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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시작한 것은

기자명 철우 스님
1992년 봄 행자교육 때와, 93년 가을 교육 때는 내 평생 두고두고 잘했다는 생각과,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만해도 기쁘다.

92년 이른 봄 어느 공중목욕탕에서 조직의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등에 청룡 황룡이 노는 것을 보았다. 나도 여러 사람들과 같이 두려운 마음으로 쳐다보다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스님이 만약 저렇다면 단월(시주자)들이 반가워할까?'

그날 밤으로 단잠에 취해 계신 유나 스님께 전화를 올렸다. 스님은 놀라서 '웬일이냐?' 물으셨고, 나는 이런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 뒤에 더 이상의 말못할 일들도 많이 있었다. 납치되어 린치를 당할 뻔하기도 하고, 후배로부터 회의석상에서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기도 했다. 또 한가지는 지금은 수련대회나, 불사나, 심지어 항의집회에서도 하고 있는 삼보일배와 일보일배도 처음 시작 때 이들이 잘 따라 줄 것인가?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부득이 솔선수범이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행자복을 입고 주지스님, 유나 스님, 국장스님과 함께 비를 맞으며 목탁을 잡고 '석가모니불'을 부르며 절을 했다.

삼보일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일보일배는 한낮의 사리탑에 깔아놓은 대리석 복사열이 코끝으로 들어 올 때는 고행 그 자체였다.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극기 훈련일 뿐이다' 라는 비난을 훈장처럼 달아야 했다. 이렇게 정착시킨 삼보일배와 일보일배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4회 송광사를 끝으로 교육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에 좋은 수행이었다. 못다할 소소한 인연들이 많이 있으나,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이들 때문에 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고 무시했던 이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무엇인가 잘못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흐뭇하다. 지금도 우리들의 '영원한 유나 스님'(그 때 유나 스님은 절 집 항렬로 필자의 조카상좌다)으로부터 그 보상의 말씀을 들었다.

"아재비야! 수고했다."



철우 스님/파계사 영산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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