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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선법회 ④

기자명 법보신문

미혹의 체험에서 나온 외도·마도의 설법
우주의식 운운은 진흙 말려 금칠한 것 뿐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자아의식과, 자아는 홀로 존재한다는 개체의식을 버리면 우주의식이 드러나 전체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올바른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불교계 밖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어느날 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었습니다. 그 집의 거실에 들어섰을 때 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액자에는 이러한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대가 곧 우주라, 개체를 넘어서면 곧 전체라, 전체가 곧 신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글을 보고 집주인에게 “이 글이 당신 선생이 써준 글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글의 내용이 최상의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것이라고 인정하는가”라고 물으니, 역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대답에 내가 이 글에 만족하지 못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몸과 마음과 우주가 통틀어 허깨비 같은데 전체는 무엇이며 신은 또 무엇인가, 당신의 선생을 만나거든 전체라고 여겨지는 경지와 신이라고 여겨지는 경지가 모두 미혹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전해달라”고 말이지요.

불교계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개체의식이 어떠하니 우주의식이 어떠하니 하면서 구름과 같은 자기라는 의식을 넘어서면 허공같이 텅 비고 꽉 찬 근원자리를 만나게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는 합니다. 항상 중생들은 무엇이든지 있는 것을 좋아해서 수행을 통해 무아를 깨달으라고 하면 무아 이후에 무엇인가 하나가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소아를 버리면 대아가 나타나고 크게 버리면 크게 얻고 크게 죽으면 크게 산다는 등의 공식으로 수행의 경지를 삼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견해는 모두 존재의 결박을 벗어나지 못한 채 존재를 사랑하고 존재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놓지 못한데서 생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에서 고구정녕 상을 버리라고 했을 때의 그 상의 범위는 자아가 실재한다는 그릇된 착각뿐만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자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경지에서 얻어지는 저와 같은 견해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자아에 대한 속박만이 상이 아니라, 자아의 속박을 넘어서 얻어지는 우주 자체가 되는 체험, 허공이 되는 체험, 신이 되는 체험 등 모든 체험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상으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개체니 전체니 소아니 대아니 얻느니 잃느니 하는 말은 다 부질없는 미혹의 체험에서 나온 외도나 마도들의 설법인 것입니다.

개체만이 허깨비가 아니라 전체 또한 허깨비이고 신도 허깨비입니다. 일체가 인연으로 만들어진 공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싹 쓸어서 개시허망이라고 보는 것이 정법의 안목입니다. 반야심경에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즉 얻을 바가 없는 고로 보살은 지혜에 의지해서 마음에 걸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무소득이라는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얻을 것이 없는 도리, 이것이 불법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리석은 중생은 다시 허무상에 떨어집니다.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고 해야 살맛이 나는 게 중생의 속성입니다. 굳이 얻을 것이 있다면 얻을 것이 없는 도리는 얻는 것입니다.

왜 얻을 것이 없느냐, 일체가 공하기 때문입니다. 왜 공하냐, 조건으로 일어나고 조건으로 생겼기 때문입니다. 연기연생이므로 자체 성품이 없는 것이 얻을 바 없는 이유입니다. 안이비설신의라는 주관도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객관도, 주관과 객관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모든 의식들도 다 공하기 때문에 얻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과 이것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의식을 떠나서 또 어떤 다른 세계가 있는가 하면 절대 없습니다. 우주의식이니 전체의식이니 하는 것을 누가 깨달았다고 한다면 진흙을 말려 금칠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유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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