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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선법회 ⑩

기자명 법보신문

대승-마음…남방-사념처에 집중
관찰 주제 다를 뿐 의미는 같아

요즈음 미얀마나 태국 같은 나라에서 실천하는 남방불교의 위빠싸나 수행법이 널리 보급되고 있습니다. 왜 대승불교의 가르침 속에서는 위빠싸나가 실천되고 있지 않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대승불교 용어 가운데 ‘관’이니 ‘견’이니 ‘조견’ 이니 하는 말들이 위빠싸나를 뜻하는 용어들입니다.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도’ 할 때의 조견이나 금강경의 ‘약견지성비상’ 할 때의 견이나 화엄경의 ‘응관법계성’ 할 때의 관 등이 그 예입니다. 위빠싸나의 뜻은 ‘존재의 특성을 본다’입니다.

이때 말하는 존재는 나라고 여기고 있는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가리키고 특성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 성질로서의 무상, 무아, 고를 가리킵니다. 즉 나라는 것은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칙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생멸을 거듭하는 무상한 존재이며 나라고 할 것이 없는 존재이며 괴로운 존재임을 관찰하여 집착과 무지를 타파하고 열반을 얻게 하는 것이 위빠싸나 수행입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위빠싸나를 적용하는 범주가 남방불교의 위빠싸나와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언급한 것처럼 남방불교의 위빠싸나는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모두 관찰할 것을 권합니다. 이에 비해 대승에서는 몸, 느낌, 마음, 법 가운데 마음 하나만 관찰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승불교에서는 남방불교의 위빠싸나처럼 몸을 관찰하고 느낌을 관찰하기 위하여 호흡을 본다던가 경행을 한다던가 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지 않습니다. 좌선을 해도 주로 앉아서 마음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는 근본불교의 가르침보다 대승불교가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자아와 세계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훨씬 짙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삼계는 오직 마음이라는 ‘일체유심조’나 한 생각이 곧 무한이라는 ‘일념즉시무량겁’등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자아와 세계, 시간과 공간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고 이를 수행과 연결시키면 마음 하나만 분명히 보고 깨달으면 될 뿐 굳이 다른 것을 보고 깨달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를 다시 해석하면 대승에서는 몸, 느낌, 마음, 법을 수평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뿌리란 마음을 가리키고 줄기와 잎이란 몸, 느낌, 법입니다. 화엄경에 마음을 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포섭한다는 의미의 ‘관심일법총섭제행’이라는 가르침이 있고 달마대사의 관심론에 뿌리를 거두면 나무도 번성하고 뿌리를 자르면 나무도 죽는 것처럼 마음은 모든 법의 뿌리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는 굳이 호흡을 한다던가 경행을 한다던가 하는 수행보다는 마음을 직접 들여다보는 수행이 훨씬 요긴하고 직접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즉 마음을 중점적으로 관찰하다보면 나중에 몸과 느낌과 법은 자연적으로 관찰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무지와 번뇌를 타파하였을 때 이뤄집니다. 그런데 무지와 번뇌는 엄밀히 말해 몸과 느낌과 법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일으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 하나를 관찰해서 무지와 번뇌를 타파할 수만 있다면 그 밖의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승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수행을 하지 않고 호흡을 본다던가 경행을 한다던가 하는 수행법을 곧바로 가지 않고 돌아가는 수행법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합니다.

결론적으로 위빠싸나는 남방에서 주장하는 근본불교가 되었건 대승불교가 되었건 한결같이 가르쳐왔다고 할 수 있는데 다만 남방불교는 관찰하는 주제가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사념처’인데 비해 대승불교는 관찰하는 주제가 하나의 마음이라는 ‘일념처’라는데 차이가 있다 하겠습니다. 너무 일방적으로 남방불교의 위빠싸나만을 위주로 위빠싸나를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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