 될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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