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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장학회 이사장 수관 이범세 거사

나눔의 삶 70년 우리시대 진정한 水淸珠

퇴직금-사재 털어 구산장학회 설립

불교학 석박사 과정 매년 10여명 후원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생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쇠가죽보다 질긴 인연의 끈이 엮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관(修觀) 이범세(71) 거사. 그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삶의 전환점이라고 한다면 단연 양어머니인 고(故) 무상각 보살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를 통해 불교와 만날 수 있었고 참다운 바라밀의 실천행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관 거사가 무상각 보살을 만났던 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여름. 6년 과정의 서울 사범대 부속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갑작스런 전쟁으로 인해 그토록 원했던 교편 대신 군에 입대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전방에서 훈련받고 근무했으나 곧 소위로 임관되면서 광주 포병학교의 교관으로 재직하게 됐다. 그 때부터였다.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었던 수관 거사가 하숙집을 구하던 중 찾은 곳이 마침 여관업을 하던 무상각 보살의 집.



무상각 보살과의 운명적 만남



보살님은 그에게 숙식료 대신 법률이나 행정적인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고 수관 거사는 이에 대해 친절히 답해 주었으며,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서로간의 신뢰와 정도 함께 두터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슬하에 자식 하나 없던 무상각 보살은 수관 거사에게 수양 아들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면서 피보다 진한 모자의 연은 보살님이 돌아가시는 95년 6월까지 이어지게 된다.

한일합방이 되던 해 울산에서 태어난 무상각 보살은 20살에 시집을 갔지만 불과 3년만에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기구한 여인. 이후 홀홀 단신으로 바느질, 김밥장사, 쌀장사, 숙박업 등을 하면서 억척같이 돈을 모았고, 만년에는 이들 모든 재산을 이웃과 불교발전을 위해 회향했던 것.

“나의 어머님 고 무상각 보살님은 온갖 욕심을 끊고 무소유의 삶을 지향했던 바라밀 수행자였습니다. 그 분을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신 선지식이었습니다. 늘 그분을 생각하고 그 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수관 거사는 무상각 보살을 도와 남다른 신심과 원력으로 곳곳에 많은 불사를 이룩했다. 특히 송광사 중창불사와 서울 법련사 영산대법전 건립 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지난 84년부터는 효봉장학회, 불일장학회 등 이사로 참여해 17년간 장학금 지원사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리고 지난 96년에는 아내 연화성 조동호 보살과 함께 퇴직금 2억2000만원으로 ‘구산장학회’를 설립해 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있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위해 매년 10여 명씩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불교 중흥이 불교학에 달려 있음에도 이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좌절하고 포기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퇴직금 털어 장학회 설립



이래서 일까. 지난해 11월 25일 수관 거사의 고희를 기념하는 조촐한 연회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행사가 열렸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소장학자들이 논문집을 만들어 헌정한 것. 수관 거사의 수차례 만류에도 이들 학자들은 글과 논총비용을 정성껏 모아 『불교학의 실천과 해석』이라는 제목의 논총집을 펴내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수관 거사는 “불교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그것으로 족한데 논문집을 받게 되니 오히려 민망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이날 참석했던 최병헌 서울대 교수는 “불사의 개념이 오직 사찰 건물의 개·증축으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인재양성을 위한 수관 거사의 오랜 노력은 참으로 거룩한 불사”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30여 년을 군인으로, 그리고 퇴직한 후에는 인천 건설기술교육원에서 10여 년간 일했던 그는 남들의 생각과는 달리 조그만 아파트에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수관 거사에게 보람이 있다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 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자기 몫을 하고 있거나, 불교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불교학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 그들로 인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고 우리 사회도 더 맑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수관 거사는 보시란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전에서도 보시를 해야 하는 까닭으로 모든 성인의 도를 실천하기 위해서이며, 온갖 번뇌를 깨고자 해서이며, 열반에 들어 생사를 끊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시란 넉넉한 마음가짐의 상징



“보시하는 행위도 하나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없다고 하지 않으면 결국은 있어도 못합니다. 보시는 끝없는 욕망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며,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무소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욱이 나의 보시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이미 고희를 넘긴 수관 거사지만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예불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그의 생활습관 중 하나다. “이생에 못 깨닫는다면 다음 생에라도 반드시 깨달음을 얻겠다”는 발원과 함께 한 배 한 배 정성을 기울여 108배를 한다.

화엄경에는 수청주(水淸珠)라는 신비의 구슬이 나온다. 아무리 더럽고 탁한 물이라도 이 구슬을 넣으면 그 청정함으로 인해 모든 더러움은 사라지고 마침내 맑고 투명함만 남게 된다는 것. 그래서 수청주는 탐냄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에 물든 사바세계를 청정하게 만드는 부처님의 가르침, 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국정토를 일구어 가는 보살에 비유되기도 한다. 어려운 많은 이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수관 거사. 그가 진정 우리 시대의 수청주는 아닐까.



나의 양어머니 무상각 보살 “어머니를 만난 후 내 삶은 확 바꼈다”



어머니 무상각 보살님은 진정한 바라밀의 실천자였다. 당신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안 먹고 안 쓰고 해서 모은 피눈물나게 재산을 모았던 것이다.

본래 불자가정에서 출생하였으나 초년에는 먹고사는 문제로 절에도 나가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절을 찾게 되었고, 마침 돌아가신 구산 스님과의 인연으로 불자로서 정법생활을 하게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독실한 불자로서의 생활을 했다. 특히 보시바라밀을 실천에 옮기었으니 어려운 노인을 도와주는 일 이외에도 인연을 맺어온 모든 사찰에 많은 불사를 했던 것이다.

노년에 이르러 현호 스님과의 법인연을 통해 더욱 불심이 돈독해졌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모범적인 신행생활을 하면서 끝내 본인의 전 재산을 정리해 송광사에 들어가 수도 정진하는 불가생활을 했다.

가난한 여인이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판돈으로 등을 밝혔던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여인과 같이 어머니는 돈의 액수를 떠나 무주상 보시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듯이 다시 빈손으로 떠나갔던 것이다.

한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기 것만을 추구하는 요즘 세상에서 어머님은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겐 참으로 큰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신지 벌써 6년, 극락왕생을 기원할 뿐이다.



글·사진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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